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20]우리말에도 ‘궁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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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만에 고향집에 돌아오니, 툇마루에 책소포가 놓여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이 바로바로 책선물인 것을. 화들짝 반겨 뜯어보니, 신문사(1980-2001)의 직장동료가 보냈다. 각자 다른 길을 걸은 지 사반세기가 흘렀건만, 잊지 않고 보내준 친구가 고마웠다. 바쁘게 살다가도 문득 떠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저서 한 권을 보내주기는 쉬운 일이 아닐 터. 나를 기억해주다니? 게다가 책선물까지. 이럴 때 ‘사는 맛’이 나지 않겠는가. 나도 그 친구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하하.
아무튼, 우리말 궁합사전이라니? 제목부터가 재밌다. 『우리말 궁합사전-모르면 틀리는 한국어 단짝표현 100』(여규병 지음, 383쪽, 유유 2024년 7월 펴냄, 18000원). 따끈따끈한 친구의 신작이다. 궁합宮合이라면 남녀의 '몸궁합'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 최근에는 ‘음식궁합’도 들어봤지만(삼겹살에 소주, 홍어회에 막걸리 등), 우리말 궁합이라는 말은 듣느니 처음이다. 부제의 ‘단짝 표현’을 궁합이라 한 것같은데, 몇 편을 읽다보니 일리가 있다. 낱낱의 단어에 관용구처럼 붙어다니는 단어를 궁합이라 한 것이다. 저자가 나름 고심하여 100개의 단어를 선정했는데, 나로선 평소 대부분 알고 있는 것들이나(내근기자 20년 중 교열기자로 4년 일한 경력 덕분. 편집기자 16년), 솔직히 처음 안 것들도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쓰는 단짝표현 100선이 대부분 틀렸고 잘못 쓰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4개를 들겠다. 목차 사진을 보고 궁금하시면, 우리말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작을 사보시면 좋겠다.
‘피로 회복’하면 ‘바카스’를 떠올릴 것이다. 지금은 세련되게(?) 영어로 고쳤으나(Drive Your Energy), 예전에는 병에 ‘피로 회복’이라고 쓰여 있었다. ‘피로를 어떻게 회복하느냐? 회복이라는 뜻도 모르느냐?’는 계속된 지적질에 제약사는 두 손을 들었다. 피로疲勞는 풀어야 할 대상, 즉 해소解消의 대상이지 회복回復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을. 피로회복은 very tired 상태를 refresh하는 게 아니고 very very tired하게 하는 것이므로, 우리말에서 영구히 추방되어야 할 단짝표현이다.
무식한 정치인들이 신성한 국회에서 자꾸 “금도를 지키라”며 웨장을 친다. 이때 금도를 禁度(도를 넘다)로 아는 모양인데,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금도襟度(襟은 ‘옷깃 금’자로 마음과 생각을 뜻하며, 다른 사람을 포용할만한 도량의 의미)의 잘못 쓰는 말이다.
민원창구에서 흔히 말하는 ‘접수接受’도 대표적으로 잘못 쓰이는 표현이다. ‘방문 접수’ '1번창구로 접수하라'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접수의 주체가 민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접수는 신청이나 신고를 구두나 문서로 받거나 돈이나 물건 따위를 받는다는 뜻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실 것이다.
해마다 수능시험만 끝나면 나오는 말이 ‘난이도’가 높네, 낮네인데, 이 말도 어불성설이다. 난이도는 ‘어렵고 쉬운 정도’의 뜻일 터, 높다, 낮다고 할 수 없으니 ‘난도가 높다’라 해야 맞다. '틀리다'와 '다르다'의 차이도 알 것이나, 열이면 아홉이 '틀리다'로 쓰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문제는 틀렸거나 잘못된 줄을 알면서도 ‘그게 뭐 그리 대수냐?’며 우습게 생각하고, 굳이 그렇게 쓰는 언중言衆도 문제이나, 언론이 바로잡기는커녕 고치려는 노력과 홍보를 하지 않는 까닭을 모르겠다. 영어나 외국어는 문법을 비롯해 스펠링 하나 틀려도 ‘무식하다’며 호들갑을 떠는 것과 비교해 보라. 우리나라는 명백히 법치法治국가이다. 법法은 국가의 기본인 헌법을 비롯하여 민법, 형법 등 수많은 법이 있다. 여기에 더해 '맞춤법'이 있다. ‘맞춤법’도 우리가 지키고자 만든 우리나라의 법이다. 맞춤법을 잘 모르거나 무시한대서 될 말인가. 지하의 세종대왕이 통곡할 일이다. 맞춤법을 어기면 어떤 형벌을 가할 수는 없는 걸까.
사실, 우리는 우리말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KBS에서 잘 하는 프로그램 하나가 <우리말 겨루기>이다. 실제로 우리는 얼마나 맞출까? 도대체 우리말의 끝은 어디이고, 띄어쓰기는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모르는 단어, 헷갈리는 단어는 또 왜 그렇게 많은 걸까? 우리말 공부를 ‘달인’들처럼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관심은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모국어(mother tongue)여야말로 바로 우리 어머니의 ‘혀’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런 '준수한' 우리말 사랑에 대한 책을 내게 된 것은 신문사에서 30년 넘게 우리 말글을 돌본 내공이 있어서이다. 네이버 블로그 '말글 돋보기'을 운영하며 한국고전번역원 교정위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십 수 년 동안 국립국어원 국어문화학교에서 강의한 경력 등 짱짱한 실력파이다.
아무튼, 우리가 잘못 쓰고 있는 말은 너무나 많다. 결실을 맺다, 피해를 입다가 맞는 말인가? 역대급 기록은 대체 어디를 기준한 말인가? 영부인은 또 어떤 때 쓰는가? 방송에서 자기의 아내를 ‘부인’이라고 말하는 유명인들도 많다. 저자는 잘못된 궁합의 우리말을 짧게 설명한 후 ○×용례를 친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369쪽에 있는 <단짝 표현의 궁합>이 맞는지 틀리는지 자가테스트도 해보자. 우리말 관용구 ‘알아야 면장을 하지’할 때의 ‘면장’이 주민센터의 면장面長이 아니고 ‘알아야 곤장형을 면한다’는 데서 유래됐다는데, 곤장을 맞지 않으려면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그 전과 비교하면 천지차이인 것을. 별볼일 없는 낙향거사를 그래도 잊지 않고, 책을 보내준 친구가 고맙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 산다(學老到老:쉬에 따오 라오). 상비책, 강추!
첫댓글 금도襟度의 원 뜻을 이제사 알았다요ㅎ
뜻글자인 한자어의 발음이 소리글자로 읽히면서 오는 어감의 차이 때문에 이렇게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판사판이여~, 이 화상아' 등...
객기(客氣)를 부린다는 객기도 중국에서는 '손님 신분에 맞게 예의 바르다' 라는 뜻이라지만 객기는 어감 상 왠지 객기? 같은 것처럼 ㅎ
산사태, 눈사태의 사태 (沙汰, 砂汰) 라는 말도 어감 상(事態) 폭우, 물난리, 강풍, 태풍, 화재 같은 두려움이 체감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