한 달살이를 마치고 / 이훈
집(아파트) 내부를 수리하느라고 한 달 동안 월세를 빌려서 살다가 다시 들어왔다. 도배를 새로 한 집은 무엇보다 넓어서 좋다. 거실에는 쇼파도 없고 내 공부방에는 책장이 안 보이니 한껏 여유로워진다. 보관소에 맡겼던 이삿짐이 되돌아오면 다시 원래대로 될 테지만. 여기 들어온 지 25년쯤 되었어도 그동안 도배도 한 번 안 하고 살았으니 참 대단하다 싶다. 이런 식으로 쌓아 놓기만 하고 지내서 버릴 것이 한이 없었다. 집 안 전체를 대청소한 셈이다.
우리가 옮겨 간 곳은 길만 건너면 효창 공원으로 갈 수 있는 집이었다. 가방 몇 개와 노트북만 간단하게 챙기고 들어갔으니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 수 있었다. 특히 아침이 좋았다. 전에는 네 시쯤에 잠이 깨면 공부방으로 와서 컴퓨터를 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거기는 조그만 식탁밖에 없어서 노트북도 편안하게 쓸 수 없으므로 무조건 공원으로 나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느티나무 등 큰 나무가 많은 공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 이거야말로 여행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점심과 저녁에도 밥을 먹고서는 공원으로 나서게끔 되었다. 사실 우리 아파트에서 이 공원은 그리 멀지 않다. 15분쯤 걸으면 올 수 있었는데도 이 조금의 환경 차이가 사람의 행동을 확 바꿔 놓았다.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이 공부를 잘하게 하려고 이사한 이야기가 그럴듯하다는 걸 실감했다.
이삿짐이 돌아오자 다시 내 방은 삼면의 벽이 책장으로 꽉 채워지게 되었다. 빈방을 먼저 봤던 터라 더 답답하다. 앞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모으는 날마다 책을 버려서 한쪽 벽의 책장까지 없애자는 목표를 세웠다. 전에도 베란다까지 쌓아 놓은 책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들 가운데서 아주 가끔씩 필요한 것이 있기는 했지만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면 되었다. 책이 없어진 덕분에 도서관으로 걸어간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었다. 세상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여기서 새옹지마의 고사를 끌어오면 너무 거창한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에서 잘 버리는 방법을 배웠다. “지금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무조건 내다버려야 한다.”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마리에는 이 책에서 정리정돈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물건을 주의 깊게 정리해서 보관하는 것을 ‘부비트랩’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물건으로 가득한 집 안은 아무리 배치를 바꿔도 소용이 없다. 지금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무조건 내다버려야 한다. 이 책의 좀 더 적절한 제목은 ‘잡다한 물건을 버림으로써 인생이 빛나는 마법’이 될 것이다.
팀 하포드, 윤영삼 옮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 윌마, 2026. ‘밀리의 서재’
버리고서는 후회할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비하려고 지금의 여유와 자유를 희생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방도 마음도 비우면 그만큼 넓어지고 시원하리라. 조그만 냉장고와 가방 몇 개로도 충분히 즐겁게 산 지난 한 달이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