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절 놀란 사자와 토끼
1 부처님은 도를 이루신 지 제사 년에, 비사리국 대림정사에 잠깐 계시다가, 다시 교살라국 사위성에 드시어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해 여름에 가뭄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강물도 말라들어 전답에 물 대기가 매우 어려웠다.
가비라성과 구리성 두 나라 사이에 흘러가는 로히니 하수를 두고, 두 나라 백성 사이에 물싸움이 벌어졌다. 그 하수 물을 전답에 대어 곡식을 거두게 될 두 나라 백성들은 서로 물을 뺏기 위해 욕설을 퍼붓다가, 나중에는 몽둥이나 칼을 들고 난투하여, 장차 큰 피를 흘리게 되었다. 부처님은 기원정사에 계시면서 그 소문을 들으시고 곧 가비라국에 돌아가시어, 막 난투하려는 두 나라 군중을 헤치고 한복판에 계셨다. 양쪽 군중들은 서로 부처님, 부처님하고 소리치면서
"이제 부처님을 뵈었으니, 어떻게 적에게 화살을 쏠 수가 있겠는가?"
하고, 모두 무기를 내던졌다. 부처님은 그 광경을 보시고, 곧 두 군데의 괴수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어찌 여기 모였는가?"
"싸우기 위해서입니다."
"왜 싸우려는가?"
"전답에 댈 물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과 물을 비교하면 어느 것이 더 소중한가?"
"그것은 말씀할 것도 없이, 물은 사람의 생명에 비교할 것이 아닌 줄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몇 푼어치 되지 않는 물을 위하여,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사람의 생명을 서로 상해하여 없애려 하는가?"
그들은 다시 말이 없었다. 이에 부처님은 설하셨다.
"이것은 옛날 이야기이다. 깊은 산골에 검은 사자 한 놈이 있었는데, 언제나 바나다 나무 밑에 누워서 다른 짐승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때, 바람에 바나다 나무 마른 가지가 부러져 내려오면서 사자 등을 후려쳤다. 이에 놀라 깨어 사자는 날 살리라고 도망치다가, 뒤를 휙 돌아다보니, 아무도 자기를 쫓아오는 것이 없었다. 이것은 다만 나무귀신이 나를 미워하여, 그 나무 밑에서 자고 있는 나를 내쫓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사자는 성이 나서 도로 돌아가 그 나무를 물어뜯으며 '나는 너의 잎 하나도 먹은 일이 없으며 한 가지도 꺾은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너는, 다른 짐승은 여기 있는 것을 허락하면서 나는 허락하지 않으니, 내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좋다! 나는 네 뿌리를 잡아 뽑아 버리리라.' 하고, 사람을 찾아갔다. 마침 수레 만드는 공인이 목재를 구하러 왔다. 사자는 그 사내에게 바나다 나무가 있는 곳을 알려 주어, 공인은 그 나무를 베어 수레를 만들려했다. 사내는 톱으로 그 나무를 베어냈다. 이에 나무귀신도 화가 나서 사람 모양을 나타내어 말하기를 '너는 이 나무를 베어 수레를 만들려 하는구나. 그런데 그 수레바퀴에는 검은 사자 목에 있는 가죽을 감으면 매우 튼튼하니라. 저 검은 사자를 잡아 가죽을 벗겨라.' 하고 꾀었다. 사내는 기뻐서 나무귀신이 시키는 대로 검은 사자를 잡아 가지고 갔다 한다. 그대들이여, 이 이야기의 내용과 같이, 사람들은 변변치 않은 오해로 인하여 다투게 되며, 또 서로 해치고 죽이기까지 하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2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종려나무 숲 속에 살고 있는 토끼는 우연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세계가 무너지면 어찌할까?' 하고. 그때 마침 도토리 한 알이 종려나무 잎 위에서 툭하고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아하, 세계는 그예 무너지는구나!' 하고, 화닥닥 뛰어,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도망쳐 달아났다. 그때 다른 토끼가 그것을 보고 '왜 이렇게 급히 도망질치느냐?' 고 물었다. 토끼가 '큰 일 났다, 세계가 무너진다' 고 대답하였다. 다른 토끼가 '아, 그것 큰일이구나.' 하고, 같이 뛰어 도망쳤다. 다음 제삼, 제사의 토끼도 도중에서 이에 어울려 도망쳤다. 나중에는 수천 마리 토끼가 다같이 떼를 지어 도망쳤다. 이 광경을 보고, 그 말을 듣고는 사슴도, 돼지도 어울리고, 물소ㆍ들소ㆍ범ㆍ사자ㆍ코끼리 등 모든 짐승은 다 거기 어울려, 몇 리의 길이로 떼를 지어, 세계가 무너진다고 도망치는 것이다. 그때, 한 마리의 늙은 사자가 이것을 보고, '저것들이 반드시 무엇에 놀라서 저렇게 쫓겨 오는 모양이다. 아마 무슨 소리를 잘못 듣고 그런가 보다. 만일 내가 보고만 있으면 저들은 달아나다가 모두 기진하여 죽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그 사자는 뛰어 그들 앞에 나타나 큰 소리를 질렀다. 앞에서 달리던 토끼가 멈췄다. 몇 만이나 되는 짐승들도 오는 대로 멈췄다. 사자는 그 한복판에 나아가 물었다. '너희들 왜 이렇게 뛰어 도망치는 것이냐?' 무리 중 누군가가 대답했다.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누가 그것을 보았느냐?' '코끼리가 알고 있다.' 코끼리에게 물으니, 코끼리는 사자한테 들었다는 것이다. 사자는 범에게, 범은 물소에게, 물소는 사슴에게ㆍㆍㆍ.이렇게 나중에는 맨 처음 도망치던 토끼가 보았다는 것이다. 사자는 그 토끼에게 '너는 참으로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느냐?' '나는 틀림없이 보았습니다.' '너는 어디서 보았느냐?' '내가 서해안에 있는 종려나무 숲에 살고 있을 때, 세계가 무너지느라고, 막 후닥닥 후닥닥 소리를 내는 것을 듣고 도망첬습니다.' 사자는 짐작이 가서, 다른 짐승들은 그곳에서 쉬며 기다리게 하고, 그 토끼를 등에 업고 그 종려 숲을 찾아가서, 그 소리 들리던 곳을 자세히 조사했다. 그러나 떨어진 도토리가 있을 뿐, 세계는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알았다. 거기서 다시 여러 짐승들이 있는 곳에 와서, 도토리 한 개를 내보이며 저들의 두려움을 풀어 주었다 한다. 만일 사자의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그 무수한 짐승들은 도망질쳐 가다가 가다가 큰 하수에 빠져 죽고 말았을 것이 아닌가.
여러분들이여, 사람은 올바른 견해를 가져야 한다. 변변치 않은 오해로써 만인이 같이 비참한 최후를 부른다는 일이 있다는 것을 주의하지 않아서는 아니 된다."
라고 말씀하셨다.
두 나라 사람들은 부처님의 간곡하고 미묘한 가르침을 받고 기뻐하여, 서로 뉘우쳐 사과하고, 이로 인하여 명문 귀족 자제들이 불법에 귀의했다. 부처님은 그 사람들을 거느리고 두 나라에 교화를 펴시며, 잠깐 동안 가비라성의 니구류수 숲에 머무르셨다.
3 이때 대애도 부인은 어느 날, 새로 지은 옷 두 벌을 가지고 니구류수 숲에 찾아와서 말했다.
"부처님, 새로 지은 이 두 벌의 옷은, 내 손으로 부처님을 위하여 실을 뽑고 짜내 만든 것이오니, 그 성의를 생각하시어 받아 주소서."
"예, 그것은 여러 비구에게 공양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승가와 나에게 공양하는 것이 됩니다."
부인은 두세 번 청원했다. 부처님은 똑 같이 말씀하셨다. 그 옆에 서있던 아난이
"부처님이시여, 모처럼 대애도 부인이 바치시는 옷을 받아 주소서. 저 어른은 부처님께 큰 공이 계시는 어른이십니다. 부처님의 이모이시며 양육자이십니다. 부처님 생모가 돌아가신 뒤, 자기의 젖으로 받들어 기르신 어른이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저 어른께 큰 이익을 베풀어 주옵소서. 저 어른은 이미 부처님께 귀의하여 오계를 받아 가지고, 삼보에 흔들림 없는 신앙을 가졌으며, 사제의 도리에 의심이 없는 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저 어른에게 큰 이익을 주기 위하여 그 원을 받아 주옵소서."
라고 간청했다. 부처님은 아난의 원에 따라, 그 시물施物을 받으시고, 이어서 보시 공덕을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