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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주교좌 성 요르고스 성당 순례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약 20분간 이동하면
이스탄불 파티흐구에 위치한 술탄 아흐메트 광장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를 비롯해 여러 유적지와 만나게 된다.
이슬람권 국가에 온 이상 비무슬림이어도 성지에 들어갈 때에는 어느 정도 예를 갖춰야 하는데,
남자는 무릎부터 팔뚝까지 가리고, 여자는 발목부터 손목, 머리카락을 다 가려야 한다.
그래서 미리 스카프와 치마를 준비해 와야 하는데, 없으면 입구에서 빌려 주기도 한다.
생전 처음 이슬람 모스크에 들어서니 휘황 찬란함에 찬사를 금할 수 없다.
여기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약 800년간 쓰고 버려진 궁궐에 들어선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푸른빛이 감도는 이즈니크 타일로 치장돼서 블루 모스크라는 별명도 있다.
내부의 중앙 돔은 높이 43미터, 직경 24미터에 이르는데, 돔은 하늘을 상징하고 신과 연결되는 공간으로 여긴다.
무엇보다 21,043장의 이즈니크 타일로 내부벽은 물론이고 지붕까지 장식해서 푸른빛의 황홀함을 연출하며,
특히 내부는 250개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다른 모스크에 비해 비교적 작으면서 늦은 1616년에 완공됐지만,
예술적 가치는 더 높게 평가받고 있는데,
1609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아흐메트 1세가 모스크 전체를 황금으로 지으라는 무리한 명을 내리자,
도저히 불가능한 터라 황금이라는 뜻의 Altin이 아닌 6을 뜻하는 Altu로 잘못 알아 들어서 첨탑이 6개인
모스크를 만든 것이라고 능청스럽게 대답하고 위기를 모면했다는 일화가 있다.
비교적 작은 모스크임에도 한 화면에 담기 어렵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바로 앞에 술탄 아흐메트 광장이 있는데,
히포드롬(Hippodrom) 광장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원래 동로마 제국 시대에 마차경주가 열리던 경기장였다.
지금도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고, 히포드롬에 서있던 오벨리스크도 건재한데,
바로 이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다.
테오도시우스 1세 때 직접 만든 것은 아니고 훨씬 이전인 기원 1,471년에 이집트의 나폴레옹으로 알려진
파라오 투트모세 3세가 시리아 정복을 위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넌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을 뽑아 온 것이다.
그것도 원래 높이가 60미터였는데, 옮기기가 힘들어 셋으로 나눈 후 맨 윗부분 약 20미터만 가져와 세운 것이다.
이것은 플라테아이(Plateae)의 청동 뱀 기둥.
기원전 479년에 31개 그리스 도시 국가가 페르시아에 맞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세워졌던 것으로 페르시아 군 방패를 녹여 만들었다.
청동 뱀 3마리가 얽혀 있던 기둥은 원래 높이가 8미터였는데, 오스만 제국 침공 시 화가 난 술탄이 한 마리의 목을
쳐냈고, 나머지 2마리의 목은 1,700년 경에 술에 취한 폴란드 대사와 그 일행이 쳐내는 만행을 저질러
지금은 목이 없는 5미터 정도만 세워져 있다.
쳐내진 한 마리의 뱀 머리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술탄 아흐메트 광장 인근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마치 6~70년대 중화반점 2층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곳은 꽤 유명한 맛집 인가보다.
이스탄불의 명물인 이네괼 쾨프테와 케밥이 함께 나오는데,
다진 양고기를 여러 가지 향신료에 양념해서 숯불에 구운 동그랑땡으로 매운 고추와 함께 나온다.
맵기가 청양고추 버금간다.
무엇보다 튀르키예 빵인 에크멕을 원하는 대로 주는 게 맘에 든다. 맛도 아주 탁월하다.
레스토랑 앞으로 트램이 지나간다. 트램이 편하긴 한데 문제는 정체하는 차와 똑같이 서 있어야 해서
시간단축은 아예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데 유적지가 도처에 널려 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바실리카 시스테른(Basilica Cistern) 또는 튀르키예어로 예레바탄 사르느스(Yerebatan Sarnici), 예레바탄 사라이(Yerebatan Sarayi)로 불리는 동로마 제국 시절의 지하 저수조.
'가라앉은 궁전'이라고도 하는데, 약 100km 밖에서 높은 수로로 물을 끌어와 지하 수조에 약 8억 리터를
저장해서 유사시 3개월 정도는 성 안의 백성들이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콘스탄티누스 시대부터 시작해 유스티아누스 1세 시대에 완성된 이곳의 기둥은 당시 주변에 있던
수많은 신전 등의 기둥을 징발해서 세웠다고 하는데, 특히 메두사의 머리가 받침대로 쓰인 기둥이 눈길을 끈다.
왜 이렇게 했는지는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는데, 이교도에게 보여 주려는 경고의 의미라든지,
그저 길이를 맞추려고 받침으로 썼을 뿐이라는 등의 소문만 무성하다.
저수조 바닥에는 그냥 의미 없이 던진 동전이 널브러져 있는데, 수질을 확인하기 위해 풀어놓은 물고기에게도
이로울리기가 만무하다.
드디어 이스탄불의 랜드마크 '아야 소피아' 대 모스크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스어 명칭인 '하기아 소피아', '아이아 소피아'는 거룩한 지혜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 또는 성령을 의미한다.
튀르키예어로 '아야 소피아', 라틴어로 '상크타 소피아'로 불리며 '성 소피아 성당', '성 소피아 사원',
'성 소피아 박물관'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과거 정교회 성당이자 오늘날의 모스크인 아야 소피아.
최초는 360년에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2세가 첫 번째 아야 소피아를 세웠지만,
40년 후에 아르카디우스 황제의 아내 아일리아 에우독시아 황후가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간접적으로 지적하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를 박해해 추방할 때 수도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소실되고,
그 후에 재건된 성당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휩쓴 니카의 반란 때 일어난 대화재로 잿더미가 됐다.
그 후에도 지진과 대화재로 무너지기를 수차례 반복하다가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아누스 1세의 명으로
537년 12월 27일에 오늘날 같은 모습으로 축성돼 정교회의 총본산 역할을 했다.
무슬림들에게 예배시간을 알리는 뾰족한 등대모양의 첨탑인 미나렛은 한참 후인 1500년 경 오스만 제국의
술탄 바지예트 2세가 모스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하나를 세웠고,
1570년 경에 셀림 2세가 나머지 3개를 더 세워 오늘에 이른다.
바닥 가운데 큰 원주 위에 작은 원들이 있는 문양은 옴팔리온(Omphalion)이라 해서 세상의 중심,
'배꼽'이라는 뜻이다. 원형 대리석들이 바닥에 끼워져 있는 형태이다.
하지만 1204년까지 정교회 성당으로 유지되다가 120년 4차 십자군 원정 때 약탈된 후 1261년까지
가톨릭 성당으로, 그 후에는 오스만 제국의 침공으로 정교회 성당과 모스크로 여러 번 바뀌다가
튀르키예가 독립하면서 1935년부터 2020년까지 일체의 종교 행사를 금하는 박물관으로만 개장했다.
오랫동안 박물관으로만 쓰인 까닭은 입장료 수입이 짭짤했기 때문이다.
현재 입장료는 25유로 약 4만 원가량이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 튀르키예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5,100만이었으니까 정치인들이 눈독 들이기 안성맞춤이다.
그러다가 튀르키예 무슬림의 성지로 다시 환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쳐 결국 2020년 7월 24일부터
모스크로 전환돼 오늘에 이르게 된다.
1층 성전을 배경으로 베로니카 자매가 기도하는 모습을 찍었더니 여자 감시원이 쪼르르 다가오더니
당장 지우라고 종용한다. 남자는 괜찮지만 여자는 안된다는 것이다. 헐~ 말문이 막힌다.
그 후로도 나만 졸졸 따라다닌다.
모스크 내에는 역사적인 보물과 다름없는 성화가 많이 그려져 있는데,
과거 십자군 원정 때에는 이슬람 성화 위를 회반죽으로 덧칠해서 카톨릭 성화를 그렸고,
오스만 제국 침공 시에는 정반대의 결과로 수많은 성화가 훼손됐다.
위 모자이크는 '데이시스 모자이크'로 데이시스는 간청 또는 애원을 뜻하는데,
심판자 그리스도가 죄인의 벌을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을 거느린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1261년에 그려졌다.
아야 소피아 내부의 다른 모자이크 보다 훼손상태가 심각해 성모 마리아는 얼굴과 왼쪽 어깨 부분만 남아 있고,
그리스도와 세례자 요한은 상반신만 남아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이건 괜찮은가 보다.
아야 소피아 순례를 마치고 근처 전통시장에서 자유시간을 갖는다.
신부님이 상품을 고르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이스탄불의 물가는 비싸기로 악명이 높아서 될 수 있으면 특산품 지도를 보고 현지에 가거나
지방 시장에서 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튀르키예 성지순례 내내 우리의 발이 되어준 독일 MAN사의 55인승 대형 버스다.
승차감이 너무 소프트해서 몇몇 분들이 차멀미를 호소한다. 나도 멀미가 심해 첫날부터 맛이 갔다.
원래 보스포루스 해협 크루즈 일정은 내일이지만, 내일 많은 비 예보가 있어서 앞 당기기로 한다.
멀리 내일 가볼 돌마바흐체 궁전이 보인다.
유람선 2층 선상에서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갈매기들이 먹이를 달라고 떼 지어 온 것이다.
저 멀리 내일 방문 예정인 돌마바흐체 궁전이 보인다.
갈매기 뒤로 시라간 궁전이 보인다.
보스포루스 대교에서 유턴을 해서 부두로 돌아간다.
교통지옥으로 유명한 이스탄불.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동서를 잇는 다리가 3개뿐이라는 것.
1,600만이 사는 대도시에 다리가 3개뿐이니 곳곳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난다.
심지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도 3개.
더욱 절망적인 것은 사람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인도가 없다는 점. 그야말로 자동차 전용도로뿐이다.
고양이와 개들의 천국 튀르키예.
반려용이 아니라 그냥 길에서 산다. 시민들이 잘 돌보고 시에서는 예방접종과 중성화 시술을 해 주기 때문에
피하지도 않고 잘 어울려 산다. 심지어 이 들을 관리하는 공무원이 있고,
겨울에는 얼어 죽을까 봐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열어두고 잠자리를 마련해 줄 정도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들에게 줄 사료를 판매하는 자판기가 있는데,
다 쓴 페트병을 넣으면 사료가 나온다고 한다.
오늘 저녁은 갈라타리 다리 1층에 있는 카페에서 먹는다.
갈라타리 다리 2층은 인도와 차가 다니는 도로이고, 1층은 상가로 쓰인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 위치해 있어서 미끼 없이 낚싯대를 드리워도 고기가 잡힐 정도로 물 반 고기 반이다.
함시라고 불리는 정어리와 고등어가 잘 잡힌다고 한다.
문제는 범법자들이 잔뜩 모이는 곳으로 관광객들이 피해야 할 곳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순간에 이슬이 빠지면 섭하지. 루도비코 형제가 거하게 한 잔 산다. 하마스!
튀르키예에서 첫날 여장을 라마다 이스탄불 메르테르에서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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