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살아생전 새벽같이 일어나 예술가들의 낙원인 프로빈스타운을 홀로 거닐었다. 광활하게 펼쳐진 숲과 들판, 모래언덕, 바닷가를 누비며 온몸으로 자연 풍광을 보고 듣고 느끼려 애썼다. 불현듯 이 세상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듯한 감각에 휩싸이면 이를 노트에 아름답고 정연한 문장으로 써 내려갔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깊이 탐구하며 영혼의 지평을 넓히던 메리 올리버가 일흔 중반에 접어들며 쓴 시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오래 묵은 생의 고통을 떨쳐내고 죽음이란 신성한 법칙에 기꺼이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생장하고 스러져가는 자연물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보며 느낀 삶의 유한성과 신비를 고스란히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종내 시인은 노쇠한 몸으로 “날개를 단 기분을 느끼는 날들”(「할렐루야」)을 맞이하기에 이른다.
생의 끝자락에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필멸의 감각을 두려움 아닌 겸허한 환희로 수용한 메리 올리버. 긴 세월 자연과 교감하며 만물을 사랑하고 자신도 사랑하게 된 그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따스하고 너그러운 품으로 세계를 끌어안는다. 그리하여 시인이 남긴 애틋하고 진솔한 시어들은 우리에게 은총과 같은 위안을 선사한다.
어떤 이가 // 내게로 와서 / 머물더니 / 서서히 // 삶을 바꾸는 / 모든 것이 되었지. / 오, 모든 이에게 // 그런 행운이 왔으면 좋겠어. _「아픈, 아프지 않은」 중에서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을 만큼의 고통을 느꼈으나 들판에 피어난 꽃, 바람에 넘실대는 잎사귀, 우렁차게 흐르는 강물, 푸른 달빛에 몸을 맡기며 조금씩 평안을 되찾았다. 그렇게 자연 속에서 마음을 치유했던 경험을 글로 쓰던 시인은 세상을 긍정하고 찬양하는 법을 체득해갔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움직이지 않는 시커먼 것”(「겨울의 풍경」), “빛 없는 지하실”(「증거」)로부터 벗어나 “햇살 쏟아지는 길”(「산미겔데아옌데에서의 첫날들」)로 홀가분히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나는 잠이 깨어 / 어둠의 / 마지막 시간을 / 달과 단둘이 // 보내지. / 달은 / 마치 좋은 벗답게 / 내 불평 // 들어주고 / 그 빛으로 / 확실한 위안 주지. _「달과 물」 중에서
과거의 그늘에서 자유로워진 시인은 한결 너른 포용성을 보여준다. 「연못에서」는 시인과 갓 태어난 아기 기러기들의 만남을 그리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여섯 마리 아기 기러기 중 다섯은 무럭무럭 자라 튼튼한 날개를 갖지만 한 마리는 성장이 더디더니 끝내 날아오르지 못한다. 그러자 시인은 가을이 되어 멀리 떠나는 기러기들을 환송하고, 남은 한 마리를 조용히 부둥켜안는다.
자연은 많은 수수께끼를 품고 있고 // 그중엔 가혹한 것들도 있지. / (…) / 그리고 내가 /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 훨훨 날아간 / 그 다섯 마리 새끼와 // 두 부모에 대해선 / 기뻐하고 / 남아야만 했던 날개 없는 한 마리는 / 가슴에 품어주었지. _「연못에서」 중에서
“나는 신성함의 일부다”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숭고한 시선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메리 올리버는 삶 너머의 풍경까지 예민하게 감각한다. 「맴돌이를 생각하며」에서 시인은 어느 오후에 초록 늪지를 걷다가 한쪽 다리를 저는 사슴과 마주친다. 성치 못한 다리가 허공에서 맴도는 모습을 보며 사슴에게 ‘맴돌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은 “그저 말이나 웅얼거리는 무해한 웅얼이”라고 칭한다. 둘은 종과 언어를 초월한 교감을 나누는데, 오래지 않아 맴돌이는 어느 청년의 화살에 맞아 생을 마감한다. 이때 시인은 사슴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연민하지 않고 “우리 모두 미완성의 삶을” 남길 뿐이라 읖조린다.
「클라리온강에서」도 생사를 초월한 듯한 태도는 여실하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오후 내내 강물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버터이자 행운일 것이고, 자신의 개를 죽인 진드기, 백합, 숲, 사막, 녹아가는 만년설, 잠재적으로는 우리 모두일 것이라 상상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에서 신의 모습을, 일종의 신성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렇듯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우리가 “신의 의도와 희망의 작은 조각”일 수 있다고 말한다. 만물을 경외하는 자세를 통해 삶에 깃든 숭고함을 깨닫도록 이끈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보는 이들을 감동시켜 / 숭고한 생각으로 이끄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 세상이라는 훌륭한 스승에게 영광 있으라. _「증거」 중에서
당신도 잠시 멈추어 서서 / 찬미했으면 좋겠어, / 그 날씬한 줄기를, 그 잎사귀들, 신성한 씨앗들을
---「또 아까시나무」중에서
가끔 나는 / 어디서든 / 그저 서 있기만 해도 / 축복받지.
---「이른 아침」중에서
나 영원히 팔팔함 잃지 않기를, / 나 영원히 무모함 잃지 않기를.
---「기도」중에서
내가 사랑하는 이가 늙어 병들었지. / 나는 불들이 하나씩 꺼져가는 걸 지켜보았어. /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 우리에게 주어진 걸 받고 / 때가 되면 돌려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 기억하는 것뿐이었지.
---「클라리온강에서」중에서
살아 있지 않을 때까지 / 살아 있으라는 / 가장 신성한 법칙에 / 순종하는 자세.
---「독보적이고 활기찬 삶」중에서
다시 여름이 시작되네. / 나에게 아직 남아 있는 여름은 / 몇 번이나 될까?
---「또 다른 여름이 시작되어」중에서
증거 3
메리 올리버
당신에게 다시 묻고 싶어 ㅡ 당신이 삶이라는 이 모험에 매혹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당신을 매혹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당신은 모래주머니라도 찬 듯 늘어진 귀를 달고 어디 있는 거지? 들어봐, 우리 모두 들어야 할 게 많아. 모래주머니를 찢어버려. 그리고 들어봐.
이렇게 말해보지 ㅡ 만일 당신이 구두 수선공을 멸시하면 당신이 맨발로 다닐 거라고 생각해도 될까?
그래도, 나, 먼저 싱그러운 아침을 향해 나가서 주위를 둘러보며 이렇게 외치는 내 목소리 듣고 싶어 ㅡ 돈의 집이 무너진다. 돈의 집이 무너진다. 잡초가 무성해진다. 잡초가 무성해진다.
우선, 달콤한 풀
메리 올리버
7
처음에 난 주로 나 자신을 사랑했던 것 같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했으니 그럴 만도 했지. 그건 오래전 일이지. 그 후로 나를 속박하는 것들로부터 어렵게나마 벗어났지.
내 마음을 지배하려고 했던 것들 말이야. 난 그것들을 몰아내어 감상의 쓰레기더미에 버렸지. 그것들도 어떤 식으로든 영양분이 될 거야
나이가 들어서 그동안 배운 것들을 소중히 여겼고 그러자 다시 젊어졌지.
그리고 내 앎의 전부인 이 진실을 말하는게 무슨 위험이 될까?
먼저 자신을 사랑하기를, 그다음엔 그걸 잊어.
그다음엔 세상을 사랑하는 거지.
참으로 섬세하고 겸허한 목소리를 지닌
들참새에게 고마워 하며
메리 올리버
난 이 시대의 영리함을
즐겁고 편안하게 누릴 수가 없어.
온통 컴퓨터 이야기에,
뉴스는 폭탄과 피로 도배되니까.
오늘 아침, 싱싱한 들판에서
숨겨진 둥지를 발견했어.
거기 따스한 얼룩무늬 알 네 개 들어 있었지.
그 알들 만져보았어.
뉴욕시의 전기를 다 합친 것보다
더 큰 경이를 느끼고는
조용히 발길을 돌렸지.
클라리온강에서
메리 올리버
1
신이 누군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어.
하지만 이 말은 할 수 있지.
나는 클라리온이라는 이름의 강에서,
물결 철썩이는 바위에 앉아
오후 내내 강물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어.
물이 달려와 부딪칠 때마다
바위는 할 말이 있었고,
강물도, 심지어 물 아래 뻗은
이끼마저도 그랬지.
나는 서서히, 아주 서서히, 그들이 무얼 말하고 있는지 또렷이 알 수 있었어.
강이 한 말- 나는 신성함의 일부다.
나도 그렇다,라고 바위가 말했어. 나도 그래, 물 아래 이끼도 속삭였지.
나, 전에도 그 강에 몇 번 갔었어.
곧바로 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강을 탓하진 마.
한 시간 만에, 하루 만에 그 목소리들을 들을 순 없으니까.
자아가 귀를 틀어막고 있으면 그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아.
마음이 시끄럽고 야망에 가득 차 있다면 그 어떤 소리도 듣기가 어렵지.
필립의 생일
메리 올리버
마음 깊이 좋아하는 친구에게
내가 애지중지하던 걸
줬어.
그건 그저
고래 귀에서 나온
굉장히 멋지게 생긴
작은 뼈일 뿐이었지.
그래도 그걸 내주자니
조금 마음이 아팠어.
이튿날 아침
여느 날처럼, 해 뜰 무렵에
밖으로 나갔는데
거기, 항구에, 백조가 있었어.
그라고 해야할지 그녀라고 해야할지 모를
그 백조, 거기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아름다움은
선물이었지.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주면, 받게 되어 있지.
수수께끼, 그래
메리 올리버
진실로 우리는 너무도 불가사의하여 도무지 풀 수가 없는 수수께끼들과 더불어 살지.
어떻게 풀은 어린양들 입속에서 자양분이 될 수 있는지.
우리는 위로 오르기를 꿈꾸는데
어떻게 강들과 돌들은 영원히
중력에 충실한지.
어떻게 두 손이 맞닿으면 그 유대가
절대로 깨지지 않는지.
어떻게 사람들은 기쁨을 얻기 위해,
혹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시의 위안을 찾아오는지.
자신이 답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과는 늘 거리를 두고 싶어.
"봐!"라고 말하며 경이의 웃음 터뜨리고
고개 숙이는 사람들,
늘 그런 이들과 어울리고 싶어.
나무들을 꿈꾸며
메리 올리버
내 안에 뭔가가 있네, 나무들을 꿈꾸었던,
조용한 집과, 소박한 푸른 목초지를 꿈꾸었던,
번잡한 시내 중심에서 약간 떨어져,
공장, 학교, 탄식들로부터 약간 떨어져.
난 시간을 가지리라라고 생각했어, 할애할 시간을,
단지 시냇물과 새들만을 벗 삼아,
내 삶에서 우러나오는 약간의 거친 시들을 쓰기 위해.
그러곤 내게 떠올랐네, 죽음 또한 그렇다고,
모든 것으로부터 약간 떨어져 있는 것은.
내 안에 뭔가가 있네, 여전히 나무들을 꿈꾸는.
하나 단념해. 조용한 삶을 그리워하며,
세상의 예술가 절반은 움츠리거나 떠나갔네.
누구라도 해결책을 찾았다면, 말해보라고 해.
그동안 난 탄식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을 기울일 테니,
거기엔 우리의 진정한 참여를 이 시대가 간절히 바라며,
모든 위기의 날카로운 날들이 거기를 향하고 있네.
그렇지 않기를 난 바라네, 하나 현실은 그렇네.
누가 평온한 날을 소재로 음악을 만든 적이 있단 말인가?
난 아주 단순한 글을 쓰고 싶어
메리 올리버
난 아주 단순한 글을 쓰고 싶어,
사랑에 대해
고통에 대해
당신이 읽으면서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글을 읽는 내내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내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일 수 있도록,
내 글은 나만의 유일한 것이지만
당신의 마음으로 들어갈 테고
그리하여 결국
당신은 생각하겠지,
아니, 깨닫게 되겠지,
그동안 내내
당신 자신이
그 단어들을 배열하고 있었음을,
그동안 내내
당신 자신이
당신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이야기하고 있었음을.
달과 물
메리 올리버
나는 잠이 깨어
어둠의
마지막 시간을
달과 단둘이
보내지.
달은
마치 좋은 벗답게
내 불평
들어주고
그 빛으로
확실한 위안 주지.
하지만 달도, 누구나 그러하듯
자신만의 삶이 있어.
그래서 마침내
달이 고개 돌리고
더는 들어주지 않는 걸 난 이해하지.
달은 내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내 삶으로 들어가기를 바라지.
그리고, 달은, 우리 모두가 꿈꾸듯,
사모하는 검은 물 가까이
몸을 구부리고
흰 팔로 노 저어
지나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