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권사님이 오랜만에 아들 가정과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지난 6월에 한 달 예정으로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7월 말에 오시기로 하셨던 권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권사님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오기 시작해 한 달 내내 비가 오느라 일체 바깥출입을 하지 못해 아무래도 한 달을 더 연장해서 8월 중순이 지나서 호주로 돌아올 거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전화가 온 뒤로도 한국은 지금까지 태풍과 함께 엄청난 폭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아마 권사님은 지금도 비 때문에 잘 움직이시지 못하실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지금 물난리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달 7월에는 대한민국의 심장인 수도 서울이 물에 잠겼습니다. 40년 전에나 볼 수 있었던 서울의 물난리가 온갖 미디어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27일에는 폭우로 인해 우면산에 산사태가 발생하고 18명의 귀중한 생명을 한 순간에 앗아가 버렸습니다.
참사가 벌어졌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없고 서로 네 탓이라고 책임을 떠넘기기에 분주했습니다. 큰 피해를 낸 서울 서초구와 산림청은 서로 상대방의 책임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습니다. 특히 산림청에서 산사태 예보 발령을 보내오지도 않았다고 큰 소리 치던 서초구는 나중에야 산림청에서 보낸 메시지 수신량이 많아 미처 내용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예보 수령을 확인했음에도 계속 거짓말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서울시가 산사태 발생 원인을 국방부에 있다고 또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우면산 산사태 합동 조사단’이 산 정상에 있는 군부대 경계 부근에서 산사태가 시작됐다고 발표하고 국방부는 즉시 군부대와는 무관하다고 반박했습니다. 국민들의 안전과 보호는 뒷전이고 사고의 책임만 면해 보려는 얄팍한 행태가 눈에 거슬립니다.
어쨌든 우면산 산사태는 무분별하게 산을 훼손하여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내고 골프장을 만들고 또 자연 그대로가 곧 자연공원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손을 자연에 들이대고 그것이 곧 자연공원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는 자연의 경고 메시지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 환경위기로 치닫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완벽한 자연에 인간이 가한 고통으로 인해 환경은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며 그로 인해 지구는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사용한 화석연료로 인해 발생한 열은 도시 온도를 주변보다 1~2도 높게 유지하여서 이 결과 강우량은 10%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와 같이 탄산가스 증가로 인해 대기의 기온이 계속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이로 인해 더 큰 태풍이 형성되어 큰 홍수들이 몰려오고, 극심한 더위와 추위가 몰아치며 거대한 화산폭발을 야기 시킵니다.
현재 북극과 남극의 빙하를 비롯하여 적도 지방의 만년설도 녹아내리고 있는 심각한 사태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난 50년간 연평균기온이 2.5도가 상승하여 섭씨 영화 3도에 머물고 있는 남극 반도에서는 지난 95년에 폭 37Km, 길이 77Km, 두께 80m의 초대형 빙산이 떨어져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기온이 상승하면 빙하를 녹게 할 뿐 아니라 더워진 바닷물이 팽창함으로써 해수면이 지난 100년간 이미 10cm 내지 25cm 상승하였습니다. 세계적으로 해안 저지대는 인구과밀 지역이며, 경작지의 상당 부분이 저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한 침수는 곧바로 수많은 이재민과 곡물 생산량의 감소로 인한 기근을 초래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침수로 ‘투발루’라는 섬나라는 바다에 잠기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한 섬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오는 지구의 절박성에 대해 일련의 학자들은 근본 원인이 기독교에 있다고 책임을 기독교에 떠넘깁니다.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받아 들였고 이것을 서구 사회에 전파함으로써 자연을 인간의 지배 대상으로 만들었고 이리하여 오늘의 위기를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소위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연의 세계를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맡겨 주었다는 창세기 1장 26-28절입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기독교는 자연에 대한 무제한의 지배권을 주장하였고 결국 생태계의 파괴와 위기를 초래하는 장본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환경의 파괴가 오직 기독교의 책임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환경문제는 개인 윤리적 문제이며 동시에 사회구조적 문제로서 파악되어야 합니다.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한 나라 한 개인의 가치관의 변화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구조변화가 동시에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기독교가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환경 위기와 생태학적 위기의 위급성을 인식하는데 무감각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우주의 자연을 창조했다는 생각과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연을 단지 인간의 소비주의를 위한 천연자원으로만 생각했다면 그래서 이것이 환경파괴의 주범이며 또 기독교의 책임이라고 한다면 그것에 대해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기독교만이 인간중심적이고 소비주의 중심으로 살았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지나친 억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 모두는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다 인간중심적이었고 또 소비주의 형태의 삶을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인간중심 그리고 소비주의 문화는 하나의 세계관이자 생활 방식으로서 지금까지 역사는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자연을 파괴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기후 변화와 같은 엄청난 문제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무력감을 나타내는 것은 무신론자와 같은 핑계일 따름이며 또 이 문제를 전적으로 하나님에게만 돌리는 태도는 당면한 문제가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한 복음으로 회피하려는 근본주의의 태도일 뿐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저지른 책임을 하나님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태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제 잘 먹고 잘 입기 위하여 무분별하게 시행되었던 자연에 대한 횡포를 이제는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의 환경은 몰라보게 더러워졌고 질은 상당히 떨어졌으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많은 생물종은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자연 파괴로 인해 오는 혹은 우리가 말하는 천재지변이라고 하는 폭설, 폭우, 가뭄, 홍수, 혹한, 혹서 등 인간이 두려워하는 자연의 현상이 더 자주 크게 반복해서 일어납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 ‘우면산 산사태’처럼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 모두가 함께 책임을 떠안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책임에 대한 기독교인의 사명도 분명히 인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자연에 대해 감사하며 또 그 창조물을 우리의 이웃으로 여기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합니다.
무분별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단순한 생활방식을 실천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이 땅을 돌봐주어야 하는 청지기 직분의 가장 주요한 사명이며, 또한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들의 이웃들과 다음 세대들, 그리고 우리이웃들인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작은 발전보다는 뒤에 숨은 엄청난 피해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지혜를 다하여 다시 에덴동산을 우리 심령에 회복하도록 하나님께 구하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보존하는데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피조물의 아파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