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선생님은 정상적인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 그런 점이지요. 흡사 세례 요한 같은 사람이고 법이 강하고 금하는 것이 많고 정당한 의미에 있어서 복음적인 신앙이 아니다. 그 사람 따라가서는 안 된다. 모두 반대했어요. 그러나 제가 교리를 모르니까 첫사랑에 반했으니까 국화꽃 한 송이를 사랑하는 그분을 나는 따라간 것뿐이지 나는 성경도 모르고 법도 모르고 교리도 모르고 그러니까 가지 말라할수록 더 마음이 강해져요. 자꾸 못 가게 하는 바람에 아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제는 고향을 하직하고 부모 형제 친척 고향 학문 모두 포기하고 맨발벗고 아닌게아니라 광주를 찾아왔습니다. 그분들이 살았다는 소위 말하는 양림동 YMCA 구회관인데 일본청년들이 훈련하던 큰 훈련소지요. 학교 같은 건물이 세 채 네 채 있었지요. 거기 가서 보니 텅텅 비어있어요. 목수관도 비어있고 사람은 없습니다. 참 그렇게 마음먹고 찾아왔지만 주인도 없는 텅텅한 빈집에서 거기에 YMCA 청년들이 기숙사가 있어요. 고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기숙사에 붙여가지고 일 년인지 팔 개월인지 거기서 매일 그분들이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옛날 봤던 그분들이 어디 갔을까? 행방불명이에요. 겨울이 돌아오고 눈이 오고 또 봄이 오고 일 년이나 그랬나 모르겠어요. 그렇게 세상말로하면 외짝사랑을 하고 반해버렸지요. 그렇게 반해가지고 남의 집에 부쳐가지고 눈칫밥을 먹고 거기서 아닌게아니라 서럽게 살았지요. 객지에 와서, 이불이 있어요? 남의 이불 밑에 잠깐 숨어서 한 숨 한숨 부쳐서 사는 생활인데 얼마나 서럽겠어요? 그리고 어느 때에는 친구 집이라고 광주시내 있는 집을 찾아가도 하룻밤 재워주지 이틀 재워줍니까? 그러니까 그 사랑스러운 선생을 만나고 싶어서 광주 와서 한 일 년을 헤매었습니다. 어느 때 오셨다 그래요. 그때 정 원장님이 YMCA 총무시고 부인이 계시고 사택에 계십니다. 작은방에 와계시다는 말을 듣고 찾아들어갔어요. 초봄이니까 아직도 밤에는 밖에는 얼지요. 그런데 그분은 가정을 가지고계시기 때문에 아침밥을 잡수시고 누른 밥을 긁어드렸는지 누른 밥이 방 한구석에 있습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