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얼마나 의미없는 자기파괴적인 되새김질을 하고 있나? 나는 쉴 새 없이 과거를 들추고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영역을 알고자 욕망하고 있다. 죽은 시간을 해부해 사건의 인과관계를 유추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있다. 어제는 너무 깊게 생각하다가 늪에 한 발이 빠졌는데 나는 푸욱 잠겨가는 다리를 빼낼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질척하고 밀도높은 거무튀튀 한 것들이 내 다리를 감싸는 것을 만끽하고있었다.
시간을 해부해 사건을 헤집다보면 과거는 내 멋대로의 주관에 더럽혀진다. 조각낼 수록 객관성은 사라지고 내가 원하는 미래와 결부된 과거만 남는다. 이걸 '추억한다'고 말해도 될까 싶은 정도로 편집하다보면 너덜너덜해진 기억과 날 끌어내리던 늪의 잔해만 남는다. 집요한 추억은 자신을 망가트린다.
나는 지금 기억의 파편들 사이에 누워있다. 무엇이 언제부터 잘못된 거였을까하는 아주 작은 불씨에서 시작됐다. 인과를 따지고 싶은 욕구는 언제나 유혹적이다. 우주는 애초에 무의미한 곳이라고 최면을 걸어보지만, 무의미는 잔인하고 의미는 달콤하다. 깨어진 내 파편이 같은 시간을 보낸 타인의 것과 얼마나 달라져버렸는지 정량적으로 계산해보면 멈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