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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른들에게 내가 그린 걸작을 보여주면서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른들은 “모자가 뭐가 무섭다는 거니?”라고 되물었다.
내가 그린 것은 모자가 아니었다.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뱀의 모습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어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보아뱀의 뱃속을 그려주었다.
어른들에게는 언제나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나의 그림 제 2호는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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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어린 왕자가 있었는데, 잘 웃었고, 양 한 마리를 갖고 싶어 했는데 그게 바로 그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양을 갖고 싶어 한다면 그건 그가 이 세상에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여러분을 어린아이로 취급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소행성 B612호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질문으로 조용히 넘어갈 것이다.
어른들은 항상 이런 식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는 어른들에게 너그러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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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하루에 해가 지는 걸 마흔네 번이나 보았어요!”
그리고 잠시 뒤에 너는 다시 말했지.
“몹시 슬플 때에는 해가 지는 모습이 좋아져요······.”
“그럼 마흔네 번이나 해 지는 걸 보던 날, 너는 그렇게도 슬펐니?”
그러나 어린 왕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수백만 개의 별들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요.
그 사람은 마음속으로 ‘내 꽃이 저기 어딘가에 있겠지······’라고 생각할 거라고요.
하지만 양이 그 꽃을 먹어버린다면, 그 사람한테는 갑자기 모든 별이 빛을 잃은 기분일 거라고요!
그런데도 중요하지 않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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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어떤 장군에게 나비처럼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라고 명령한다면,
또 비극을 한 편 쓰라고 명령하거나, 물새로 변하라고 명령했는데
그 장군이 그 명령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그의 잘못이겠느냐, 짐의 잘못이겠느냐?”
어린 왕자가 자신 있게 말했다.
“물론 페하의 잘못이죠.”
“그렇다. 누구에게든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해야 하느니라.
권위는 무엇보다 사리에 맞는 일을 할 때 주어지는 법이다.
가령 네가 너의 백성에게 바다에 빠지라고 명령한다면 그들은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내가 모두에게 복종을 요구할 권리를 갖는 이유는 나의 명령이 도리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난 지리학자다.”
“지리학자가 뭐예요?”
“지리학자란 바다와 강, 도시와 산, 사막 등이 어디에 있는지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되게 재밌겠네요. 정말 직업다운 직업을 찾은 것 같아요!”
어린 왕자는 그렇게 말하고, 지리학자의 별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처럼 아름다운 별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별은 너무 아름다워요. 바다도 있나요?”
지리학자가 대답했다.
“그건 모르겠구나.”
“정말요?”
어린 왕자는 조금 실망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산은요?”
지리학자가 말했다.
“그것도 모르겠는걸.”
“그럼 도시와 강과 사막은요?”
“그것도 모르겠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지리학자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난 탐험가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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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시적인 것’이 무슨 뜻이냐고요?”
“그건 ‘어느 순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는 것’이란 뜻이다.”
“내 꽃도 어느 순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건가요?”
“물론.”
어린 왕자는 돌 위에 걸터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라도 언제든 다시 자기 별을 찾아낼 수 있게 하려고 별들이 밝게 빛나는 걸까?
내 별을 봐. 바로 우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잖아······. 하지만 무척 멀리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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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거야? 사막에선 좀 외롭구나······.“
뱀이 말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아니야, 친구를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요즘엔 많이 잊혀진 거야.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너는 아직 수많은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조그만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나한테는 네가 필요하지 않아. 물론 너한테도 내가 필요하지 않고.
너에게 나도 수많은 다른 여우와 비슷한 여우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거야.
나한테 너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고, 너한테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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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삶은 확연히 달라질 거야.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너만의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숨어들게 만들겠지만,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 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저길 봐!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먹지 않아. 밀은 내게 아무 쓸모가 없어.
밀밭은 나에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슬픈 일이지!
하지만 너는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카락을 지녔어.
따라서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밀밭이 아주 근사하게 보일 거야!
밀밭이 황금빛으로 물들 때 너를 기억나게 해줄 테니까.
그럼 나는 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까지 사랑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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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네 시가 다가올수록 나는 더욱 행복해지겠지.
네 시가 되면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럼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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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그리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여우가 말했다.
“아! 난 울어버릴 것 같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네 잘못이야. 나는 네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널 길들여주길 원했잖아······.”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런데 넌 울려고 그러잖아!”
“그래, 맞아.”
“하지만 너는 아무것도 얻은 게 없잖아!”
“아니야. 얻은 게 있어. 밀밭의 색을 사랑하게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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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비밀을 가르쳐줄게.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봐야만 잘 보인다는 거야.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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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은 아름다워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에······.”
“그렇구나.”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달빛 아래 주름처럼 펼쳐진 모래밭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어린 왕자가 다시 말했다.
“사막은 아름다워요.”
사실이었다. 나는 언제나 사막을 사랑했다.
모래 언덕 위에 앉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무엇인가 빛난다.
어린 왕자가 말했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샘을 숨겨놓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나는 물을 마셨다. 갈증이 가라앉자 숨 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해가 뜨면 모래는 꿀 색깔로 변한다. 나는 그런 꿀 색깔에도 행복했다.
괴로워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슬픈 풍경이다.
앞쪽에 그려진 풍경과 같은 풍경이지만, 여러분에게 확실히 보여주려고 나는 그 풍경을 다시 그렸다.
어린 왕자가 이 땅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곳이 바로 여기였다.
이 그림을 자세히 봐두었다가 여러분이 언젠가 아프리카 사막을 여행할 때,
이와 똑같은 풍경이 있어면 꼭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가게 되거든 부탁하건대 발걸음을 서두르지 말고,
잠시 별빛 아래에서 기다려보길 바란다.
그때 어떤 아이가 여러분에게 다가와 웃음을 지으면,
또 그 아이가 황금빛 머리카락을 지녔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으면
그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럼 내가 조그만 친절을 베풀어주길!
내가 마냥 슬퍼하지 않도록, 그 아이가 돌아왔다고 빨리 편지를 보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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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생택쥐페리
예담
*솔직히 책 추천이라는 제목을 달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유명한 책 ㅎㅎ
아마 안 읽은 여시를 찾기가 더 힘들겠지.
어린 왕자를 너무 좋아해서 1년에 한번은 꼭 읽는데,
읽을수록 새롭고, 읽을수록 더 좋아지는 책이야.
읽으면서 좋은 문장은 밑줄을 그어놓는데
이미 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밑줄이 다 쳐져있을 정도로.
특히 26장은 더더욱.
26장은 조각내서 올리기는 싫고
그렇다고 전부 쓰는 건 무리이기 때문에 결국 안 넣었어.
책으로 읽어야 더 좋을 것 같아서.
생텍쥐페리는 캄캄한 밤, 빛을 뿜어내는 무수한 별들 틈에서
자기 별 지구를 찾지 못해 하늘과 대지 사이를 헤메는 천사장이었다.
- 레옹 베르트 -
크으~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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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커서 어린왕자 읽고 엉엉움ㅋㅋ한두번 읽은것도 아니였는데.
맞아 절대 이상한게 아니야. 나도 항상 26장에서 오열하거든..ㅎㅎ
이거 나중에 자기전에 봐야지!
난한번도읽어본적이없어 ㅜㅜ 읽기쉬워?
응응 어렵지 않은 책이야!
안그래도 나 방금 읽었는데!!ㅠㅠㅠ
ㅠㅠㅠㅠㅠㅠ
예담 출판사에사 나온거 사야겠다ㅠㅠㅠㅠ워낙 어렸을ㅋ대 읽어서 잘 기억이 안나 읽어볼게 고마워
어린왕자가 원래 이런느낌이엇나..? 여러번읽엇는데 새롭다
예담출판사꺼 봐야지~
너무좋아ㅠㅠㅠㅠ
(어린왕자)좋은글 고마워 여시야
이거 살래 ㅜㅜ
너무 좋아 진짜ㅠㅠㅠ이렇게 예쁜 글로 다시 쪄줘서 정말 고마워 여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