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는 성도의 교제가 풍성한,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지체들에게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주셔서
그것을 나누는 교제를 하게 하시니 이런 모임이 어디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이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지체들을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늘 주님 안에서 안전하게 거하게 하셔서
복음을 전하고, 생명의 삶을 증거 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저의 부정성을 덮어 주옵소서.
데살로니가 전서를 시작합니다.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본문 주해)
AD 49년경 바울이 동역자 실라와 함께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였다. 그는 3주간 ‘성경’(구약)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였다. 경건한 그리스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렇게 세워졌다.(행17:1~9)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3년 후 고린도에 있을 때 데살로니가에서 온 사람들에게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듣고서 보낸 편지이다.
1~3절 : 바울과 실루아노(실라)와 디모데의 이름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인사한다.
‘교회’(1절)는 복음을 듣고서 믿게 된 성도들 즉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을 가리킨다.
바울과 동역자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한다.
은혜는 주님 안에서의 기쁨이며 그로 인해 주어지는 것이 평강(샬롬)이다.
또 그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을 기억하며 중보한다. 그들 안에 있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기억한다.
‘믿음의 역사’--자기의로 이루는 어떤 엄청난 업적이 아니라, 참으로 영생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알고서 그것을 위하여 세상의 것들을 버리는 일을 가리킨다.
‘사랑의 수고’--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수고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나타났다. 그러므로 성도의 수고는 이 사랑으로 인해 자원함으로 하는 수고이다.
‘소망의 인내’--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끝까지 견디는 것이다.
4~6절 :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나타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그리스도인의 본질적 삶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임을 입증한다.(4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도록 고생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러한 바울의 모습을 알면서도 그가 전한 복음을 받아들였다. 성령으로 아니하고서는 누가 그러한 복음을 듣고서 기뻐하고 따르겠는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결국 복음을 인하여 같은 고난을 받는데도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이요, 바울도 그 십자가의 고난을 증거 하면서 온갖 환난과 고생과 고난을 당하였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이러한 고난의 주님과 또 바울을 본받는다는 것이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라는 것이다.(5~6절)
7~8절 : 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 그들로 인해 ‘주의 말씀’(복음)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각처에 두루 퍼지게 된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주와 사도를 본받은 삶은 그들의 주변뿐 아니라 각처에 전파되는 ‘주의 말씀’이 되었다.
그것은 한 사람, 한 공동체가 복음을 받아들여 주를 본받게 되면 그것 자체가 복음 전파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9~10절 : “그들은 우리를 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영접했는지,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그 아들 곧 장차 내릴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시기를 기다리는지를, 그들은 말합니다.”(새번역)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문은 당시 참된 회심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참된 회심이란, 첫째 우상에서 등을 돌리는 것이요, 둘째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셋째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의 묵상)
바울 일행에게 겨우 3주 동안 복음을 전해 들었을 뿐인데 데살로니가에 믿음의 공동체가 세워진다.
성령의 역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임한 은혜가 마치 내게 부어주신 은혜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복음을 듣고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내게도 펼쳐지기 때문이다.
믿음의 역사란 믿음의 행위이다.
그런데 이 믿음의 행위란 자기의로 이루는 어떤 놀라운 일의 성과가 아니라, 참으로 영생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알고서 그것을 위하여 세상의 것들을 버리는 일을 가리킨다.
내게도 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세상 것에 대한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십자가에 연합되기를 기도하며 주님만을 더 알아가기를 원하는 삶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수고는,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죽도록 충성하는 수고, 자원하는 수고이다.
과거에는 나 자신을 나타내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수고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사탄의 속임수임을 알게 되니, 자기의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내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죽으신 주님의 그 사랑을 알기에,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헌신하기를 원하고 기도하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니 지치지 않게 하시는 것이다. 때로 낙심하게 되더라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신다.
소망의 인내는 더욱 뚜렷해졌다.
주님 다시 오심을 열렬히 소망하며 기다리는 자가 되었다.
매순간 이 소망을 기억하며 산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때에야 비로소 이 험하고 악한 세상이 심판을 받고, 나의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월요복생반 나들이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들은 복음과 생명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참된 회심을 생각하고, 삶을 나누고, 질문을 하고, 답을 얻고.....진리를 알아가는 기쁨이 우리 각자 안에 넘치니 그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이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어제 우리들의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다.
말씀의 통치를 받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 우리 안에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더욱 불일 듯이 일어날 것을 확신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주를 위해 사는 자로 소문이 나기를, 그리고 그 소문이 거짓이 아니라 진실 된 것임을 알고 더욱 많은 영혼들이 말씀 앞으로 달려오길 기도한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그저 막연하게 나열된 구절로 대했던 말씀이 오늘은 너무도 뚜렷이 내 머리와 가슴에 울려퍼지니 내 영은 이미 펄쩍펄쩍 뛰는 기쁨, 할로마이의 춤을 춘다.
(묵상 기도)
주님,
어제의 행복한 나들이를 오늘 말씀으로 정리하여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세상의 헛된 이야기를 말할 겨를이 없이,
오직 영생의 교제를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숲의 새와 같이 기뻐하는 지체들을 보는 기쁨도 넘칩니다.
말씀의 통치를 받는 자들의 기쁨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에게 일어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저희도 각자 처한 위치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게 하시고
입만 열면 복음을 말하고 생명의 삶을 증거 하는 자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