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사람이나 사물을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 순간을 명왕성에 라일락이 피는 순간 혹은 457년 만의 두 행성의 충돌이라고 명명하고 싶은 것이다. 우주의 섬세한 기운이 하나의 파동으로 전해지는 찰나, 온몸으로 반응하고 전율하며 새로운 생을 감각하는 것이다.
대상과의 깊은 교유는 곧 귀신을 만나는 일이고, 단 한 번도 감각하지 못한 생의 숨결에 온몸이 젖는 것이다. 이대흠 시인이 주목한 ‘손톱’을 만나는 순간이 그러했다. 죽은 몸에서도 자라는 손톱은 ‘항상 몸통보다 먼저 가서 더러움과 치욕을 견디고’ ‘꽃의 속 그 깊은 곳의 부드러움과 뜨거움’을 알려주는 전위의 촉수였다. 또한 ‘붉은 피가 흐르는 펜촉’이며 신생의 힘을 가지고 끝없이 뿌리로부터 벗어나려고 자유에의 치열한 의지를 불태운 것이다. 그러나 ‘저를 견디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다. 손톱 속의 ‘달’ 은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재생의 에너지를 예비하는 사물이요 비장의 무기였던 것이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유에의 염원을 잉태한 자궁이다. ‘짧은 죽음의 순간에야 날개를 얻는 새’ 는 손톱의 미래요 꿈이다. 죽어도 죽지 않는 외진 사랑이다. 그런 의지와 욕망이 죽은 몸에서도 손톱이 자라게 하는 것. 이 섬뜩한 진실이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일상을 긴장케 하는 것이다. ‘손톱’에서 ‘새’를 발견한 시인의 개성적 시안이 놀랍고, 요란하지 않고 차분하게 시상을 펼쳐가면서 설득력 있게 마무리한 시상도 인상적이다. 수구적이고 퇴행적 정서를 서정시의 실체인양 오인하고 있는 일부 구시대의 시들이 ‘손톱’에서 건강한 서정의 근력을 확인하는 순간 신서정의 새로운 동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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