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춥다. 연일 매서운 한파 속에 있다 보니 한동안 잊어버렸던 삼한사온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이었나 싶다. 숨 돌리면서 추우면 좀 나을 텐데.
식물 중에는 어떤 식물이 가장 추위를 탈까? 식물들은 각기 자생지의 특성에 적합하게 추위를 이겨내는 전략을 가지고 있지만 겉모습만 보면 솜다리가 최고일 듯하다. 한 뼘이 넘지 않은 이 자그마한 풀은 식물 전체에 솜옷을 입듯 솜털이 가득하다.
식물 중에는 솜방망이, 솜나물 등 솜털이 가득한 식물이 많지만 솜다리만은 못하다. 이 독특한 식물 솜다리, 알면 알수록 새록새록 재미나다.
솜다리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솜다리라는 말은 낯설어도 에델바이스(Edelweiss)라고 하면 더 친근할 터다. 그 유명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노래 에델바이스는 서양솜다리이고, 우리의 솜다리는 한국 에델바이스라고 이해하면 쉽다.
에델바이스는 알프스 등 만년설이 존재하는 고산에 살며 산악인들의 상징처럼 되어 유명한 식물이다. 그 뜻도 '고귀한 흰빛'이고 꽃말은 '순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솜다리는 높은 산의 척박한 곳에 산다. 설악산과 같은 높은 곳의 험한 바위틈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매우 귀한 식물이다. 같은 집안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조금 더 많이 볼 수 있는 왜솜다리, 한라산의 한라솜다리와 산솜다리 같은 종류도 있는데, 워낙 보기도 어려워 식물분류학적으로는 식물종 간에 논란이 존재한다.
솜다리는 우선 추위와 바람에 대비한 듯, 꽃만 제외하고는 잎이며 줄기며 포엽이며 죄다 흰털이 가득하여 흰빛으로 보이지만 재미있게도 한 겨울엔 땅속에 숨어있으며 새 봄이 되어야 느즈막하게 싹을 틔우고 여름이 다가설 즈음 꽃을 피운다. 사는 곳이 얼마나 춥고 모질면 그러는가 싶다가도 좀 엄살이 심하다 싶기도 하다.
알고 보면 매우 영리한 식물이기도 하다. 보통 꽃들은 꽃 한 송이를 만들어 곤충을 부르는 노력을 하는데, 솜다리는 우선 꽃가루받이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술과 암술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꽃이 한 번에 모여 다른 식물의 꽃 하나보다도 작은 꽃차례를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꽃차례를 다시 여러 게 모아 한 번 찾은 곤충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동시에, 불필요한 일에 대한 에너지 소모는 최소화하는 것이다. 도시로 치면 여러 기능의 작은 위성도시들을 모아 커다란 한 도시시스템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꽃들로 곤충들의 눈에 더 띌 것을 염려해서 꽃차례를 싸고 있는 포들이 마치 꽃잎들처럼 그렇게 보인다. 매우 강인하게 어려움을 견디지만 절대 아무 곳에서나 적절히 적응하며 살아가지는 않는 까다로운 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한때 에덜바이스와 이 솜다리와의 관계가 알려지면서 솜다리를 눌러 만든 액자를 비롯한 많은 소품들이 만들어지는 바람에 마구 채취되어 절멸 직전의 상황에까지 갔었다.
지금은 법적으로 엄격하게 보호되는 식물에 들어있다. 까다롭지만 삽목이나 파종으로 키우기도 하는데 그리 생산된 식물들은 돌틈에 심어 두고 가꾸는 초물분재의 소재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지금 이 솜다리 집안의 식구들은 무엇보다도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몹시 추운 요즘,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는 솜다리를 생각하며 견디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