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평범한 요리책이 아니다.”_본문 9쪽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유일무이한 레시피북
지친 영혼의 허기를 달래는 132가지 추천 레시피와 음식 에세이
『사유 식탁』은 뜻밖에도 연애 소설이나 철학 에세이가 아니라 요리책이다.
책은 “이것은 평범한 요리책이 아니다”라는 선언으로 첫 장을 시작한다. 작가가 직접 선별한 132여 가지 음식과 대화 레시피는 알랭 드 보통 특유의 사유가 맛깔나게 양념 되어 위트 있으면서도 다정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익숙한 듯 새로운 맛을 자아낸다. 우리 내면의 믿음과 삶의 희망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그의 레시피는 그의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며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책을 통해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식재료와 요리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일깨우고, 어떻게 현재의 문제에 직면할 태도를 갖추도록 돕는지를. 음식이야말로 생각을 떠올리거나 저장하고, 추억을 전달하는 방식으로서 우리 삶에 더없이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_본문 15쪽
알랭 드 보통이 이 요리책을 쓴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요리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너무나 협소하다며 요리의 의미를 확장하길 주문한다. 요리는 생각과 감정을 일깨우는 사유의 매개물이자, 그것을 공유하는 방식이며, 동시에 사랑을 고백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요리란 단순히 재료를 먹을 수 있게 조리하는 행위를 넘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채우는 방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먹방과 쿡방, 푸드 포르노가 넘쳐나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에 대한 철학적 탐구
‘잘 먹고 잘 살기.’ 예나 지금이나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잘 살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한다. 음식은 건강과 행복의 필요조건인 셈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이어트 트렌드가 바뀌고, 유튜브와 각종 SNS 피드에 맛집 후기와 먹방 콘텐츠가 차고 넘치는 현상은 잘 먹고 싶은 우리 욕망의 반영이자, 잘 살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이 빚은 결과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좋은 음식’은 가장 협소한 정의에 머문다. 책에서 알랭 드 보통은 영양분만 고려한 채 요리가 인간의 감정 상태나 심리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하지 않는 세간의 태도에 반전을 꾀한다. 식재료가 특정한 미덕을 불러일으킨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요리를 통해 우리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유쾌한 희망을 불어넣는 것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어떤 식재료는 마치 특정한 미덕을 지닌 것 같다. 그런 식재료는 우리의 성격을 유지시키는 사유의 상징으로도 자리한다. 미덕을 지닌 상징적인 식재료를 요리에 사용하면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에도 영혼을 미치게 된다. 정신적 변화를 꾀하면서 감각적인 만족도 취하는 셈이다.”_본문 21쪽
알랭 드 보통은 해결의 실마리를 식재료와 메뉴의 재발견에서 찾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에게 필요한 12가지 미덕을 새롭게 정의하고, 미덕의 원천이 되는 식재료와 그것을 활용한 레시피를 소개한다. 희망을 상징하는 레몬, 장난기 가득한 라임 등 특정한 식재료를 활용해 우리의 기분을 바꾸고 다스릴 수 있다는 흥미로운 발상을 레시피에 접목한 것이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연인, 친구, 가족, 또는 나 자신과 오롯이 마주하는 식탁을 채우는 요리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단언한다.
무미건조한 식사, 관계, 사유를 정겹게 탈바꿈하는
일상의 즐거움, ‘요리’라는 삶의 기술
사람들은 종종 요리나 식사를 처리해야 하는 숙제처럼 치부한다. 나 자신이 아니라 오로지 타인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고민하고, 그들의 만족만을 위해 요리하는 탓이다. 알랭 드 보통은 요리의 정의와 가능성을 확장하면서 동시에 요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요리의 목적은 다른 게 아니라 우리가 요리를 즐기는 데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책은 여느 요리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야기와 레시피로 가득하다.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응원의 메시지부터 남은 음식을 활용하는 방법, 식사 자리에서 활용하기 좋게 주제별로 정리된 ‘대화 메뉴’는 이 책만의 독특한 내용이다. 때로는 물 한 컵과 사과 한 알로 이루어진 조촐한 식사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작가는 행복한 삶을 만드는 기술이 레시피를 정확하게 따라 하는 기교가 아니라 자신과 주변을 살펴보는 용기에 있으므로, 매 끼니 거나하게 먹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길 권한다.
“요리를 하려면 일단 전문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음식이 주는 만족감은 기술의 정교함이 아니라 음식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와 우정의 깊이에 비례한다.”_본문 171쪽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결국 이 고민은 텁텁한 음식을 먹은 듯 더부룩한 일상을 개선하려는 우리의 간절한 바람과 맞닿아 있다. 과연 요리는 생활이 되고, 나아가 행복한 일상을 만드는 삶의 기술이 될 수 있을까? 책을 통해 알랭 드 보통의 사유를 따라가며 우리 모두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책을 통해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식재료와 요리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일깨우고, 어떻게 현재의 문제에 직면할 태도를 갖추도록 돕는지를. 음식이야말로 생각을 떠올리거나 저장하고, 추억을 전달하는 방식으로서 우리 삶에 더없이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p.15
요리는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채우는 방법을 뜻한다.
---p.171
요리를 하려면 일단 전문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음식이 주는 만족감은 기술의 정교함이 아니라 음식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와 우정의 깊이에 비례한다.
---p.171
거창한 식사도 좋지만 복잡한 요리가 언제나 좋은 인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단순한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변색된 요리가 매력의 중요한 요소를 식탁 위에 올리기도 한다. 불안에 대한 솔직한 인정, 실패를 기꺼이 인정하려는 태도, 그리고 허세와 야망을 희극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친절이 바로 그것이다.
---p.184
사랑에 빠진 어른이 되려면 무언가 놀라운 일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타인을 자신보다 우선으로 생각하며, 침대 맡에 맛있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가져다주는 일 말이다.
---p.235
대부분의 요리책에서는 배달 음식이 개념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배달 음식이 야만인이나 이교도가 도시를 약탈한 후에나 먹는 음식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
---p.275
모든 음식은 어떤 면에서 약물이 아닐까? 우리는 ‘약물’이라는 단어를 금지된 물질에 주로 쓴다. 하지만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 대부분은 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의식 상태를 변화시킨다는 차원에서 ‘약물’이다. 단지 영향력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고, 법도 신경을 쓰지 않을 뿐이다
---p.307
우리는 오랫동안 메뉴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제는 메뉴의 범위를 대화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킬 필요를 실감한다. 앞으로 우리는 음식과 대화 메뉴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식사에 임해야 한다.
---p.354
좋은 식사에는 좋은 대화가 따라야 한다는 데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확실히 문명이 만든 중요한 즐거움이다.
하지만 좋은 식사와 좋은 대화의 기준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식사 준비라면 저마다 노력을 기울인다. 반면 대화는 그저 우연히 잘 되기만을 바라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오하고도 친절한 이들이 함께 먹으면서 분위기를 망친다. 고루하고 감정이 결여되어 있으며,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대화나 주고받기 때문이다. 대화는 드문드문 이어지고 화제는 들쭉날쭉하며 이야기는 피상적으로 가로막히면서 영양가 없는 일화나 공유할 뿐이다. 디저트를 먹을 때가 되면 이미 지쳐서는, 맹렬한 누군가가 고정 관념에 얽매인 소리를 떠들도록 내버려 둔다. 함께 식사한 사람들과의 교감은 처절하게 실패한 채 숟가락을 놓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래도 좋은 소식이 있다. 대화의 기술은 요리 기술 이상으로 배우기 어렵거나 불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그저 좋은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더 좋은 화자이자 청자가 되기 위한 몇 걸음만 내디디면 된다. 대화를 개선하는 첫 단추는 현재와 과거에 대한 겸손한 태도다.
누구에게나 지루한 면모가 존재한다. 다만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 않아서 모를 뿐이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은 우리는 성인이 된 이후 계속해서 지루한 인간으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지루하게 살아서 지루한 게 아니다. 우리 삶을 이야기로 풀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지루해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 보자.
첫째, 세부적인 사실에 계속 집착한다.
둘째, 반대로 겪는 감정에 압도되어 상황은 일체 설명하지 않고 자기 기분만 떠든다.
셋째, 이야기가 막 재미있어지려 할 때 피상적으로 전달해 버리고 만다.
넷째,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그럼에도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이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지루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단지 다른 사람에게 우리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전달할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또는 전달할 방법을 모를 때에 지루한 인간으로 전락할 위기에 봉착할 따름이다. 어떤 사람을 지루하다고 치부할 때, 우리는 그저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설명하고 공감을 이끌어낼 용기나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할 따름이다. 자신이 갈망하고, 시기하고, 후회하고, 슬퍼하고, 꿈꾸는 것에 대해 생생하게 잘 이야기한다면 예외없이 누구나 자신의 매력을 증명할 수 있다.
주의를 기울이고 자기 자신이 어떤지 아는 청자,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충실하게 전하는 특파원, 그리하여 살면서 겪는 파토스와 드라마와 기묘함을 충실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