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터미널의 추억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소한(1월 5일)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아내는 시집간 딸과 하루 데이트를 했다. 소한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탓인지 추위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햇볕이 환하게 비치는 한낮인데도 수은주가 영하로 꽁꽁 묶여있는 혹한의 날씨였다. 갑자기 대전에서 목회하는 둘째 딸이 엄마가 보고 싶다면서 일상의 겉옷을 훌훌 털어버리고 무작정 달려온 것이다. 둘째 딸은 껌 딱지처럼 붙어있는 두 아이를 키우며 잡(job)을 가진 워킹 맘이요 개척교회를 섬기는 목사의 아내다. 그가 입고 있는 겉옷의 무게는 절대로 가볍지 않다. 그 옷으로 자신을 감추고 산 지 벌써 셀 수 없을 만큼의 세월이 지났다. 꿈에서나 있을 법한 일탈이 지금 현실에서 이루어졌으니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그의 삶에 담겨있는 절절한 사연을 삼켜버린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가지 말라고 사정하는 초등생 딸을 설득하며 동의를 얻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을 생각하니 짧은 만남이지만 너무 소중했다. 모처럼 단출한 친정나들이 길을 나선 딸은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 안이 쉼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버스 여행의 이점을 충분히 만끽하지만 엄마를 볼 마음은 버스보다 앞질러 달려갔다. 충청도, 경기도 경계를 지나자 잔설로 덮혀있는 치악산 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모녀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버스터미널에서 상봉했다.
딸은 맛있는 점심을 예약하고 현지 주민처럼 근사한 보리밥집으로 안내했다. 다양한 찬거리가 식탁을 수놓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건강한 식단은 침샘을 강하게 자극한다. 게다가 아침부터 싸가지고 온 시장이란 반찬까지 펼치니 모처럼 입맛 나는 식사가 만남의 즐거움을 더한다. 뻔한 매일의 일정에 쫓기며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달려왔던 삶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딸은 엄마 품에 있었던 어릴 때 그 시절로의 추억 여행을 시작했다. 항상 바쁜 일상을 종종걸음으로 채웠던 둘째 딸은 입고 있던 두 아이 엄마라는 옷을 벗고 친정엄마 품에 안겨 해맑은 웃음을 짓는다. 주제도 없는데 활짝 핀 이야기꽃은 거미줄처럼 줄줄이 끊어지지 않았다. 치악예술관 전시관에서 엄마가 출품한 문인화를 감상한 후 그곳에 있는 카페에서 모녀의 이야기는 본격적인 2부로 이어졌다.
따뜻한 기운과 발랄한 팝송이 잔잔하게 흐르는 카페에는 마침 손님이 없었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까 이 둘에게 수다 광장으로는 최적의 장소였다. 개척교회를 준비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안쓰러웠다. 어린 딸을 키우면서 가슴 조였던 일상을 들을 때는 손녀가 눈에 아롱거려서 할머니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사연도 많고 이야깃거리도 즐비한 이들의 대화는 침묵의 공기를 가르며 이내 카페를 장악해 버렸다. 가사도 모르는 팝송은 이들의 수다에 흥을 돋았고 둘은 돌아오기에는 너무 먼 대화의 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그 길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았다. 어느새 귀가할 버스 시간이 다가왔다. 서둘러 시간에 맞추느라 갑자기 분주해졌다. 바깥 분위기를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터라 찬 공기가 몸을 움츠리게 했다. 다행히 출발시간이 남아서 그냥 보내기가 안쓰러운 엄마는 그 틈을 이용하여 김밥으로 딸의 저녁을 해결해 주었다. 어릴 때 즐겨 먹던 떡 볶기와 따뜻한 어묵국물을 앞에 놓고 이별의 아쉬움을 달랜다. 딸은 엄마도 세월에 떠밀려 가는 것 같아서 집으로 가는 발길이 한편 무겁다.
이렇게 버스 터미널에서 작별인사를 해본 지가 얼마만이던가?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의 한 순간을 장식하며 딸은 대전행 버스에 올랐다. 문이 닫히자 버스는 서서히 비대한 몸집을 움직인다. 남쪽으로 방향을 틀 때 창가에 비치는 딸은 두 손을 흔들며 자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격렬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아내는 문득 40년 전 국군간호사관학교 시절 잠시 고향을 들렀다가 귀대하는 딸을 터미널까지 배웅하며 오늘처럼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던 친정 부모님이 생각났다. 막내딸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는 그 마음이 이랬을 것 같아 괜히 울컥하니 눈물이 고인다. 여고를 졸업하고 일찍 부모를 떠난 후 직장과 결혼생활은 부모와는 평생 이별로 이어지던 숱한 나날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쳤다. 유별나게 부모의 사랑을 받은 막내딸은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그리움에 눈물짓는다. 예쁜 딸을 배웅하던 친정부모 역시 딸의 그리움으로 사셨을 것이다. 갈 길이 바쁘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정하게 떠나갔던 딸을 보시던 그때 아버지의 마음이 지금 터미널에서 딸을 보내면서 아내에게는 애절한 추억으로 떠올랐다.
이제는 이 땅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어른들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분들이 그리움 안에 점점 선명하게 자리 잡는다. 어느덧 그때의 막내딸은 엄마로, 할머니로 살면서 이제 그분들이 걸어가신 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던 부모의 마음을 뒤늦게 깨달으니 갑자기 서글픔이 밀려왔다. 부모 생전에 그 마음을 이해하고 더 진하게 효도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내는 귀가 길에서 진짜 자녀로 살 수 없게 만든 하늘의 섭리를 생각했다. 이는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내 자손들에게 나누어주다가 해 저물 때 또 내 부모처럼 인생의 저 산을 넘으라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단숨에 달려와 준 둘째 딸이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 부러웠다. 그에게는 보고 싶을 때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엄마가 있으니 말이다. 삶의 여정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태기산(泰岐山)보다 더 높고 험악한 인생산이 눈앞에 펼쳐질지라도 하나님이랑 고개를 넘어가던 선진들의 발자취를 남겨야 한다. 터미널에서 딸을 보내며 또 삶의 섭리를 터득한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예레미야애가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