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등학교 校歌 첫머리에 "안개도 시원하게 열린 梧美(오미)들, 錦江(금강)으로 흘러가는 실시내 끼고"라는 노랫말이 있는데 이는 거기서 한 십여리 남짓 떨어진 陰城郡 三成面 마이산(매산)에서 發源(발원)한 시냇물이 그 학교 옆을 지나 錦江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생긴 노래다.
이를테면 바로 거기가 西海로 흘러가는 錦江의 源川(원천)인 셈이다.
그 산 넘어 북쪽으로는 모든 물줄기가 漢江으로 흘러가는 支川(지천)이니 바로 그 마이산이 分水嶺(분수령)인 셈이다.
이곳에서 發源한 시냇물이 淸州의 無心川등 支流들과 合流하여 淸州의 西部에서 西南으로 흘르는 美湖川(미호천)을 이루고 이것이 鳥致院 옆으로 흐르는 鳥川(조천)과 합류하여 마침내는 錦江의 本流를 형성한다.
그 너비 50미터 안팎의 鳥川이 鳥致院이란 邑名(읍명)의 오리지날이란 설이 있다.
조치원은 행정구역은 忠南에 속하지만 生活은 淸州圈이다.
청주에서 불과 50리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고 바로 幅 50미터의 鳥川을 건느면 淸州外廓의 淸原郡 江外面域이다.
그 조치원의 中等學生들은 남녀 모두 淸州로 통학을 하고 있었다.
나의 母校인 淸州中高校 인근엔 지금은 다른곳으로 移轉된 옛날 淸州驛이 있었다.
아침 登校時間이면 조치원 汽車通學生 수백명씩 줄을 서서 인근 자기네 중고등학교로 걸어서 직행하곤 하였다.
물론 그 반대편인 曾平이나 槐山方面의 통학생들도 거의 그 시간대에 청주역에 下車하게 되어 구름처럼 모여든 이들 양쪽 통학생간에 종종 패싸움도 벌어졌다.
조치원은 청주에서 가깝지만 그네들 말소리의 억양은 우리들과는 딴판으로 大田쪽이거나 차라리 南道의 그것에 가까워 보였다. 바로 폭 50미터 鳥川의 이쪽과 저쪽의 말소리가 그토록 달랐었다.
地勢의 영향인지 행정구역 탓인지 言語風俗이 확연히 달랐다.
그 조치원은 京釜線과 忠北線의 鐵道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다.
淸州의 美風良俗은 종종 그 조치원 통학생들로 인해 汚染된다고 생각해서 그때 우리들 한가닥 하던 건달패들은 가끔 淸州驛에 나가 그들중 보스라고 지목되는 놈들을 두들겨 패대기도 했었다.
교통의 요지에 살게 되니 아마 그네들이 外地의 不良에 쉽게 빠져든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던 과거의 그 조치원이 지금 한바탕 荒凉하기 이를데 없는 들판이 되고 있다.
그무슨 세종도신가 뭔가 때문으로 이거야말로 아수라장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바로 OK牧場 決鬪의 退路(퇴로)가 보이지않는 싸움터다.
한쪽에선 국가 백년대계를 봐서 수도분할은 안된다고 하고 그 반대편엔 다음번 우리 대통령후보를 죽이려는 음모라고 반발하며 또 다른 野圈에선 여기서 밀리면 다시는 회생할수 없다고 決死抗戰 태센가 하면 또 그곳을 정치무대로 삼고있는 쪽에선 忠淸道民의 感性에 목을 매고 죽기살기다.
이럴바에야 모든걸 다 집어치고 원래대로 原狀復舊(원상복구)하는게 옳지 않을까 싶다.
그냥 조치원읍으로 되돌려 주어버리자는 것이다.
土地도 다 돌려주고 그동안 손해도 보전해 주고 손 훌훌 털고 나자빠지면 한결 편할지도 모르지 않겠나.
나의 拙見(졸견)으론 거기다가 인구 50만의 그무슨 도시를 건설하면 가장 위험한데가 바로 大田(한밭)일성 싶다.
그곳 수백만평 땅에 콩클리트로 바닥을 메우면 빗물은 자연 금강유역으로 그냥 흘러들것이 뻔하다.
바로 한밭벌 한가운데로 흐르는 강물이 넘쳐날게 너무도 뻔해 보인다.
그러지 않아도 여름 한철 장마때면 大田을 貫通(관통)하는 甲川이 늘 氾濫(범람)의 위험이 있었는데 조치원 일원에 도시를 형성하면 미처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한 물이 갑천유량을 증가시킬게 明若觀火(명약관화)하다.
자칫 세종시건설에 목을 매던 대전시민들이 스스로 재앙을 불러 오는 결과도 예상되는 대목이다.
그 옛날 부산을 가려면 조치원역에서 경부선으로 갈아탔고 또 방학때면 조치원역에서 내려 충북선으로 갈아타고 청주로 갔었다.
부산서 밤 10시 기차를 타면 조치원에 새벽 5시에 도착했는데 충북선은 조치원에서 8시에 출발하니 3시간정도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때 우린 주로 역전 목로주점에서 막걸리 잔을 기우리기 일쑤였는데 겨울철이면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화덕연탄불에 올려 놓은 막걸리 주전자가 부글부글 끓었다.
뜨끈한 술에 또 뜨끈한 술국을 곁들이면 새벽 空腹(공복)에 醉氣(취기)가 금방 요동을 친다.
바로 그럴 즈음 쓰러질듯 비틀대며 들어오는 乞人風(걸인풍)의 술놈뱅이들이 간혹 있었다.
驛前을 무대로 하는 일종의 雜輩(잡배)들이다.
그들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막걸리 한사발을 반은 흘리듯 꿀꺽거리자마자 머리를 주억거리며 내뱉는 세리푸가 있었다.
"時代가 英雄을 낳느냐 英雄이 시대를 만드느냐?"
이런 말을 그들은 반복해서 떠들어 댔는데 나는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세상을 비관하는 말로도, 아니면 술김에 한번 자기과시의 말로도 들렸는데 분명한것은 그네가 알콜중독자란것이다.
목소리도 점점 커지면서 금방 눈에 번쩍번쩍 생기가 돌곤 했다.
50년 전 조치원역전 풍경이 그랬었다.
지금 바로 그 일대가 세간에 골치를 앓게 하고 있다.
原案固守냐 修正案통과냐......
國家百年大計냐 정치적 약속과 신뢰의 고수냐, 아무튼 뭐가 뭔지 골치가 우지끈 띵하고 멍멍할 뿐이다.
그저 이것저것 다 집어치우고 엣날로 그냥 돌아갔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이젠 허망한 얘기일 뿐이다.
이미 역사의 수레바퀴는 루비콘강을 건넜고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그 결과나 지켜볼밖에.......!
정말로 時代가 英雄을 낳는지 두고 볼 일이다.
첫댓글 충청, 비충청권을 떠나 과연 그곳에 행정수도 이전과 투자가 꼭 필요한지를 정치적이 아닌, 국가적 차원으로 판단하여 결정해볼 일 같습니다. 노정부의 대못인지? 선거용 떡법인지?
"우리들이 이곳에 수도를 옮겨야 된다구 누가 말했시유..........괜히 가만 있는 사람 치고, 빼고 멍청도 맨들구 야단이란 말이유"
우리고장은 忠節의 땅으로 많은 선비,義人들이 지고났던 곳이다. 그래서 淸風明月이요 忠淸道라 했다. 1950년대 중반엔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며 야당이 기세를 한참 올릴때 淸州劇場 屋上의 확성기에선 趙炳玉博士의 찢어질듯 캬랑캬랑한 獅子吼가 흘러나왔다. "아아! 여기가 忠誠忠字 忠淸道로 알고 왔더니 이제 보니 버러지蟲字 충청돌세그려!" 상이군인 깡패 건달패 청년 어용단체등 자유당추종자들의 민주당 강연회 훼방꾼에 대한 울분을 그는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아부지 돌 굴러가유ㅠㅠㅠㅠ 쾍!" "말은 느려두 동작만큼은 빨러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