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의 탄생
베스 베일리 지음
젊은 남녀가 집 밖에서 만나 사귀는 데이트라는 행위는 그렇게 오래된 관습은 아니다. 19세기 말까지 미국에서 젊은 남녀가 집 밖에서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당시 미혼 남성은 자신을 초대한 어머니와 딸의 집에 찾아갔다. 여성의 집 문을 두드리는 남자의 방문에는 복잡한 규칙이 있었다. 남자는 초대를 받으면 대개 2주일 내에 방문해야 했다. 여성의 집에서는 케이크와 음료 같은 다과를 준비했다. 남자가 방문을 마치고 집을 나설 때는 여성이 따라 나가지 않고, 남자가 코트를 입을 때는 말을 걸지 않아야 한다는 세세한 규칙도 있었다.
데이트는 하층계급에서 시작된 문화였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시 생활을 하게 된 하층민들은 가족 전체가 모여 사는 비좁은 집으로 남자를 초대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층민 남녀가 집 밖에서 만나는 일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남녀의 바깥 만남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20세기 초만 해도 젊은 남녀가 집 밖에서 만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로 여겨졌다. 1907년 인기 잡지 '레이디스 홈 저널'은 미혼 여성이라면 아무리 친척이라도 남자와 단둘이서 레스토랑에 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썼다. 다른 사람들 눈에 행실이 좋지 않은 여자와 동급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데이트가 중산층까지 확산된 때는 1920년대 이후였다. 자본주의·산업의 발전으로 도시에는 댄스홀, 영화관, 레스토랑이 생겨났다. 1930년대에 이르면 데이트는 보편적 관습으로 자리 잡게 된다. 보수적인 미국 중부 지역에서도 데이트를 상류층의 반항이나 도시 하층민과 연관시켜 생각지 않게 됐다.
미국 템플대학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데이트의 탄생이 가져온 남녀 역할과 공간의 변화에 주목한다. 방문 제도에서는 주도권을 쥔 쪽이 여성이었다. 연애의 주된 장소는 여성이 마련한 연회에서 이뤄졌다. 반면 데이트는 연애를 집 밖의 공간인 남성의 영역으로 이동시켰다. 남자는 데이트 비용을 대고 여성을 이끌었다. 돈을 내고 구매하는 상품 거래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남자도 구매력에 따라 여성의 선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또 다른 상품이었다.
동일한 상대와 지속적으로 만남을 갖는 오래 사귀기 데이트는 1940년대 말 이후 생긴 관습이다. 이전까지는 여러 상대와 데이트를 하는 게 자신의 인기를 증명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으로 18~26세 성인 남성 1635만명이 전쟁터로 떠나면서 남자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1943년 잡지 '굿 하우스키핑'은 누군가가 당신의 남자를 노리고 있다는 기획 기사를 썼다. 연애 조언서들은 여성들에게 이상형만 고집한다면 남편 구하기는 요원한 일이라고 충고했다.
사회 변화에 따른 연애 제도의 변천을 당대 잡지와 연애 칼럼 등을 통해 꼼꼼히 분석한다. 데이트와 성(性)문제도 한 장을 할애해 설명한다. 미국 사례를 이야기하지만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한국 사회가 우리 전통 사회보다 서구를 더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요즘 젊은 남녀가 지난밤 잠자리를 같이 했다면 둘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라고 묻고 이제는 모든 게 불확실성을 띠게 되었다고 답한다. 옛날 애틋했던 데이트가 그립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자유를 얻었다면 그에 따르는 위험·책임·쾌락 문제도 함께 짊어져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