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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플레비언나비공동체 원문보기 글쓴이: 남산
◇ 호남신대 학생들과 정동진 시비 앞에서, 1999년 경
단기 선교사와 같은 헌신의 마음에서 출발한 나의 교수 생활은 어느덧 8학기, 4년을 채우고 있었다. 양림동에서 보낸 교수 생활은 여러 권의 번역서와 논문을 낳았고, 미국 생활을 그리워하던 꼬맹이 예진이는 개성 넘치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됐으며, 의젓한 수진이는 재기발랄한 중학생으로 성장했다. 그러는 가운데 광나루의 장로회신학대학교는 나를 교수로 초빙하는 과정을 밟았다.
사실 나는 장로회신학대의 학부 출신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신학 교수로 임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은 지원이었다. 그러나 임용 절차에 따라 면접에 임했고, 서정운 총장과 여러 선배 교수가 앉아 있는 대회의실에서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그들은 나의 논문과 개혁신학에 관하여 물었다. 나는 20세기, 21세기 초에 걸친 기독교 교육의 중심 사상과 주요 흐름을 분석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고 “인간은 위대하나 비참하다”라는 도날드 블로쉬의 말을 필두로 개혁신학에 대한 나의 견해를 보였다. 하지만 그 시간은 참으로 길고 고단했다.
본래 대화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 나에게도 일대 다수의 면접은 무척 까다로운 과정으로 다가왔다. 호남신학대에서의 교수 생활과 한국 교회에 대한 기독교 교육적 전망 같은 것도 질문받았던 것 같다. 면접 이후에 그들의 얼굴에 만면의 미소가 살짝 번지는 게 보였지만, 나를 받아들이겠다는 신호로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정신없이 면접을 치르고 다시 광주 풍암동 집으로 향했다. 2001년 봄 풍암동은 내 모든 삶에 안정을 주고 있었다. 그전에는 효덕동에 살고 있었는데 워낙 가진 돈이 없어서 노영상, 황영훈 교수의 배려로 얻은 두 칸짜리 아파트에서 보내는 일상이 무척 갑갑했다. 본래 효덕동 아파트는 세 칸짜리였으나 집주인이 방 하나에 짐을 채워 넣는다고 천만 원을 깎아 줬다. 덕분에 전세금을 더 빌리지 않고 네 식구가 고압 전류가 가까이 흐르던 그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임대 아파트가 분양된다는 소식을 듣고 방 세 칸짜리 지금의 풍암동 아파트를 임대하게 되었으니 너무도 감사했다.
당시 풍암동은 수도권의 분당과 같은 곳이어서 학교, 식당, 교회, 공원, 자연 등의 환경을 골고루 갖추어 나가던 동네였다. 1999년 당시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있었으나 우리는 일단 방이 세 개에 새 아파트라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더욱이 근처에 노치준 전도사가 개척한 광주다일교회가 우리 식구들을 반겨주었고, 조금만 내려가면 월광교회의 김유수 목사, 이동균 목사, 정승모 목사, 김충환 교수, 홍지훈 교수 등이 근처에 살고 있어 좋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무엇보다 임대 아파트라 갑작스럽게 이사할 일이 생겨도 임대료를 쉽게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언제 어디서든지 주님이 부르실 때마다 가볍게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광주다일교회는 가끔 나에게 새벽기도회나 주일 저녁 예배 설교를 부탁했고, 매주 주일예배 후에는 아직 안수받지 않은 담임 교역자를 대신해 축도를 담당하곤 했다. 호남신학대는 전라도를 전혀 모르던 나에게 호남지역 전역을 다니며 설교하고 강의를 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해 주었다. 그리고 호남지역은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기독병원인 애양원 등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쏟아부은 사랑 덕분에 기독교에 매우 호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나도 그곳에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고, 수많은 교회와 단체들을 다니며 교육학적인 지식과 미주 이민교회 사역의 경험을 마음껏 나눌 기회를 가졌다. 특히 목회자들을 지도하는 과정 중에 미국 내에 우리보다 조금 일찍 개발된 주일학교와 커뮤니티 사역 현장을 돌아보며, 우리나라 교회학교와 마을을 위한 섬김과 봉사 사역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어로 쓰인 기독교 교육학 전문 도서들을 이 시기에 몇 권 번역할 수 있었고, 바쁜 일정 속에서도 논문을 작성한 게 보람 있는 사역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50세까지는 선배들의 책을 소개하는 사역을 하고 50세 이후에는 나 자신의 글을 세상에 발표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계획이 순전하게 실행되고 있다는 성취감을 맛보기도 하였다. 부끄럽지만 훗날의 역사를 위해 역서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교육을 위한 교육철학』.(Philosophy of Education: Issues and Options. Michael L. Peterson.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창조적인 말씀을 통한 기독교교육』.(Creative Words. Walter Brueggemann. 한들, 1999. 공역). 『제자직과 시민직을 위한 기독교교육』.(Education for Citizenship and Discipleship. 기독교교육학회전문연구도서(4). Mary Boys. ed. 한국장로교출판사, 1999). 『생명을 위한 교육』.(Educating for Life. Thomas Groome. 한국장로교출판사, 2001). 『현대성서주석: 빌립보서』.(Interpretation: Philippians. 한국장로교출판사, 2001). 『현대성서주석: 디모데 전후서/디도서』.(Interpretation: 1 &2 Timothy &Titus. 한국장로교출판사, 2002). 『지혜를 위한 교육』.(Wise Teaching. Charles Melchurt. 한국장로교출판사, 2002. 공역). 『권위 있는 가르침: 가르침의 권위를 세워주는 6가지 기둥』.(By What Authority Do We Teach? Robert W. Pazmino. 도서출판 디모데, 2002. 공역). 『가르침과 종교적 상상력』. (Teaching &Religious Imagination. Maria Harris. 한국장로교출판사, 2003). 『성경과 기독교교육』.(The Bible in Christian Education. Iris Cully.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예수의 가르침에 나타난 방법과 메시지』.(The Method and Message of Jesus' Teaching. Robert Stein.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기독교적 양육』.(Christian Nurture. Horace Bushnell.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4). 『발달주의적 시각으로 본 기독교적 양육』.(Nurture that is Christian: Developmental Perspectives on Christian Education. Jim Wilhoit. ed. 쿰란출판사, 2005). 『종교교육사회론』.(Social Theory of Religious Education. George Albert Coe. 그루터기하우스, 2006). 『기독교교육의 단서』.(The Clue to Christian Education. Randolph Crump Miller. 솔로몬, 2011). 밀러의 기독교 교육의 단서를 번역한 이후에 나는 다시는 번역서를 내지 않았고 이후로는 논문과 저서 출간에 전력하였다.
아래 이미지로 소개한 세 권은 세계와 한국 기독교 교육 사상사에 남을만한 중요한 서적으로 생각하기에 굳이 이미지까지 캡처하여 올렸다.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기독교 교육에 알찬 공헌을 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책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그다지 읽히지 않는 게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오늘날 챗 GPT가 활성화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말 책을 영어나 독어로 번역하는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며 매우 기계적인 작업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BTS가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고 인터뷰하는 걸 보면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김도일 교수가 소개하는 책
학생들과 남쪽 지역을 같이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과 같이 나눈 대화는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가끔 그들이 50이 다 되어 내 앞에 원숙한 목회자로 나타나면 놀랍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세월은 여전히 하염없이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며칠 전(2023년 7월 말)에도 미국 워싱턴 D.C 근교 페어팩스에서 목회하는 한상진 목사를 만났다. 알고 보니 그도 내가 호남신대 교수 시절 가르쳤던 제자였다. 그와 이런저런 말을 나누고 교제하면서 공동으로 고백하는 것은,
우리는 함께 외길 목회자의 길을 걸어온 나그네라는 사실이다.
세월은 흐르고 온갖 시련이 우리 곁에 있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며 우리는 서로 연결된 피조물로서 그분이 계획하고 섭리하시는 인생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나는 자주 불충하였어도 여전히 주님과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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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일은 장신대 기독교교육학과 교수로 한국기독교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다음 세대를 세우고, 가정교회마을연구소 공동소장으로 이 땅 위에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에 힘쓰고 있다. 이 지면을 통해 삶 속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며 이끌어 오신 그분의 발자취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김도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cnews197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