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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라곤(시인․ 전 봉화 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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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조직 가운데 행정안전부가 하는 일이 많다. 일상적인 국민의 뜻을 국정에 반영하여 안정 기반을 닦는 일에서부터 지방자치를 활성화하고 공무원조직을 총괄 지원하는 주무기관으로서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 수행 등으로 항상 바쁘다.
물론 지방자치에 관해 제도적인 발전에 노력하여 이바지한 면도 크지만 지방이 알아서 행하는 자치행정 문제에 간섭하는 일도 많은데 마치 유아원 선생이 어린아이 대하듯 한다. 진작 지자체가 겪는 어려움이나 당장에 풀어야 할 제도적인 것에는 관심이 적고 지방을 규제하거나 전시행정으로 인기몰이 눈치행정을 펴는데 적극적이다.
지방이 알아서 해도 될 작은 일에도 ‘이것은 된다, 저것은 안 된다’ 일일이 지적하며 간섭하고 있으니 문제가 많다는 지방의 원성이다. 그러면서 행안부가 마련하여 지방에 보낸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응당 지자체에 지원해야 할 지방교부세를 미끼로 재정상 불리하게 하겠다는 엄포를 놓으니 세수(稅收)가 약한 지방은 억지춘양 격(格)이고 울며겨자먹기다. 지방의 입장에서 보면 중앙의 월권(越權)이고 횡포나 다름없다.
지방의회가 의결하는 지방의원들의 연봉 결정만 해도 그렇다. 일부 지방에서 지방의회가 연봉인상을 많이 하여 주민들의 원성이 커지자 행안부에서는 이를 조정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전국 지자체에 시달했다. 그 기준안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력 지수, 지방의회 의원 1명 당 주민수 등과 그 밖의 유형별 변수를 제시하여 기준액을 정하고 월정수당의 20% 범위 내에서 가․감산하여 의정비를 결정하도록 했다.
이 기준은 지자체의 제도나 운영지원을 관장하고 있는 행안부로서 할 일이고 적정한 지침 안이라 주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방자치 입장에서 보면 사실 관여할 수 없는 순수한 지자체가 알아서 결정할 자치에 관한 일인 것이다.
지방자치란 무엇인가? 지방의 일을 그 지역의 행정기관과 의회가 자율성과 책임성의 보장 아래 지방의회의 의결을 거쳐 집행하는 일이 아닌가. 조그마한 일까지 중앙정부의 지침과 지시와 간섭을 받아가면서 처리할 만큼 우리나라의 지방자치 수준이 유아적(幼兒的) 수준이고 지방의원들의 판단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지자체나 지방의회 의원들은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이 있고,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면 얼마든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지방의회 의원 연봉까지 간섭하며 ‘감 놔라, 배 놔라’ 식이니 전국의 모든 지자체는 자신들의 고유권한까지 침해당하면서 고분고분 따르는 모습에서 지방자치가 영원히 관치(官治)의 충실한 하수인(下手人)노릇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우려하고 개탄한다.
지방의 단체장이나 지방 의원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나서서 행안부가 내려 보내준 지침이 자치정신을 심히 훼손하는 월권(越權)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면서도 희희낙락(喜喜樂樂)이다. 지방의원이 자신들의 연봉을 스스로 자주적인 판단으로 결정할 수 없을 만큼 의심받고 배격당하는 의원이라면 주민들의 위임을 받아 지방 일을 수행하는 대의정치(代議政治)가 불신당하고 우스운 꼴이 되고 만다.
중앙정부에서 내려 보내준 기준안에도 문제는 많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력 지수를 살펴보면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전국 지자체에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현상이 있는 것은 당연하며, 지방의회 의원 1명당 주민수라는 것도 결국엔 도시가 유리하고 농촌은 불리하므로 적격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지방자치는 국가제도의 산물로 국가가 지방자치가 성공할 수 있도록 충분히 뒷받침하는 것이 마땅하다. 현재와 같이 세수 구조가 잘못되어 국세 80% 대 지방세 20%인 실정에서 지방세수는 당연히 적고, 그것도 시골에는 자체재원이 절대 부족함은 뻔한 이치인데 이것을 기준한다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다.
국세와 지방세를 공동세로 하여 지방의 몫을 최소한 30~40%로 정하고, 지자체가 자치행정 수행에 부족한 재원을 중앙정부에서 일괄 지원하는 방식이라면 지방재정력지수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주민수가 적은 대신 광활한 면적을 가진 지방의 실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지방의원 1인당 주민수도 큰 의미가 없다 할 것이다.
행안부의 이러한 지침 시달로 인해 올해 기준액에 미달했던 경북 예천군에서는 내년도 연봉에 600여만원을 올렸고, 충남 청양군에서도 540만원이 오른 3,240만원으로 정하였다. 과도한 인상액을 막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의정비 인상을 부추키는 요인이 되었으니 혹 떼려다 혹을 붙인 경우가 되어버렸다. 이제 지방자치가 시작된지 하루이틀된 것도 아니고 지방에서 알아서 할 일에 대해 사소한 일을 중앙에서 간섭해서 안 될 일이다.
울진군과 영덕군의 내년도 지방의원의 연봉 수준을 보면 3,210만원(울진)과 3,144만원(영덕)으로 올해와 같이 동결했다. 이론과 실제적으로 “0% 인상”이다. 이것은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좋아할 일이겠지만 지방자치 전체나 지자체의 예산심의권과 집행부 견제력을 갖는 지방의원들의 임무에 비추어볼 때에 꼭 잘한 일이라 할 수 없다.
지방의원들은 자치의 권원(權原)을 주민으로부터 위임받아 지역발전과 주민복리를 우선으로 하며 사명감과 명예를 갖고 활동하는 신분에 있다. 중앙정부에서 의원연봉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내려 보내주고, 지자체의 집행부에서 의정비심의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토록 하여 그 결정된 내용을 지방의회에 보내주면 지방의회에서 결정하는 현재의 구도는 지방의회의 명예와 사기를 꺾고 지방자치의 이념을 훼손하는 매우 우려할만한 일이다.
도시는 몰라도 시골에서는 의정비심의 의원을 구성하려고 하면 마땅한 인물이 없어 행정이나 이런 분야에서 전문성이 없는 일반 주민들까지 포함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들이 의원들의 보수를 결정하는 권한이 있으니 의원들의 입장이 무엇이 되겠는가. 명분은 그럴듯하게 지방의회 의원들의 과다한 연봉인상을 막는데 있다고 하지만 크게 보면 득보다 실(失)이 훨씬 많다.
지방의원들의 자율권과 사명감을 북돋워 의원 각자가 지자체 행정을 감시․감독하며 예산 낭비를 막아 지역발전에 이바지하게끔 노력해야 하는 일에 중앙정부가 나서서 지방자치를 활성화시켜야 함에도 지방의원들의 사기를 죽이는데 앞장서고 있으니 어디 될 일인가? 중앙이 지방자치의 본뜻을 간과(看過)하고 사소한 문제까지 끼어들며 얄팍한 전시행정하는 것을 버리지 않는 한 지방자치는 영원히 발전될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