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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였다."(마4:4)
4 But Jesus answered, “The scripture says, ‘Human beings cannot live on bread alone, but need every word that God speaks.’”
우리는 어디에서 오며 어디로 갈까요?
혹시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세상이라도 떠나는 날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누구인가 저를 보고 그랬습니다.
세상일도 바쁜데 자꾸 저세상 이야기하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이란 모든 인생의 아주 근본적 문제입니다.
또 나는 어디에서 나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 일인데도 내가 간과하고 있는 일입니다.
나의 가장 중요한 일인데 소홀히 생각하고 있는 일입니다.
나는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것인가?
이 땅에 부모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부모가 있듯이 우리를 만드신 분이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언제인가 거울 앞에 서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제 앞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서 계신 줄 알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아들이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와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내왔습니다.
저렇게 나를 닮아 있을 줄이야!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이렇게 하나님과 닮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외형을 이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심성까지를 이르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외가 없습니다.
평소에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위기를 만나면 예외 없이 하나님 합니다.
입에서 저절로 하나님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영적인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제주도에 있을 때 교회 앞에 인하대 교수의 별장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 분의 아버지가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을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6.25 때 북에서 남으로 피난을 오던 길이었습니다.
한강 앞에 섰는데 다리가 끊겨 있었다는 것입니다.
뒤에서는 북한군들이 쳐내려오고 있었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한강을 헤엄쳐서 건너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헤엄을 치다가 소용돌이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순간 자신은 이렇게 물에 빠져서 죽고 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뜬금없는 소리가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살려주시면 하나님은 섬기겠습니다.
그렇게 한강을 건너왔고 그는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 분이 그 이전에는 교회라고는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TV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저도 탈북하다가 총에 맞아 두만강에 떠내려가는 시체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탈북한다는 것은 생명을 거는 일입니다.
그들은 중국의 공안에게 쫓겨다녀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나라로 오는 것입니다.
그 위험한 과정에서 그들은 수없이 하나님 하나님 했습니다.
그들이 뜬금없이 하나님을 부른 것입니다.
북한 사회는 기독교 신앙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는 경우 그 사람을 살려두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그 위기의 순간에 그들이 부른 적도 없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일생을 되돌아보면 아이 낳아서 키우는 일이 가장 큰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성장했을 때 결혼을 합니다.
그 때 자녀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성장하기까지 온갖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젖 먹여야지
기저귀 갈아주어야지
위험한 곳으로 기어가지 않나 뒤쫓아 다녀야지
병원 데리고 가지
교육시키지
성장해서 자녀를 결혼시키면 우리 인생은 다 가버리고만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처럼 자녀의 비중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도 이와 같이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 주목하십니다.
제가 시무하던 제주도 토평교회에 한 분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아들 둘을 홀로 키우셨습니다.
그 분은 서귀포 시장에서 좌판 하나를 깔아두고 생선장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이 그만 깡패 무리와 어울린 것입니다.
남편은 없고 생선을 팔아서 키우던 아들들입니다.
제 생각에 그 깡패 집단들에게는 경찰들도 몸을 사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이 홀몸으로 직접 깡패 소굴로 간 것입니다.
“우리 아들 내와라!”
죽이면 죽이라고 달려드는 이 어머니에게 깡패들도 저항하지 못 했습니다.
그 아이를 깡패 소굴에서 구해온 것입니다.
그 분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보십시오.
사람들은 엄청난 짓들을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 모양입니다.
여기도 죄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 죄악의 세상에서 구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 깡패 소굴로 간 어머니와 같습니다.
그 깡패의 무리에서 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죄에 빠진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오신 분을 우리는 구세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세주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어르신들은 이제 80을 넘어 사셨습니다.
누구나 솔직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사람들은 제 앞에 일어날 일을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을 몰라 불안하니 사람들이 점쟁이에게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일을 알아서 뭐 합니까?
앞일을 안다고 무엇이 달라집니까?
제가 점쟁이보다 더 정확한 예언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늙어가고 죽을 것입니다.
제가 60을 넘기니 제대로 죽어야 할 텐데 그 고민을 합니다.
기억력은 사라지고 치매 아닌가? 저 자신을 두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짐은 되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데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저에게 일어날 이 일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대안을 낼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믿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최선의 것을 주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장에 이해가 안되도 상관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기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신다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도움을 주시는 분을 기독교는 그리스도 구세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적으로도 자신들을 도와줄 구세주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일제 36년을 일본놈들에게 당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경험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모님들께 그 이야기만 들어도 치가 떨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2,000년을 나라 없이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 나라가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이 당했던 서러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모든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2차 세계 대전에서 힛틀러에게 600만 명이 학살당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그들은 예수님 오시기 전에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일을 당하면서 하나님께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것을 구한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오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알고 보니 옆집에 사는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들과 어울려 사는 목수의 아들이 그리스도라니 그들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예수님이 정말로 그들은 구하실 그리스도인지 알기 원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께도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그들이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께 이렇게 자신이 구세주라는 것을 밝히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3방식으로 예수님을 밝히면 안 됩니다.
이것이 마귀의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우리나라가 40-50년 전만 해도 정말로 어려웠습니다.
밥을 굶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습니다.
먹는 문제가 아주 심각했습니다.
그때 먹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무슨 일인들 다 했을 것입니다.
물론 먹는 문제는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먹을 것을 거저 얻는 법이 없습니다.
일을 해야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벌이가 쉽습니까?
뉴스를 보니 박사 10명 중에 3명은 제 직장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예수님께 이런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
그 먹는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 목수의 아들을 그리스도로 믿고 잘 따를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굴러다니는 돌덩어리로 밥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손쉽게 먹는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 사람을 구세주로 인정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만약에 거창의 돌덩이로 밥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준다면 거창 사람 모두 우리 교회로 다 몰려들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여기 들어오기 전에 길바닥에 돌을 들고 오더니 그것으로 여기에서 밥을 만든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목이 터져라 설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을 보자마자 모조리 예수님을 믿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식입니다.
그런데 다 모였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즈음에는 배 굶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전혀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실은 더 큰 일이 이 아이들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마약을 합니다.
컴퓨터로 도박을 합니다.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생각도 못 할 일들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은 돼지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만족시키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반대로 이 아이들이 고생하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2,3일을 굶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생을 몰라서 이런 이상한 짓들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모든 것이 먹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말을 정면으로 반대하신 것입니다.
나는 돌로 밥을 만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먹을 것만 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제주도에서 귀신 들린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에게 먹을 양식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양식의 문제를 해결해 줄만큼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고 귀신은 나갔습니다.
지금도 저녁에 잠을 못 이루는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제 설교를 통해서 “나다 너를 만든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그 한 마디만 듣게 된다는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저는 바로 그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쌀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뿐입니다.
제가 꺾꽂이를 학교 자연 시간에 처음 들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가르쳐준 대로 손가락 길이만큼 잘라서 열댓 개 땅에 그것을 꽂은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며칠이 지나서 거기에서 싹이 나왔습니다.
어린 저에게 그것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싹이 나오는 것을 보니 흙에 감추어진 뿌리가 그렇게 보고 싶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조심조심 그것을 뽑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뾰쪽뾰쪽 하얀 뿌리가 돋아나 있습니다.
조심히 그것을 다시 꽂아 두었습니다.
날마다 그 뿌리가 얼마나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그것을 뽑아 본 것입니다.
나중에 그것들이 모조리 다 죽고 말았습니다.
한 그루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살려면 가만 놔두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뿌리가 나고 꽃도 피는 것입니다.
실은 작년에 우리 교인의 집에서 장미 가지를 꺾꽂이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때의 그 짓을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가만 놔두었더니 작년에 꽃까지 피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뿌리를 뽑아서 증명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내가 신앙이 있는지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앙은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하십시오.
기도하시고 찬양을 돌리십시오.
일주일에 한 번 제가 설교를 하지 않습니까?
지금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모두 그 신앙의 뿌리가 자라는 중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하나님 다시 한번 보여주시라는 것입니다.
한 번 뿌리를 뽑아 보자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성전 위에 올라 가게 했습니다.
예수님께 거기에서 뛰어 내려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만약에 손자가 지붕 위에 올라갔다고 합시다.
우리 어르신들이 지붕 위에 있는 이 어린 손자를 보았다고 합시다.
거기로 냅다 뛰어가실 것입니다.
내 몸이 다치든지 말든지 떨어지는 손자를 받을 것입니다.
손자가 다치지 않게 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손자 놈이 우리 할아버지 맞나 안 맞나 본다고 자꾸 지붕 위로 올라가면 어떻게 합니까?
전 달에도 올라가더니 이번 달에도 그 짓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을 내 필요에 의해서 증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보고 그 위로 올라가서 뛰어 내려보라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이 맞나 보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세 번째로 마귀는 예수님을 또 시험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은금보화를 두고 그것에게 절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귀는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과 하나님 경배하는 것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세상의 것들은 정말로 허무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다 놔두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주도에서 20년 목회를 했습니다.
처음 제주도로 떠날 때입니다.
벌써 35년 전 일입니다.
그때는 비행기 표도 비쌌습니다.
20년 동안 불과 한두 번 대식구를 데리고 육지를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식구들을 데리고 육지에 오는 일도 힘들었습니다.
제주도 이사 갈 때도 중요하지 않는 물건들은 버리고 가야 했습니다.
운임이 너무 비쌌기 때문입니다.
이제 미국에서 10년 목회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미국 갈 때 정말 모조리 버리고 갔습니다.
미국에 갈 때 젓가락 숟가락도 챙기지 못해서 미국에 내려서는 상 대신에 신문지 한 장 깔아두고 밥을 먹었습니다.
거기에서 10년 살다 보니 살림이 늘었습니다.
한국에 올 때 정말입니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버리고 왔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그 곳은 미국보다 먼 곳입니다.
여기서 저세상 갈 때는 십 원짜리 한 장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것을 후손들에게 남긴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 유산을 가지고 형제간에 의가 상하고 서로 싸울 것입니다.
마귀는 세상 보장해 줄테니 자신에게 절하라고 했습니다.
세상 보장 받는다고 아무한테나 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실 때 이 용이한 목회 방식 중 하나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단호히 거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신음하는 이유는 이 셋 중에 한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마귀가 권유한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