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白球)와 함께 한 60년'은 이용일(李容一)전 한국야구위원회 사무총장의 야구 일대기다. 이 전 총장은 한국 프로야구 탄생의 산파역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9년간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프로야구의 기반을 닦은 행정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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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야구부를 창설한 군산 야구의 대부로서 고교야구 전국 평준화의 기틀도 마련했다. 그의 회고를 통해 한국 프로야구 출범에 얽힌 비화(話)와 해방 이후 한국 야구의 성장 이면사 등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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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좀 만나주실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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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9월 초.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 이상주 박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호헌씨와 함께 셋이서 한번 만나자는 제의였다. 훗날 한국프로야구위원회(창립총회 직후 한국야구위원회로 개명) 초대 사무차장이 된 이호헌씨는 당시 방송에서 야구해설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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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전 쯤 이호헌씨의 부탁을 받고 내가 만든 A4용지 18쪽 분량의 '한국 프로야구 창립계획서'가 청와대에 전달된 직후였으므로 그와 관련한 얘기를 하자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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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라호텔에서 셋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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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배, 저 애먹었습니다. 아무래도 좀 수정을 해주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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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게 입을 연 이상주 수석에게서 나온 말은 내 계획서를 수정해 달라는 것이었다.(이상주 수석은 서울사범대 출신으로 나에게 '선배'라는 호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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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야구 창립계획서는 20일간 꼬박 밤을 새워 만든 나의 야심작이었다. 그처럼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계획서를 고위층에서 부정적으로 본다면 프로야구 출범이 시작부터 난항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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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정부에서는 영.호남의 지역감정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그런데 계획서를 보면 지역 연고지를 중심으로 한 6개 구단 리그가 계획돼 있습니다. 이 경우 영.호남은 물론 다른 곳의 지역감정까지 부추길 게 아닙니까. 다른 부분은 다 좋습니다. 그러나 지역연고제 만큼은 좀 수정해 주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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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년 3월 공식 출범한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은 국민화합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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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측에서 프로야구 창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도 궁극적으로 국민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내가 계획한 지역연고제라는 시스템이 지역감정을 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선입관을 준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이수석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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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제시한 지역연고제는 지역감정을 심화시키는 게 아니라 향토애를 고취시키고 애국심을 높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소득 2천달러밖에 안되는 국가에서 프로 스포츠를 운영하려면 '인기'라는 무형의 가치를 등에 업고 나가야 합니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고교야구를 발판으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각 지방의 고교출신 스타들이 한데 모인 팀을 만들어야 지역사회의 인기를 모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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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 수석은 내 설명을 듣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알겠습니다. 다시 검토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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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하게 기다리는 가운데 약 한달이 흘렀다. 10월 초순 이수석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이수석은 "계획서대로 추진하십시다"라고 짧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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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라고 되묻자 그는 "계획서에 있는대로 프로야구단을 운영할 대기업을 직접 접촉하시란 말입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속으로 '이제 됐구나'싶었다. 신라호텔에서의 3인회의가 본격적인 프로야구 출범의 계기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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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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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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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 전북 군산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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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동중-서울대상대-육군에서 내야수로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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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년 전북야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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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년 초대국민회의 대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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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년 대한야구협회 전무, 세계대회 개최기반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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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년 프로야구 탄생작업 주도,초대 사무총장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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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년 프로야구위원회 총재 특별보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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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년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주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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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프로야구위원회 총재 고문
▶ 프로야구 창설 작업을 시작한 지 약 3개월 만에 열린 한국프로야구위원회 창립총회.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서종철 초대 총재이며, 맨 왼쪽이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