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사랑을 전달하는 천사들의 집~!
 
 
 
카페 게시글
....................♡ 병무기자 스크랩 군대는 나의 무대-강기정(장려상)
호박조우옥 추천 0 조회 131 14.12.29 23: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나는 지금 전문 MC(사회자)로 활동을 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무대에 오르고 싶어 했던 나는

음악을 하며 중,고등학교 때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청소년 페스티벌 등 공연을 즐겨했었다.

그러다 17살이 되던 해에 학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여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길을 찾기

위해 자퇴를 결심한 후 18살이 되던 해 검정고시를 본 후 19살 때 대학에 입학을 했다.

예술대에서 MC(사회자) 전공을 했던 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교수님과 선배님들의

도움으로 운이 좋게 대학 파티나 축제 등의 큰 무대에도 오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며 MC 생활을 하면서 짧았지만 부산 KBS 리포터로도 활동을 하며 많은

무대 경험과 사회 경험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입대라는 문 앞에 서게 되었다. 또래 친구들은 먼저 동반

입대 등을 통해 먼저 군대에 입대한 친구들이 비일비재하였고, 나도 동반 입대를 하기 위해 주변

친구들을 모색하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친구가 방송 미디어 쪽 전공을 하고 있었는데, 군대에 가서도

자신의 전공과 맞는 주특기를 부여받고 군대를 갔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고, 곧바로 친구에게 방법을

듣고 내 전공을 살려 어떤 주특기로 갈 수 있는지 병무청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그 때 병무청

홈페이지에서 나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주특기 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정훈’ 주특기였다.

이 주특기는 장병들의 정신교육과 부대 홍보, 공보 조치 등의 단순한 정신교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방송 미디어와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주특기이다. 남들이 알고 있던 엄하고 무서운 군대에서

경험하기 힘든 좋은 기회를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었다. 곧바로 지원을 하게 되었고, 지원에 합격하여

입대날짜가 통보되었다. 지원하기 전, 한 가지 걱정은 나의 전공은 방송 미디어보다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전공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약력에 KBS 리포터 활동이라는 약력이

큰 효력을 받았던 것 같다.

 

그 후 육군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난 뒤 나는 바로 별도의 후반기 교육 없이 자대

배치를 받게 되었다. 같은 훈련 동기들과 훈련을 받으며 이야기 했던 것은 ‘정훈’ 주특기를 받고 온

사람들은 보통 상급부대에 배치를 받게 되어 다른 일반 병사들에 비해 매우 편하고 안락한 군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근데 정말 사실이었다. 훈련이 끝날 때쯤 부대 배치가 되었고 나와 같은 주특기를

받고 입대한 동기들의 부대 배치를 보니 대부분 최소 사단본부~군단본부였다. 그 후 나는 부대 배치를

확인하였다. 3포병여단 본부에 배치가 되었다. 항상 사회에서 군대이야기를 들을 때 사단, 군단 정도의 단어들은 익숙하게 많이 들었었지만, 여단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너무나도 생소한 단어였다. 무엇보다

가장 가슴 아팠던 사실은 3포병여단은 강원도 인제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충남 공주에

살던 나로서는 부대가 집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어쨌든 멀리 자대배치를 받게 되었고, 이등병의 약장을 단 나로서는 모든 것들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청소를 할 때나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나 심지어 식사를 할 때에도 평소 밝고 말 많던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어색함이었다. 자대배치를 받고 난 다음 날 일과시간이 시작되었고, 나는

정훈공보부라는 사무실로 가게 되었다. 앞으로 1년 9개월 동안 내가 일할 부서로 가는 마음은

너무나도 설레고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이 되었다. 사무실에 들어섰고 그곳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좋은 인상의 정훈참모님이 계셨고, 나의 사수인 두 분의 병장 선임이

있었다. 정훈참모님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먼저 포토샵, 일러스트, 프리미어 (사진, 영상 편집프로그램)

등을 다룰지 아는지 물어보셨고, 역시 방송 미디어 전공도 아니었던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는 나의 답변에 참모님과 나의 사수였던 선임병장님들은 긴 한 숨을 쉬며 오늘부터

혹독하게 교육을 받아야겠다며 그 때부터 적극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하였다.

선임들의 교육을 돌아가며 받으며 많이 꾸중을 듣기도 하였고 모든 것들이 서툴렀다. 그래도 가끔씩

선임들이 건네주는 맛있는 간식은 나에게 큰 용기와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조금씩 군 생활에 적응을 하기 시작하였다. 솔직히 말해 나는 남들이 겪는 군

생활에 비해 굉장히 편안하게 군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아쉬울 것이 없었고, 큰 불만도 없었다. 어느 날

예하부대 간부님께서 정훈공보부에 방문을 하여 군단에서 주최하는 정신교육 대회에 참여하는데

그 때 심사위원분들의 집중을 끌기 위하여 영상을 하나 제작해야한다며 의뢰를 하였고, 영상 제작

중 내가 출연하여 당시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였던 ‘애정남’을 패러디하여 연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후 결과가 좋게 나와서 군단 정훈공보부 간부님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정훈공보부에서 주로 하는 업무는 정신교육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부대 소개 영상을 촬영,

편집하며 부대에서 일어나는 이슈거리들을 사진 촬영하는 일들이었다. 여기서 수행했던 나의

임무들이 지금의 사회생활에서 이렇게 큰 역할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먼저, 군대에 입대하기 전 1년에 사진을 2~3번 찍을까 말까했던 저에게는 사진 촬영기법이나 편집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래서 그런지 영상촬영 및 편집은 더욱 어렵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조금씩 익혀갔고, 어느새 병장이 될 때쯤엔 이등병의 어색함이 무색할 정도로 많이 변해진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현재 나는 전문 MC(사회자)로 활동을 하고 있다. 누구나 알겠지만 이렇게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은 물론, 말을 잘하고 진행을 잘하는 것은 0순위가 되겠으며 일단 이 일을 자주

하고 무대에 많이 오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홍보와 PR이 생명이다. 군 생활에서 배웠던 포토샵,

일러스트, 프리미어 등의 사진,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다루는 기술로 나의 MC활동과 관련된 블로그를

관리하며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으며 다른 MC들은 이러한 블로그 관리나 자신의 독특한 영상 홍보

방안을 세우기 위하여 비싼 돈을 들여 학원을 다니지만 나는 군 생활을 하며 배웠던 것들을 토대로

지금도 충분히 부족하지 않을 만큼 나를 홍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군 생활 당시 매주 1회 실시되는 주간정신교육이라는 병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국가 안보나

현 군대의 실상 등을 배우는 정신교육 시간이 있다. 물론 부대마다 교육 진행방식을 틀리겠지만,

우리 부대에서는 정훈병이었던 내가 교육 자료를 준비하여 참모님께 검토를 받고 난 후 장병들 앞에서

교육을 진행하였다. 입대 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던 것이 익숙해서인지 이곳에서 정신교육을

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때 장병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지루한 교육이 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많은 장병들에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국가 안보를 새길 수 있을까하는 나의 노력들이 습관이

돼서 지금은 그 때 책을 읽으며 공부했던 지식들이나 말을 할 때 늘었던 어휘력들이 공식 행사나

시공식, 기공식 등 다소 딱딱할 수 있는 행사에서 큰 빛을 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때 공부한

것들을 토대로 나의 그동안의 삶을 주제로 학교나 청소년 수련원 등에 가서 나의 과거 이야기를 하며

많은 청소년들에게 꿈과 관련된 강의도 함께하고 있다. 무엇보다 군대에서 생겨난 하루에 한개 명언을 노트에 정리하고 그 명언을 무대에서 사용되는 멘트에 어떻게 접목시킬까 생각을 하는 습관은 지금

전문 MC 직업을 하면서 큰 파급효과를 지니고 있다. 또 MC 선배님들은 내가 입대하기 전 군대에

다녀오면 자신이 평소에 하던 일과 다른 일들을 하게 되면서 대중 앞에 서서 말하는 감각을 잃게 되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한다며 지금은 대충하고 나중에 군대를 다녀온 후에 본격적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며 조언을 하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많은 장병들 앞에서 교육을 하며 대중 앞에서 말을

하는 감각을 잃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내가 MC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지금부터이다.

일병으로 진급한 후 바로 크리스마스가 찾아왔고 우리부대에서는 장병들을 대상으로 장기자랑을 제일

잘하는 장병에게 최고 4박5일의 휴가를 제공해 주는 행사를 하였다. 이 때 포대장님께서는 평소

장병들 앞에서 정신교육을 하며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기를 좋아하던 나에게 행사를 진행할 것을

제안하였고, 그 후 나는 이 행사의 MC로서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군인을 대상으로

무대에 오르게 되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너무 반응이 좋았다. 일병이었던 내가 무대에 오르고 난 후

선임들의 처음 눈빛은 ‘이 녀석이 잘할 수 있을까?’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마이크를 들고 말을

시작한지 10분이 지난 후 선임들은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고 장병 모두가 다 즐거워하는 분위기였다.

 

 

 

이때를 계기로 여단장님께서도 특명(?)을 내리셔서

예하부대 모두가 일 년에 한번씩 ‘장병예술제’ 등의 행사를

진행하게 하여 장병들의 군 생활 스트레스 해소와 사기를

드높일 수 있게 하였다. 그렇게 군대에서도 행사를

진행하며 나의 감각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더 살아나기 시작했고, 주말이나 개인정비시간에 이러한

행사들을 대비하여 어떤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해야할까

고민도 하며 많은 프로그램들을 만들 수 있었으며,

군대에서 진행되었던 위문열차 국군장병 발굴프로젝트

‘Be the star’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불러

군단에서 주최되던 행사에서 운이 좋게 1등을 하였다.

그 후 국방부홍보지원단 연예병사들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도 생겼고, 난생 처음으로 인터넷 뉴스에도 나를

주제로 인터넷 뉴스에도 실리게 되었다. 아직도 그 기사를

보며 힘들 때나 지칠 때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고 있다.

 

이렇게 군대에서도 나의 전공과 끼를 살 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던 것 같다. 위에서 이야기한

‘Be the star’ 장병오디션 무대에 오르기 전 내 마음속으로 ‘목표를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만,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한다면 시간이 지나고 그 목표가 나를 만든다.’라는 주문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러한 가치관을 갖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3포병여단에서 나를

돌봐주시던 정훈참모님께서 장병들을 위하여 나의 군 생활 이야기도 해주고 즐거워질 수 있도록

레크리에이션도 간단히 진행해달라는 연락을 해오셨다. 군대에 있을 때에도 많은 지원과 가르침으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참모님께서 전역한 후에도 이렇게 찾아주시니 너무 감사하고

뿌듯하였다.

 

 

입대 전, 군대라는 곳은 삭막하고 엄한 사람들만 있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든 곳이라 생각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군대라는 곳이 지금의 내가 있게 하고, 무대에 올라 그 누구보다 자신 있고

용기있게 한마디 내던지며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멋진 MC로 만들어준 곳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군 생활을 하며 열심히 국가의 안보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는 병사들에게 시계는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시간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다는 말처럼 힘든 시간도 나중엔 다 추억이 되고

도움이 될 꺼라 생각하며 열심히 군복무를 하시고 건강히 잘 마치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