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장애비하’ 판결, 너무나 허탈했다
법원 청구 각하·기각 결정, 재판과정 불성실 태도
판결 직후 “좌절감 느껴” 분통만…20일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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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부지방법원 전경.ⓒ에이블뉴스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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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도 없이 30초가량 세 문장으로 끝난 간결한 판결이었다. 1년 만에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장애비하발언에 대한 판결 결과가 나왔지만, 끝내 법원은 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유도 없이 말이 되는 판결이냐” 판결 직후, 원고로 참여한 조태흥 씨는 재판장 밖에서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재판장 홍기찬)는 15일 조 씨 등 총 5명이 전·현직 국회의원 6명(곽상도, 이광재, 허은아, 조태용, 윤희숙, 김은혜)과 박병석 국회의장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인 차별구제청구소송에서 박 의장에 대한 청구를 각하하고, 나머지 의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도 기각했다. 소송 비용 모두 원고들이 부담토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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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5개 단체는 2021년 4월 20일 오전 10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국회의원들의 반복되는 장애비하 발언에 대한 국회의장 및 국회의원 대상 공익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에이블뉴스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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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비하발언 반복, 국회의원‧의장 소송 제기
앞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지난해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1년간 장애 비하 발언을 한 전·현직 국회의원 6명과 박병석 국회의장을 상대로 장애인 차별구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연구소는 원고 1인당 100만원의 위자료와 함께 비하발언을 한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권 행사,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에 장애인 모욕 발언 금지 규정 신설도 함께 요구했다.
피고인 전·현직 국회의원들은 ‘외눈박이 대통령’(곽상도), ‘정책 수단이 절름발이(이광재)’, ‘집단적 조현병이 의심된다’(허은아), ‘대통령의 대일인식 정신분열적(조태용)’, ‘우리 정부를 정신분열적이라고 진단(윤희숙)’, ‘꿀 먹은 벙어리(김은혜)’ 등의 장애 비하 발언을 한 바 있다.
■3차례 재판, 불성실한 태도 일관 ‘빈축’
재판 시작 전부터 피고인 국회의원들은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소장을 송달받은 후 한 달 내에서 답변서를 제출해야 하지만, 제출 기한을 지키지 않고 늑장 대응을 보였으며, 일부 의원들은 답변서를 통해 ‘언론과 시중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용어’, ‘서로 다른 생각이나 행동, 주장이 동시에 배출되는 상황에서 사용되는 일반화된 용어’ 등이라며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국회의원 대표 격인 박병석 국회의장을 상대로 공식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이뤄지지 않았다. 박 의장은 재판부에 ‘원고들이 의장을 상대로 사법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사건’이라면서 ‘국회의장을 상대로 징계와 개정을 요구할 권한이 없다’는 골자의 답변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재판은 총 3차례 진행됐지만, 피고인 국회의장과 전·현직 국회의원 모두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소송대리인인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최갑인 변호사는 “국회의원들은 의견서를 제때 작성하지 않았고, 단 한 명도 재판에 출석한 적 없다”면서 “대리인도 선임하지 않거나, 선임했다 해도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아서 재판부의 지적 이후에서야 제출한 적 있다. ‘나만 비하발언을 쓰는 것이 아닌데, 왜 우리한테만 그러느냐’라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 같다”고 재판에 임하는 의원들의 태도를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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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판결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는 원고들.ⓒ에이블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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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결과에 “좌절감”…20일 기자회견 예정
허무하게 끝난 소송 결과에 소송 원고로 참여한 장애인 당사자는 “좌절감을 느낀다”고 했으며, 소송대리인 또한 “오랜 시간 장애인 비하 표현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당사자들에게 깊은 절망과 좌절감을 줬다”고 비판했다.
먼저 원고로 참여한 국제장애인노동인권연맹 조태흥 사무총장은 “국민의 상식선에서 법원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오늘의 결과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의원들의 비하발언과 더불어 법원의 판결 모습들이 또 한 번 장애인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는 결과라서 심히 안타깝고 울컥한 마음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이어 조 사무총장은 “대한민국이 정말 인권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인지 서글픈 마음”이라고 허탈함을 표현했다.
역시 원고로 참여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주성희 간사는 “현재 어느 당 대표로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사회적 지위가 가진 말의 힘”이라면서 “대한민국이 나서서 권리를 존중받지 못하는 장애인을 보호해주고 권리를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아서 당사자로서 좌절감을 느낀다”고 입장을 밝혔다.
소송대리인인 최갑인 변호사는 “국회의원들은 절름발이, 벙어리, 외눈박이 같은 표현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했고, 소송과정에서도 제대로 된 사과 없이 ‘비하표현이 아닌 표현의 자유다’, 심지어는 면책 특권까지 주장하기도 했다”면서 “더욱 허탈하게 했던 것은 자신들만이 아니라 다른 의원들도 장애인비하발언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국회의원 의무를 외면하는 것이며, 오랜 시간 비하표현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당사자들에게 깊은 절망과 좌절감을 주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이미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국회의원의 장애인비하표현에 대해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의견표현을 했다. 이에 대해 20대, 21대 국회 모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에서 다시 한번 국회의장에게 재발방지대책을 촉구한다”면서 “당사자들과 협의하에 항소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