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학> 가을, 이 계절에 시 한 편 읽기 / 김광기
그리운 붉바리
오승철
파장 무렵 오일장 같은
고향에 와 투표했네
수백 년 팽나무 곁에 함께 늙은 마을회관
더러는 이승을 뜨듯 주섬주섬 돌아서네.
돌아서네 주섬주섬
저 처연한 숨비소리
살짝 번진 치매기인가 어느 해녀 숨비소리
방에서 자맥질하는 그 이마를 짚어보네.
작살로 쏜 붉바리 푸들락 도망친다고
팔순 어머닌 자꾸
허공을 겨냥하지만
결국엔 민망해져서 피식 웃을 뿐이지만
어디로 떠났을까
몽고반점 그 고기는
마지막 제의(祭儀)이듯 물질을 끝냈을 때
한 생애 땟국 같은 일 초경처럼 치른 노을.
*오승철 /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하여 <누구라 종일 홀리나> <터무니 있다>
<오키나와의 화살표> <길 하나 돌려세우고>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 등을 펴냈다.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보냈던 3년여의 세월이 갑갑하기만 하였는데 재유행 시기가 다시 온다고 하니 이 시기를 어찌 보내야 하는지 참으로 막막하기만 하다. 언제쯤 이러한 팬데믹의 시기가 끝나게 될지 가늠이 잘 되지도 않는다. 중세 페스트 팬데믹 시기가 집중적으로 6~7년은 되었다 하니 코로나가 어느 정도 종식되려면 그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갑갑한 시기일수록 우리의 생활 의식을 밖으로 분출하기보다는 안으로 더 단단하게 내실을 다지는 기회로 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찌는 듯한 폭염(暴炎) 속에서도 서서히 가을의 문은 열리고 있을 것이다. 아침부터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가을을 부르고 있는 소리처럼 들린다. 이 시간에 오승철 시인의 「그리운 붉바리」를 읽는다. 평시조 4수가 2연으로 펼쳐져 있으면서 기승전결(起承轉結)의 형식으로 진술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부분 부분적으로 이미지가 생성되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고 있다. 진술과 이미지가 행간 행간마다 매끄럽게 덧씌워져 있어서 마치 입체적으로 시를 구성한 것처럼 여겨진다.
붉바리는 농어목 바리과의 바닷물고기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제주도 일대에서 잡히고 있다. 살이 담백하고 씹는 맛이 좋아 바리과 어류 중에서도 최고급 종으로 취급되고 그 수가 매우 적어 아주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생선이다. 어선에서 던진 그물에 가끔 걸리거나 낚시로 드물게 잡히는 정도라 한 마리에 보통 몇백만 원 한다는 말을 언제가 TV에서 본 적이 있다. 한 마디로 해산물로 생계를 꾸리는 어부나 해녀한테는 금 물고기나 다름없는 물고기이다.
이러한 물고기가 평생 가족의 생계를 꾸려온 듯한 화자의 어머니에게도 꿈의 물고기로 상징화되고 있다. 말년까지도 “작살로 쏜 붉바리 푸들락 도망친다고/ 팔순 어머닌 자꾸/ 허공을 겨냥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며 “마지막 제의(祭儀)이듯 물질을 끝냈을 때/ 한 생애 땟국 같은 일 초경처럼 치른 노을”이라 하며 화자는 슬픔에 젖어 있는 듯하다. 평생 삶을 바다에서 건져 올리던 어머니의 그 순수하고 단조로운 열정적 일생을 “붉바리”라는 생선에 비유하면서 화자는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한 생애 땟국 같은 일”이었지만 “초경처럼 치른 노을” 같은 삶이 화자 자신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까지 붉고 찬란하게 비치고 있는 것만 같다.
*김광기
1995년 시집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를 내고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데칼코마니> <시계 이빨> 등과 시론집 <존재와 시간의 메타포> 외.
수원예술대상(1998), 한국시학상(2011), 수원시인상(2019)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