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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2일(목)
* 시작 기도
(롬 12:9, 21)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여기서 말하는 선과 악은 결코 이 세상이 세워놓은 윤리도덕적 선악이 아님을 압니다.
오히려 사람이 볼 때는 악인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그것을 선이라 하면 선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그들을 다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보고 하나님은 악하다느니 박애정신이 없다느니 하면 안 될 것은 그것이 바로 선이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에게 또한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말렉과 전쟁을 하여 그들을 어린 아이들로부터 모든 사람을 진멸하라고 말입니다.
이는 분명 윤리도덕적인 차원으로 보면 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죽이라고 하면 죽이는 것이 선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생각과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오직 주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선이요 진리입니다.
하여 오늘을 사는 나 역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서게 하소서.
결코 세상의 판단 기준에 일희일비하지 않기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이 하루도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동행하는 자로 선을 행하게 하시고 주의 뜻을 분별하여 그 자리에 서게 하소서.
주님과 함께 무덤에 들어가 거기서 주님이 지으신 성소에 머물게 하시고 말씀으로 주님과 더 깊이 교제하게 하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살전 2:13-20
제목 :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 진실로 그러하도다.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 나의 묵상
바울은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성도들에게 물질적 부담을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밤낮으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자비량으로 복음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의 사역의 모토는 유모가 자녀를 기르는 것처럼, 아버지가 자녀에게 권면하고 위로하고 가르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주는 것을 기뻐하였다.
이는 정말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의 사랑받는 자 자녀와 같았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렇게 한 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보면서 하나님께 합당한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바울이 정말 감사한 것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 심판하신다고 하였다(히 4:12).
전하는 복음을 사람의 말과 교훈으로 들으면 그것으로 끝나거나 조금의 유익이 있을 뿐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그 말씀은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에 살아 역사하는 것이다.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에게 너희가 유대에 있는 주님의 교회와 같은 처지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유대에 있는 주님의 교회가 유대인들로 인하여 고난을 받고 있는데 이들 역시 같은 동족에게로부터 동일한 고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얼마나 악한지 예수님과 선지자들을 죽이고 또한 바울 일행을 쫓아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도 않고 또한 모든 사람의 대적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바울 일행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하는 일을 방해하고 금하여 자기들의 죄를 자기들의 머리에 채워가므로 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뿐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의 간계로 인하여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떠나지만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얼굴만 못 볼 뿐 마음은 항상 그들을 향하고 있다.
그렇지만 얼굴 보기를 얼마나 많이 애썼는지 모른다.
그렇게 여러 번 데살로니가에 가려고 시도를 하였지만 사탄의 방해로 인하여 길이 막히곤 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자랑과 자부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 신앙으로 살아가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라고 말한다.
(19-2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바울은 이미 살전 1:2-3절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 바 있다.
(살전 1:2-3)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그런데 여기서 또다시 그들로 인해 감사하고 있다.
(13-14)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살전 1:2-3절의 감사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현재 상황에 대한 디모데의 보고를 듣고 감사한 내용이다.
그런 반면 본문 13-14절의 감사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을 전하던 당시를 회고하면서 과거 그들이 보인 진실했던 태도로 인해 드리는 감사이다.
즉 바울은 과거 자신이 복음을 전할 당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을 뿐만 아니라 복음으로 인하여 고난을 받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이를 견디어낸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다.
한편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인내한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칭찬한 반면 복음을 대적한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15-16)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이는 단순히 복음을 대적한 자들에 대한 심판 경고의 차원을 넘어 복음을 진심으로 영접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얼마나 복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나는 평신도로 교회를 섬길 때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받지 않았던 자였다.
또한 내가 목사가 되어서 설교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진정한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전하던 자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설교를 하면서 성도들에게 예화를 통해서 그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고, 감동을 주려고 애를 썼지, 그들이 복음을 통해서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자신이 복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한다 해도 십자가만 열심히 외쳐댔을 뿐 온전한 복음인 십자가 죽음과 무덤에 장사됨 그리고 부활과 현현의 복음을 알지 못했기에 그저 편파적으로 십자가만 외쳤을 뿐이다.
그것의 근거 구절로 고전 2:2절을 삼았다.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하지만 이 말씀은 당시 고린도 교회의 특수한 상황에서 전한 내용인 것일 뿐, 그는 분명히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온전한 통합복음을 증거하였다.
(고전 15:3-5)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이와 같이 성경이 전하는 복음을 알지 못하면 자신의 이야기와 체험적인 사건 등을 마치 복음인 양 전하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그런 체험과 간증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거기에는 생명이 부재(不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와 같은 목사나 선교사들은 철저히 나의 간증이 아니라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을 증거해야만 한다.
나는 이런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을 알지 못하였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들에게 체험적인 간증을 전해서 그들의 마음을 사려고 하던 자였다.
그래서 좋은 예화를 찾아 얼마나 헤매었던지 그 때 당시 나 자신을 보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복음을 알지 못하던 자가 내 마음대로 자행자지하던 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나 자신이 철저히 깨졌다.
그리고 목사로서 무엇이 옳은 일인지를 깨달아 오직 복음만 전할 수 있음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복음을 전하는 데는 반드시 고난이 따른다.
그러나 그 고난은 타협하거나 피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귀한 은혜임을 알고 믿음으로 수용하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복음의 핵심을 알게 되고 그 복음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임을 믿어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어떤 고난을 당하든지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육신의 피곤함으로 좀 더 자자고 하면서 게으른 자처럼 뒹굴뒹굴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하지만 주의 말씀인 영의 양식을 먹지 않으면 내가 죽기에 오늘도 그 생명의 말씀을 홀로 얻어먹나이다.
날 구원하신 주님 앞에서 늘 주님과의 사귐이 있을 때 그것이 바로 영생이요 영원한 생명의 삶임을 믿사오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씀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아침에 눈을 뜰 때 어떻게 하면 말씀을 묵상하지 않아도 될까, 이런 저런 핑계거리를 찾아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나의 게으름 탓임을 알고 화들짝 놀라 얼른 일어나 속히 말씀 앞으로 나아가오니 이런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영이 날마다 주님의 품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깨워주소서.
주님이 전하기 원하시는 온전한 복음만 증거하게 하시고 그 복음을 통하여 죽은 영혼들이 생명으로 살아나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홀로 있으며 말씀에 붙잡힌 일상은
정말 대단한 은혜인데...
자기와의 싸움에 승리하는..
은밀히 보시는 아버지 앞에서 신실하게 자기를
드리는 복음지기 말씀지기 선교사님으로 인하여
아버지께 감사찬송함다♡
주님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