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쉬 하샤나 Ⅱ
창세기 22:9-14 2023/1/15 주현 후 제2주
22: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옛사람들은 설 전날, 섣달그믐에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감사의 절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것을 묵은세배라고 하는데,
감사 인사를 드리는 일종의 송구영신이었지요.
우리에게 설날이 있다면
유대인에게는 ‘로쉬 하샤나’가 있습니다.
‘로쉬’는 ‘머리’라는 뜻이고, ‘하샤나’는 ‘한 해’를 뜻합니다.
한 해의 머리, 바로 유대인의 설(새해)입니다.
‘로쉬 하샤나’
유대인의 종교력, 티쉬리월 1일에 시작이 됩니다.
이 날, 유대인들이 새해를 잡은 까닭은
탈무드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때가 바로 티쉬리월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새해, ‘로쉬 하샤나’를 티쉬리월 초하루에 잡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로쉬 하샤나’를
지금까지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깊이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특히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무엇인지
깊이 찾아보는 것이지요.
둘째, 창조의 목적(뜻)대로 살지 못한 삶(인생)에 대한 회개이지요.
이것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연초에 행하는
신년부흥성회와 신년 산상성회로 토착화시킨 것이지요.
유대인들은 로쉬 하샤나의 첫날
다시 말해 새해의 첫날이 되면,
창세기 21장에 나오는 이삭의 탄생 이야기를 찾아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아들, 이삭을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한, 축복의 한 해를 주셨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창세기 21장의 배경이 되는 창세기 17장입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약속들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이자
그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약속이지요.
①창17: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②창17: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7: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많은 사람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17: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그리고 이 하나님의 약속은
다른 여인이 아니라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십계명 중 제칠 ‘간음하지 말라’는 이유: 약속, 기업 무를 자 때문)
창17: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여주인)라 하라
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①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②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엄청난 축복의 약속이지요.
문제는 아브라함의 나이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99세가 되는 해에 이 약속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창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과연, 99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다음 해가 올 수 있을까요?
사실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그러면 좀 더 명확한 답을 위해 이렇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99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얻을 수 있는 다음 해가 올수 있을 까요? 이것은 분명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정한 사람의 연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푸념하듯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창17:17 아브라함이 엎드려 (비)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7: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주 분명하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창17: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각주, 웃음)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자, 누구의 말대로 될까요?
아브라함 /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왜요?
하나님
자신의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야기를 드리겠지만
이삭이 ‘여호와 이레’라고 불리 우는
여호와의 산에서 영원한 언약의 증거물로 바쳐지게 된 것입니다.
영원한 언약의 증거
즉 이삭을 낳는 이야기가 창세기 21장에 나옵니다.
창2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1: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21: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21: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21: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21: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로쉬 하샤나 첫날에
창세기 21장에 나오는 이삭의 탄생 이야기를 찾아 읽었던 이유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어, 모든 이들과 함께 웃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어서
모든 이들과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함께 웃을 수 있는 한 해입니다.
그래서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 인생의 마지막 한 해이자 새해를 이렇게 맞이했던 것입니다.
신실하신 주님의 팔에 고요히 둘러싸인
보호와 위로 놀라워라
오늘도 나는 억새처럼 함께 살며(살지만)
활짝 열린 가슴으로 새로운 해 맞으렵니다.
그러니 여러분
두 가지 확신을 가지고 새해를 여십시오.
첫째,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둘째 하나님이 함께 웃을 수 있는 한 해를
약속의 자녀인 우리들에게 마련해 주셨다.
그런데요.
이런 우리의 기대와 달리 우리가 마주하는 있는 현실은
예기치 않은 일들 바로 시험입니다.
그래서 로쉬 하샤나 둘째 날
창세기 22장 ‘아케다 사건’을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합니다.
아케다, 묶는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의 낳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로 묶었던 사건을 ‘아케다’라고 하는데,
그 ‘아케다의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집에 웃음꽃이 한참 만발할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한 것입니다.
창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이 표현들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선택의 길’
그리고 ‘피할 길’을 없게 만듭니다.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 역시, 너무나도 명확한 하나님의 명령들이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명령은 단호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그 즉시 행동으로 옮깁니다.
이의를 제기를 하지도 않고, 협상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따릅니다.
창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22: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제삼일,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산을 향하여
삼일 길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일러준 산에 도착한 아브라함
일단 자신의 종들을 산 아래에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번제에 쓸 장작을 이삭에게 지우지요.
그런 후 번제 때 사용할 불과 칼을 손에 들고
이삭과 함께 산에 오릅니다.
이삭이 생각할 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창22: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그 때 아브라함이 뜻밖에 대답합니다.
창22: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저는 아브라함의 이 대답이 허풍이거나 거짓말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왜냐?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전능성을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하여 이미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삭을 통하여 이미 검증된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을 향한 시험의 의미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그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십니다.
그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 22장 13-14절의 내용입니다.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이처럼 우리가 로쉬 하샤나 둘째 날.
창세기 22장
이삭을 하나님의 번제로 묵었던 ‘아케다’ 사건을 읽는 이유는
예기치 않은 어려움 속에서도 약속의 믿음을 지키면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스스로 준비해 놓은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살다보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절망의 가장자리로 잔인하게 몰아가실 때가 있지요.
그 때 이 기도를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마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그러면 하나님이 여호와(아도나이) 이레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칭찬하시면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새)창22:16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친히 맹세한다. 네가 이렇게 너의 아들까지,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22:17 내가 반드시 너에게 큰 복을 주며,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 너의 자손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22:18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니,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