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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세라믹스
신소재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다
요즘 TV의 컴퓨터 광고를 보면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컴퓨터를 생산하는 완제품 회사들이 자사 제품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해 인텔 ‘부품’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내세우는 것이다. 사실 소비자들에게 제품이 아닌 부품을 광고한 것은 인텔이 유일하며, 그런 점에서 이 광고가 가지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신소재 부품 하나가 완제품의 품질을 좌우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최근 한국 선수들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골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티타늄, 리퀴드 메탈 드라이버, 그라파이트 샤프트 등 골프채에 사용된 소재의 이름이 이제는 아예 골프채의 종류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사용된다.
소재가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인류의 역사를 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으로 구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석기, 청동기, 철기 모두 인류가 사용한 재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는 재료 기술이 발달해 인간의 역사가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다가올 21세기는 ‘신소재시대’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신소재는 어떤 재료를 가리키는 것일까. 그리고 21세기를 신소재시대로 지칭하는 이유는 뭘까.
재료를 요리하면 신소재_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여러 가지 조리법으로 수백수천 가지 음식을 만들듯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원소를 사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성질과 기능을 지닌 재료를 만드는 것이 신소재 연구다. 그래서 신소재를 만드는 것을 요리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카레라는 음식 재료가 만들어지면 여러 가지 카레 요리가 생겨 난다. 마찬가지로 실리콘이 개발되면서 반도체라는 부품이 만들어지고 컴퓨터가 탄생할 수 있었다.
신소재는 여러 가지 새로운 공정으로 만들어진다. 음식을 만들 때 찌거나 굽거나 기름에 튀기고, 어떤 조리 방법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이 신소재도 공정에 따라 특성이 달라진다.
요즘 자주 등장하는 복합 재료도 신소재의 일종이다. 쌀에 보리나 콩을 섞어 보리밥과 콩밥을 만들고 여러 곡식을 섞어 오곡밥을 만드는 것처럼 신소재 분야에서도 서로 다른 재료를 혼합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복합 재료다. 밥 짓는 쌀을 가지고 떡을 만들 수도 있고 기름에 튀겨 강정 같은 과자를 만들 수도 있듯이, 복합 재료도 그 공정과 목적에 따라 여러 종류로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신소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최근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유전자 조작이라는 기술을 많이 사용한다. 필요한 유전자를 집어넣거나 변형시키는 것인데, 이런 기술은 신물질을 합성하기 위해 신소재 분야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던 것이다.
예를 들어 바륨타이타늄(BaTiO3)이라는 유전 세라믹스를 가지고 압전 세라믹스로 만들기 위해 바륨 이온(Ba2+)을 납 이온(Pb2+)으로 대체하고 티타늄 이온(Ti4+) 일부를 지르코늄 이온(Zr4+)으로 치환해 PZT(PbTiZrO3)라는 대표적인 압전 세라믹스를 만든다.
제3의 산업혁명 예고_ 신소재를 대표하는 전자 재료 중에 전자세라믹스가 있다. 전자세라믹스는 앞으로 신소재 분야를 개척하는 주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세라믹스에 대한 관심이 싹튼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1980년대 초 파인세라믹스(fine ceramics)가 출현하면서 재료에 대한 개념과 재료공학을 보는 시각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연이어 기능성 세라믹스가 개발되고, 지능형 세라믹스가 등장하면서 신소재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1986년에는 미국 IBM연구소의 뮬러 박사와 베드노츠 박사가 40K(-233℃) 이상의 온도에서 초전도 상태가 되는 구리산화물을 발견해 초전도체 세라믹스의 탄생을 예견했다. 이 일은 자기부상열차에서 핵융합 발전까지 신소재가 가져올 미래 산업에 대한 파장에 세계적인 이목이 쏠리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들어 다양한 전자세라믹스를 비롯한 신소재에 의해 제3의 산업혁명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확산되면서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기업은 앞다투어 신소재 연구 개발에 뛰어들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에서는 정보통신 기술(IT)과 나노 기술(NT), 생명공학 기술(BT)에 연구 개발과 투자가 집중되면서 오히려 신소재가 미래 산업을 이끌어 갈 성장 엔진의 주역으로 지목되었다. 기술 개발의 기본이 되는 소재와 부품의 혁신 없이는 IT, NT, BT 등 미래 전략 산업의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소재 개발 국내도 시급_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신소재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높아지고 있다. 1990년대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진입하면서 정부는 부품 소재 산업의 육성과 신소재 분야 연구 개발 및 인력 양성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과감하게 투자해 왔다.
최근에는 고용 없는 성장과 경제 발전 속도 저하로 인해 청년 실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한편 중국이 기술경제 대국으로 급격히 부상하면서 저임금과 생산성 향상 노력만으로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로 도약하기가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부품 소재를 수입해 단순 조립하는 산업 구조로는 더 이상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게다가 2006년부터는 전자제품에서의 유해물질 사용제한 지침(ROHS)이 발효된다. 이렇게 되면 납, 수은, 카드뮴 등 유해 성분이 들어간 제품은 선진국으로 수출할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정보통신 부품들이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소재의 수입이 덩달아 증가해 헛장사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휴대전화, 자동차, 컴퓨터 등과 같은 완성품은 관련 부품의 해외 의존도도 높아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결국 신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고 희망이다.
신소재로 만들어지는 부품은 음식과 같다. 음식 조리법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어떻게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맛이 좌우되지만 음식 조리법이 일반화되면 음식은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달라진다. 좋은 콩이 있어야 좋은 된장을 만들 수 있고 좋은 고추로 만들어야 고추장이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신소재는 제품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이며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쥐고 있는 열쇠가 되었다.
위치 탐사에서부터 소음 해결까지 다재다능_ 신소재의 하나인 전자세라믹스는 그 종류가 많다. 이 중 압전 세라믹스를 예로 들어 하나의 신소재가 개발되면 얼마나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압전 세라믹스는 기계적인 힘이나 충격을 전기로 바꾸거나 전기 신호로부터 기계적인 운동을 유발한다. APM(Acoustic Piston Mode) 스피커가 대표적 예다. 압전 세라믹스에 전기를 가하면 회로 설계에 따라 기계는 진동을 일으킨다. 여기에 진동판을 부착시키면 떨림이 전달되어 소리가 발생한다. 따라서 압전 세라믹스를 이용하면 스피커를 소형화시킬 수 있으므로 두께가 얇은 벽걸이형 스피커를 만들 수 있다.
안경이나 반지, 목걸이 등을 세척하는 초음파 세척기나 수증기를 뿜어 실내 습도를 조절하는 초음파 가습기에도 전기를 가할 때 발생하는 진동을 이용해 초음파를 발생시키는 압전 세라믹스가 쓰인다. 이 때 초음파의 주파수는 압전 세라믹스의 두께로 조절된다.
얼마 전에는 여기서 더 발전한 제2세대 압전 세라믹스가 등장했다. 기존에는 전기 에너지를 기계 에너지로 전환하거나 그 역으로 전환하는 변환 기능이 주를 이루었지만 최근에는 두 가지 변환을 한꺼번에 이용한 새로운 방식이 개발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수중 위치 탐사에 사용되는 소나(SONAR)는 제2세대 압전 세라믹스에 해당한다. 보통 위치 탐사를 할 때 공기 중에서는 레이더를 사용하지만 수중에서는 전자기파가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음파를 사용한다. 수중에서 음파를 발생시키고 되돌아오는 음파를 수신하는 장치가 바로 소나다.
소나는 전기 신호를 가해 압전체를 움직여 물을 진동시킴으로써 음파를 발생시키고, 돌아오는 음파에 의해 압전체가 진동하면서 전기 신호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이용한다. 소나는 잠수함에서 수중 장애물이나 상대편 잠수함을 추적할 때 사용되며 어선에서 물속에 있는 물고기를 탐지하는 어군탐지기로도 활용된다.
임산부의 뱃속에 있는 태아를 관찰하는 데 사용하는 의료용 초음파 진단 장치의 원리도 소나와 동일하다. 미세한 진동을 검출하기 위해 임산부의 배 위에 탐침을 대고 초음파를 발생시키고 동시에 신호를 받는데, 이 탐침에 고성능 압전 세라믹스가 사용된다.
또 초창기 비디오 카메라의 큰 단점은 촬영할 때 찍는 사람의 손떨림 때문에 촬영된 화면이 흔들린다는 점이었는데 이 문제도 압전 세라믹스를 사용한 센서로 해결되었다. 압전 세라믹스는 손떨림에 의해 발생되는 기계적 진동을 감지하고 이를 완화시킬 수 있는 손떨림 방지 장치를 작동시켜 화면 떨림을 줄인다.
최근에는 레저용 스키 플레이트에도 압전 세라믹스가 쓰인다. 압전 센서는 스키 판이 진동하는 것을 감지하고 이와 반대되는 진동을 압전 진동자를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스키를 타는 사람이 느끼는 진동을 완화시킨다.
압전 세라믹스는 환경 분야에도 이용된다.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등에서 철판의 울림을 감지해 이와 반대되는 진동을 발생시켜 소음을 줄여 주는 것이다.
오각을 가진 인공지능 재료_ 센서 개발에 많이 사용되는 신소재도 있다. 사람에 비유하면 뜨겁고 차갑고 밝고 어두운 외부 변화를 느끼는 소재가 있다는 얘기다. 즉, 신소재도 청각, 미각, 후각, 촉각, 시각의 오각을 갖고 있다고 표현해도 좋다.
이런 신소재는 스스로 느낀 것을 자신의 고유한 물성에 따라 자기만의 신호로 표현한다. 뜨거워지면 빛을 내거나 전기를 발생시키는 재료가 있는가 하면, 몸짓을 하듯이 모양을 바꾸거나 소리를 내는 재료도 있다.
재료가 표현하는 여러 가지 신호 중에서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전기신호와 광신호다. 재료가 외부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전기로 표현하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 센서인데, 센서는 외부의 물리 화학적 상황을 감지해 측정 가능한 전기나 광신호로 변환시켜 준다.
센서는 크게 빛, 소리, 온도, 압력 등을 감지하는 물리센서와 가스, 이온 등 화학물질의 종류와 양을 감지하는 화학센서로 나눌 수 있다. 이런 센서 중 온도를 인식하는 센서에는 반도성 세라믹스가 사용된다.
반도성 세라믹스는 주위 온도에 따라 저항이 변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 특정 온도에서 전기를 흐르게 하거나 차단할 수 있다. 온도 조절 장치 없이도 일정 온도에 이르면 알아서 전기를 통과시키거나 차단하는 똑똑한 센서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중 PTCR(Positive Temperature Coefficient of Resistance) 반도성 세라믹스는 특정 온도에 도달하면 전기저항이 급격히 증가해 절연체가 되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이 때문에 센서 외에도 가정용 모기향이나 방향제 히터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 NTCR(Negative Temperature Coefficient of Resistance) 반도성 세라믹스는 상온에서는 절연체로 존재하다가 일정한 온도에 도달할 때 전류가 흐르는 특징이 있어 화재 경보기를 비롯한 전자 부품에 활용된다.
유비쿼터스 시대 여는 전자세라믹스_ 요즘 길을 가다보면 아파트에 우산을 반대로 걸어 놓은 듯한 접시 모양의 물체를 자주 보게 된다. 이것은 위성 TV를 보기 위한 파라볼라 안테나다.
파라볼라 안테나는 먼 곳에서 오는 약한 전파를 한곳에 모으기 위해 사용된다. 마이크로파 세라믹스를 이용해 파라볼라 안테나를 만들면 전파 흡수 능력이 향상되어 안테나의 크기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안테나를 평판으로 만들 수도 있다.
노트북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엔지니어들은 평판 안테나를 생각했다. 노트북 뒷면에 평판 안테나를 붙이면 위성 통신을 항상 사용할 수 있어 유용하기 때문이었다. 또 자동차 후면 유리에 평판 안테나를 인쇄해 붙이면 차안에서 위성TV를 보거나 인터넷을 즐길 수 있다. 이제 이런 기술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이미 휴대전화에 평판 안테나가 적용되어 위치 추적이 가능해졌다.
마이크로파 세라믹스는 차세대 무선통신 기술을 책임지고 있기도 하다. 컴퓨터 뒤쪽을 보면 전원,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스피커, 프린터, 인터넷 등 온갖 잡다한 선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컴퓨터에서 이런 선들을 말끔히 처리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한 곳에 밀집되어 있는 컴퓨터 주변 장치들을 분산시켜 공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현실화시킨 것이 바로 무선통신 기술을 이용한 블루투스다. 블루투스 기술은 서로 다른 통신 장치 간에 단일화된 연결 장치를 이룬다는 뜻으로, 세계의 모든 통신 환경을 일원화시켜 준다. 이 블루투스 모듈을 만드는 기본 소재가 바로 마이크로파 세라믹스이다.
마이크로파 세라믹스 블루투스 모듈은 현재 휴대전화, 노트북, 디지털 카메라, 휴대게임기 등 전자 제품은 물론 자동차에도 채택되고 있다. 전자세라믹스 개발과 함께 유비쿼터스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_ 홍국선·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P r o f I l e _
홍국선 교수는 1980년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미국 알프레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KIST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1993년부터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1년 국무총리 부품소재 기술상, 2002년 제1회 듀폰과학기술상, 2002년 서울대 훌륭한 공대교수상 및 2003년 서울공대 최우수강의교수상 등을 수상했다. 이동통신용 유전체세라믹스, 생체친화성 인공골재료, 환경친화형 에너지변환재료를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대 산학협력재단 단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