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
아주 오래 전 한 마을 전체가 원인모를 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하여 매일 2,3명씩 죽어 나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주민들에게 어떤 노승이 나타나 마을 어귀 느티나무 옆에 있는 관음보살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7일 이내에 효험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는 사라져 버렸다. 주민들은 처음 보는 노승의 말인지라 믿지 않고 그냥 이야기를 흘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후에도 매일 질병이 심하여가니 하는 수 없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노승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하였다. 노인의 말처럼 7일이 되자 백약이 무효했던 마을사람들의 병은 씻은 듯이 완치가 되었다. 그 후부터 마을에서는 느티나무 옆에 있는 관음보살에게 매년 한 번씩 모여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영험한 관음보살은 지금 증평 송산리 미륵사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관음보살입상이다. 고려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보살입상은 사실 미륵사 보다 더 오래 지금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그래서 인근 마을이름조차 “미륵댕이”라고 붙여졌다.
미륵사는 이 영험한 관음보살입상으로 인해 생겨난 사찰이다. 1940년 관음보살입상을 기도처로 삼고 옆에 작은 초막을 지은 것이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사찰로서 여건을 갖추게 된 것은 이 초막이 한국전쟁으로 불탄 것을 1957년에 새로 전각을 지으면서이다. 미륵사라는 이름도 이때 가지게 되었다.
지금의 미륵사 도량은 1990년 가람을 일신한 이후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를 한 것이다. 부지런한 주지스님은 기도를 하면서 수행의 한 방편으로 사찰 주변에 손수 꽃을 심는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심은 것이 어느 듯 1만주나 되어 미륵사를 꽃동산으로 장엄하고 있다.
미륵사 입구 안내석
미륵사 전경
예뿐 꽂으로 정리된 미륵사
미륵사 대웅전
미륵사 대웅전
미륵사 산신각
산신각내 산신
미륵사 지장전
미륵사 지장전
미륵사 정원
미륵사 지장보살상
미륵사 미암리사지 관음보살입상
충북유형문화재 제198호
수령(樹齡) 300여년의 느티나무 아래 건립된 보호각 속에는 마을에서 미륵으로 불려왔던 관음보살입상이 세워져 있다. 높이 2m 60cm의 이 보살입상은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데 그 속에 화불(化佛)이 조각되어 있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두 발이 땅 밑에 묻혀 있고, 시멘트로 목 부분을 보강해 놓았으나 목에는 3줄로 새겨진 삼도(三道)가 뚜렷한 편이다. 얼굴에는 눈썹사이에 동그란 백호(白毫)가 있으며 눈·코·입 등이 정연하고 원만하다. 양 어깨를 감싸게 입은 옷은 어깨에 걸쳐 옆으로 내려졌으나, 배꼽 부분의 하의는 선명하지 않게 새겨졌다. 그리고 왼손은 배 아래에서 손바닥이 밖을 향하고 있다.
이 석조관음보살입상은 보관에 새겨진 화불이나, 옷 주름과 얼굴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성된 연대는 고려 중기로 추정된다.
관음보살입상
미륵사 전경
미륵사 찾아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증평IC를 나와 512번 지방도로를 따라 증평 쪽으로 가다보면 연탄4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계속 510번 지방도로를 따라 직진하여 괴산, 음성 쪽으로 1.5km 정도 가면 왼쪽으로 영광병원이 보인다. 미륵사는 이 영광병원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도로가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찾기가 쉽다.
첫댓글 절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는 것이 비구니도량처럼 보입니다. 이 땅에 미륵님은 언제나 오실려나요. 나무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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