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KBO 리그 MOM 최다 수상자 NC 박석민(사진 제공 : NC 다이노스)
[비즈볼 프로젝트 조경렬]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특히 최근 들어 KBO 리그에서도 세이버메트릭스가 수면 위로 등장함에 따라 WAR, wRC 등 선수들의 가치를 환산하는 다양한 지표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러한 기록들이 낯선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 야구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즐기기 위한 문화이지 연구 대상은 아니다. 흔히 '야구의 꽃은 직관에 있다.' 라고 할 정도로 KBO 리그의 응원문화는 잘 정착이 되어있다. 관중들은 단순히 경기를 관람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열광하고 응원하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는다.
반면, 야구를 좀 더 전문적으로 즐기고자 하는 팬들도 있다. 이들은 매 경기를 챙겨보며 일반인들은 쉽게 알아듣기 힘든 기록들과 수치들을 통해서 야구를 분석하고 즐긴다. 때때로 이 두 집단은 서로를 '라이트팬', 혹은 '야구덕후' 라 지칭하며 사소한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엔 다 같은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인 것에는 틀림이 없으며, 이들이 곧 프로야구 원동력의 근간이 된다. 오늘은 조금 무거운 통계 수치를 떠나서 야구를 다소 깊게 알지 못하는 사람도, 그리고 세이버메트릭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Most Valuable Player 그리고 Man of the Match
Most Valuable Player. 줄여서 MVP. 한 시즌 동안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단 한 명의 선수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그리고 유독 프로야구에서는 가을이 되면 이 MVP란 단어를 많이 접하게 된다. 시즌이 종료됨에 따라, 해당 시즌의 MVP에 대한 무수히 많은 추측이 쏟아져 나온다. 또한 포스트시즌에서도 Daily MVP, Series MVP 등을 수상하기 때문에, 정규리그에 비해서 MVP란 단어를 더욱 쉽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정규리그 도중에는 이 MVP란 단어를 쉽게 접하기가 힘들다. 한 달에 적게는 3~4경기, 아무리 많아도 8경기를 넘는 경우가 드문 축구와는 달리 야구는 우천 취소와 휴식일을 감안하더라도 한 달에 최소 20게임 이상을 펼친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에서 'MOM(Man of the Match)' 이라는 기록을 공식적으로 집계하는 것과 달리 야구는 각 방송사 별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의 수훈선수 선정 외에는, 공식적으로 각 경기의 MOM을 집계하지는 않는다. 물론 야구에서 MOM이 가지는 가치가 그렇게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야구는 '통계의 스포츠'라는 점에서 단 한 경기에서 만으로 그 선수를 평가하기 어려울 경우가 많다.
WPA(Win Probability Added, 승리 확률 기여도)라는 세이버메트릭스 지표를 통해 예를 들어보자. 어떠한 3연전 경기에서 A선수는 1차전에서 0.3의 WPA를, 2,3차전에서는 각각 0.1의 WPA를 기록했다. 반면 B선수는 2차전에서 0.3의 WPA를 나머지 두 경기에서는 0.1의 WPA를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C선수는 3차전에서 0.3의 WPA를 기록했다. 이 ABC 세 선수는 각각 1,2,3차전에서 가장 결정적인 활약을 펼치며 경기 수훈선수로 선정되었다. 반면 여기 D라는 선수가 있다. D의 경우 단 한 경기도 수훈선수로 선정되지 않았지만 3경기 모두 0.2의 WPA를 기록했다. 결국 세 경기의 WPA를 모두 합했을 때 나머지 세 선수는 0.5였지만 D는 홀로 0.6의 WPA를 기록했다. 결국 추가한 승리 확률, 즉 팀 승리에 대한 기여도는 D가 가장 많았던 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스포트라이트는 A,B,C 세 선수에게 돌아간다.(수치는 예상을 돕기 위해 임의로 부여한 것이며 실제로 0.200의 WPA는 전혀 낮은 수치가 아니다.)
반대로 경기장에서 경기를 즐기는 관중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3연전 모두를 경기장에서 즐기는 관중은 흔치 않다. 그런 이들에게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D 선수가 아닌, 내가 본 경기에서 승리를 결정지어준 A, B, C 선수다. 한 경기에서 가장 결정적인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이 결국 기억에 남기 마련이며, 이러한 경기를 많이 펼친 선수들이 곧 팬들의 환호성을 한 몸에 받는 스타플레이어가 된다. 결국 MOM과 MVP 차이는 여기서 나타난다. MVP는 그 뜻에 걸맞게 한 시즌을 통틀어 가장 가치 있는 선수에게 부여된다. 반면 MOM은 경기를 지배한 선수에게 돌아간다. MOM의 영광은 경기의 시작과 끝 안에서 이루어진다. 한 경기 안에서 가장 큰 임팩트를 보여준 선수에게 이 기록이 돌아가고, 경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관중들의 마음속에 남는 것도 그 선수일 것이다.
겨우 '1경기' 이지만 어쨌거나 한 시즌이라는 긴 여정을 구성하는 것도 이 각각의 '1경기'다. 이 1경기,1경기가 모여서 144경기가 되고 팀의 향방을 결정한다. MOM의 의의가 바로 이곳에 있다. 결국 MOM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그 만큼 팬들의 기억 속에 결정적인 순간에서 좋은 활약을 해주는 영웅으로 남게 되는 것이고, 대중들에게 스타플레이어로 각인 된다는 것이다.
2015 KBO 리그 최다 MOM 수상자
그렇다면 과연 올 시즌 어떤 선수가 가장 많은 MOM을 기록했는지 살펴보자. MOM은 해당 경기 소속팀의 승패와 관계 없이 한 경기에서 양팀 통틀어 가장 높은 WPA를 기록한 선수를 기준으로 선정했으며, 집계결과 총 720경기에서 244명의 선수가 MOM을 나누어 가졌다. 이 중 가장 많은 MOM을 기록한 선수는 최근 NC로 이적한 3루수 박석민이었다. 무려 13번의 경기에서 가장 높은 WPA를 기록하며 올 시즌 최다 MOM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그렇다면 MOM 수상 실적을 실제 선수의 가치를 나타내는 기록과 비교해볼 때 얼마나 괴리가 있었을까? 우선 선수의 가치를 나타내는 가장 상용화된 지표인 WAR(Wins Above Replacement) 부터 비교를 해보았다. 그 결과 리그 WAR 3위 나바로, 9위 유한준, 10위 강민호 등이 MOM 순위에서는 상위권에 들지 못했다. 반면 리그 WAR 83위 이호준은 당당히 8번의 MOM을 기록하며 상위권에 들었다.
시즌 WPA를 기준으로 봐도 MOM 순위와는 일정부분 괴리가 있었다. 윤성환과 유희관은 각각 9번, 12번의 경기를 지배하며 MOM을 거머쥐었지만 WPA 총합계 순위에서는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아무래도 투수인 점이 조금 불리하게 작용한 바도 있지만 결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만큼 반대의 모습도 종종 보여주었다는 의미가 된다.
WAR의 경우 타격 뿐만 아닌 수비를 포함한 기록이기 때문에, 주로 타격적인 능력이나 상황의 중요도를 토대로 평가하는 MOM과는 괴리감이 있을 수 있다. WPA 역시 전체 시즌의 총합은 잘한 경기 뿐만 아니라 잘하지 못했던 경기의 WPA까지 다 합산된 기록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한다. 결국 통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표본의 크기’인데, 한 시즌을 표본으로 하는 기록들과는 달리 MOM은 단 한 경기만을 표본으로 하기 때문에 다소 왜곡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실제 프로야구에서도 MOM이라는 기록이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중요하게 취급 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프로야구 또한 상업적인 요소가 짙다. 그렇기에 개별 경기에서 폭발적인 활약을 하며 경기를 관전한 팬들에게 사랑받는 스타플레이어들은 구단 입장에서도 큰 가치를 가진다. 결국 MOM이라는 기록은 보다 심층적인 야구내적 기록보다는, 다소 엔터테인적인 성향이 있는 야구 외적 기록이다. 팀의 승리를 위한 가치를 측정하기 보다는, 팬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선수가 누구인지를 엿볼 수 있는 타이틀인 것이다. 결국 MOM 이라는 기록의 가치는 '스타플레이어'의 확인에 있다.
재미로 보는 MOM의 조건
전체 720번의 MOM 중 89.2%에 해당하는 높은 비율로 승리팀에서 MOM이 나왔다. 반면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며 MOM을 거머쥐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이 패배한 경우도 73번이나 있었다. 총 58명의 선수가 안타까움을 나눠가졌다. 이 중 이용규는 시즌 3번의 MOM중 2번을 패배한 경기에서 기록하며 가장 활약이 빛을 보지 못한 선수가 되었다.
투수 MOM 횟수 1위, 에릭 해커(사진 제공 : NC 다이노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이 있지만 MOM으로 선정된 비율은 타자가 61.1%로 더 높았다. 다만 전체 대비 선발 투수 MOM 선정자의 비율과 중심타선 MOM 선정자의 비율이 각각 28.9%와 30.6%로 큰 차이가 없었던 만큼 선발 투수가 중요하다는 점도 부각되었다. 특히 선발 투수의 경우 약 88% 정도가 QS를 기록한 경우에 MOM으로 선정되었다. 많은 이닝과 적은 실점으로 확실히 경기를 지배한 선수가 당연하게도 주로 MOM으로 선정되었던 것이다.
타자의 경우 전체 MOM 선정 선수 중 절반이 중심타선에 위치한 선수들로, 장타가 팀의 승리 확률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MOM 선정 타자 중 홈런을 기록한 경우는 56.1%로 홈런이 꼭 필요 조건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재미로 보는 팀별 MOM TOP 5
위 표는 2015 시즌 각 구단 별 MOM 상위 5명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상대적으로 이름 값 있는 선수들이 MOM 순위 TOP5 안에 많이 들어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산의 윤명준, KIA의 백용환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팀 내 탑 스타플레이어 반열에 포함되는 선수들이었다. 한화 로저스의 경우 후반기에 교체되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팀 내 MOM 순위 5위에 올랐다. 그가 후반기에 얼마나 큰 임팩트를 보여주었는지 나타내는 모습이다. 넥센의 경우에는 상위 4명이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모두 팀을 떠났다. 향간에서 들려오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이 밖에 삼성과 LG도 각각 팀 내 최다 MOM을 기록한 박석민과 이진영이 스토브리그를 통해서 팀을 떠났다.
MOM이라는 기록이 반드시 스타플레이어의 조건인 것은 아니지만, MOM을 많이 기록한 선수들이 곧 팀의 스타플레이어라는 것은 위의 사례를 보면 어느 정도 확실하다. 그리고 오늘도 관중들은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에 모이고 그들에게 열광한다. 아마도 여전히 그들은 세이버메트릭스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통계와 수식에는 크게 관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달리한다면, WPA라는 기초적인 세이버메트릭스 기록을 이용해 MOM을 선정한 것처럼, 단순히 흥미를 위한 기록이 세이버메트릭스에 접근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다 같이 야구를 사랑하고 야구에 열광하는 팬들로서, '야알못'이나 '라이트팬' 그리고 '야덕'과 같이 선을 긋기 보다는 서로 공통된 관심사를 공유하고 의견을 교환해 나가는 것이 야구의 발전을 위해 더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MOM이라는 생소한 기록을 등장시킨 것도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다. ‘라이트팬’과 ‘덕후’의 중간에서 야구팬들의 화합을 외쳐본다.
기록 출처 : 스탯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