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초입에 있는 절 선원사에 가면 볼거리가 적지 않다.
우선 사람들은 연꽃을 들 것이다.
여름이면 선원사 앞 늪지에 연꽃이 아득하게 피어나 은은한 향기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곳이 팔만대장경을 만들던 자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오늘, 9월 25일이 팔만대장경을 완성한 757주년 되는 날이다.
몽골의 침략을 받는 고려조는 1236년에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대역사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16년 동안 가로 24센티, 세로 69센티, 무게 2.4-3.75인 경판 81,340장에다 경전을 새긴 것이다.
전체 무게는 26만 톤, 4톤 트럭 65대에 실을 수 있는 분량이었다.
이 팔만 대장경은 분량도 분량이지만 글자체가 아름답고 오탈자가 전혀 없어
동양에서 제작한 3천 여 경전 중 가장 완벽한 품질을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장경을 만드는 나무는 산 벚꽃 나무나 돌배나무이다.
양지바른 곳에서 자란 지름 40센티 이상의 30-50년 생 나무 중에서 골라 나무를 벤다.
그 다음에는 벌목 현장에 1-2년을 방치해 둔다.
자연 상태에서 말리기 위함이다.
그런 다음에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바닷물에 담그거나 소금물에 삶아낸다.
뒤틀림이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서유거가 쓴 ‘임원경제지’에 의하면 나무를 켜서 판자를 만든 다음,
소금물에 삶아서 그늘에서 말리면 나무가 뒤틀리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경판이 다듬어 지면 판하본을 경판위에 뒤집어서 붙인다.
그래야 인쇄를 할 때 글자가 바르게나타나기 때문이다.
도장 새기는 것과 같은 이치리라.
그런 다음에는 다시 식물성 기름을 발라 말린 다음에 경판새김에 들어간다.
그렇게 하여 16년 동안 새긴 경판의 숫자가 81,340에 이른다.
한 판에 640자가 들어갔으니 모두 52,057,600글자다.
서각 전문가라도 하루 30글자, 많아야 50글자를 새길 수 있으니 연인원 1백만 명 정도가 투입된 대역사였다.
서각 전문가만 1백만 명이 투입되었다면 그 아래서 보조하는 사람의 숫자는 그 몇 십 배는 되었으리라.
강화도 선원사 일대에는 아직도 대장경을 조판할 때의 흔적이 남아있다.
유홍준 교수의 말처럼 그것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가을 정취따라 선원사 나들이를 한 번 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몽골의 침략에 대해서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있다.
징키스칸, 그리고 그 아들 쿠빌라이칸이 처들어간 나라 모두 왕조를 멸망시켰지만
고려조만은 왕조를 멸망시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원나라 공주를 고려왕에게 주어 혈연관계를 맺는다.
그 진짜 이유를 아직 모르겠다.
또,
말을 타던 몽골 군사라 강화도 바다를 건너지 못해 고려를 멸망시키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말이 안된다.
분명 무언가 숨겨진 비밀이 있을 법한데 말이다...
첫댓글 내고향 강화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함니다
작년에 연꽃을 담으러 간적이 있었습니다.저도 그날 첨으로 팔만대장경이 탄생한곳이라는걸 알았습니다.전에 박정희 대통령께서집권 하실때 외국 귀빈이 오시면 가장 자랑 스럽게 내 보이시던 팔만천이백오십 경을 자랑 하셨다는 일화도 잇구요 정말 우리는 자랑 스러운 유산을 가진 대단한 민족입니다. ... 행복한 날 되십시요...
아하 ~ 선원사에 그런비밀이....감사합니다.
저는 마음이 답답할때는 강화 자주갑니다 고인돌도보고 해수욕장도가보고 두루 보았는데 수박겉핧기였네요. 강화는 정말 깨끗하고 예쁜시골입니다 저는인천이라서 노후여기서 살기로 마음굳히고있는데...강화정말좋아요 ^^
돌아오는 토요일엔 엄니보시고 선원사에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