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설법 법화경(48)
범천왕이 법을 청하다.
본문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대통지승불께서 최상의 깨달음을 얻을 때 시방으로 각각 오백만억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그 세계의 중간에 해와 달의 빛이 비치지 않은 캄캄한 곳이 모두 밝아져서 그곳에 있든 중생들이 서로 보게 되어 모두 이렇게 말하였느니라.
이곳이 어찌하여 홀연히 중생들이 생겼는가 하였느니라.
또 그 세계의 하늘 궁전과 범천의 궁전에 이르기 까지 여섯 가지로 진동하며 큰 광명이 두루 비치어 세계에 가득하니 다른 여러 천상의 광명 보다도 더 훌륭 하였느니라.
인간인 사람이 구성하고 있는 육근 안.이.비.설.신.의가 어떤 감정을 받았을 때 온 몸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기뻐서 환희심이 들거나 아니면 어떤 두러움에 봉착하면 전율을 느낀다.
감격 하거나 당황 했을 때 육근 의식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캄캄한 곳에서 전기 불이 확켜지면 두럽고 불안하는 마음이 한꺼번에 확 사라진다.
불교의 핵심은 어두움을 걷어내는 광명이요! 빛을 말한다.
불교는 지혜로써 인간의 모든 어리석음과 부정하고 어두운 과오를 빛으로 인도하여 주신다.
불교는 지혜이기 때문에 세상의 어떠한 어려움과 어두움도 빛과 광명으로 드러내 주시는 지혜의 등불이다.
불교라는 것이 손에 잡을 수가 없으니, 세상의 빛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마음에 지혜가 밝아지면 모든 사람들을 다치지 않게 등불이 되어 길을 밝게 하여 준다.
바둑을 둘때 급수가 높은 사람이 하급수들이 두는 것을 보면 죽는 자리인지 생하는 자리인지 환하게 보인다.
똑같은 눈을 가지고도 똑같은 바둑판을 보는데 상급수와
하급수의 차이가 난다.
상급수는 그가 놓는 자리가 죽는 자리인지 생하는 자리인지 환하게 볼 수 있다.
지혜가 있으면 인생사가 환하게 다 볼 수 있다.
지혜가 있으면 자기가 앉을 자리가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은지 살 필줄을 안다. 앞뒤 좌우 살펴보고 앉는 사람은 그 만치 다음 사람을 위해서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자기 좋을 데로 앉아 버린다.
간단한 일이지만 남을 배려하는 사람과 남을 배려하지 않고 저만 좋을 데로 하는 사람을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한다.
지혜가 열리면 옆의 사람과 앞의 사람 좌우에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지혜가 있을 때 남을 배려하는 혜안이 열리고 법안과 천안통이
열리는 것이다.
지혜가 열리면 사람이 보인다.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없다.(무시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일과 버금간다. )
남을 무시하거나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은 그런 사람은 형상은 사람이지만 속은 사람이 아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은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게 하기 위해 서다. 불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하게 위함이다.
눈을 가져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양보하고 배려하지 못하면 그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을 일러 여섯 곳 안,이, 비,설,신의 캄캄한 곳이라 하시는 말씀이다. 자신이 감동을 받으면 온 세상이 살만한 세상으로 보이고 사랑을 하면 은 온 세상에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청춘 남여는 무엇이든지 긍정적으로 보이고 가능성으로 보이고 들린다. 똑같은 길을 지나가는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그의 속내가 가진 감정에 따라 발걸음이 달리 보인다.
생각이 지혜를 만든다.
군소리
생각은 교차로다.
생각이 마음의 문을 연다.
행복하고 즐거운 것은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남에게 베풀 때 행복하고 부족하고 모자라는 이를 도울 때 기쁨이 생긴다.
똑같은 떡 집에서 떡을 하여 한 곳은 잔치 집에 보내고 또 한 곳은 초상집에 보냈다.
임산부가 잔치 집 떡을 먹으면 좋고 초상집 떡을 먹으면 부정 탄다 한다. 마음의 부정적인 인식과 생각의 오류가 불러오는 어리석음이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 생각의 문을 열 수 있는 감정을 가진 당신은 부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