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251226 . 피정(Retreat)
요세비
사탄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정신 없이 움직이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쁘게 돌아갈 때는 누가 나를 해치는지, 누가 나를 사랑하는지,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음과 속도는 사탄의 가장 좋은 은신처입니다.
C.S. 루이스의 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보면 고참 악마가 조카 악마에게 이렇게 조언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인간을 타락시키는 최고의 무기는 '소음'이다. 그들이 절대 침묵하지 못하게 해라. 침묵하면 그들은 원수(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즈카리야 사제는 평생 하느님의 일을 했지만, 정작 하느님의 능력보다는 자신의 '계산기' 를 더 믿었던 사람입니다. 천사가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자 그는 즉시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악마는 즈카리야에게 끊임없이 의심의 소음을 불어넣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즈카르야를 보호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리십니다. 바로 '침묵'으로 그를 격리시키신 것입니다. 즈카리야가 벙어리가 된 것은 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강제된 피정이었습니다.
입을 닫고 귀를 열라는 하느님의 자비였습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즈카르야는 자신의 불신앙을 뼈저리게 식별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의 배가 불러오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자신의 좁은 계산기를 부숴버렸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즈카리야처럼, 그리고 저 예술가처럼 잠시 멈춰 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피정'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하느님 안에서 침묵할 때, 우리를 갉아먹던 악한 것들은 그 고요함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칩니다.
사도행전의 사울을 보십시오. 그는 살기등등하게 다마스쿠스로 가다가 강렬한 빛을 받고 눈이 멉니다. 그는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그 3일 동안 그는 무엇을 했을까요? 자신이 알고 있던 율법, 지식, 신념이라는 '계산기'가 강제로 꺼진 상태에서 그는 어둠 속에 홀로 있었습니다.
육체의 눈이 닫히자 비로소 영혼의 눈이 떠졌습니다. 그는 그 3일간의 캄캄한 침묵 속에서 자신이 박해하던 예수가 곧 주님임을 깨닫습니다. 눈을 감아야만 진리가 보이는 '즈카리야의 시간'을 겪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우리 곁에 남는 것은 우리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자연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치라는 '절대 침묵'의 공간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밖에서 볼 때 고치는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엄청난 재창조가 일어납니다. 만약 답답하다고 고치를 찢고 나오면 나비는 날지 못하고 죽습니다.
즈카리야가 열 달 동안 벙어리로 지내야 했던 것이나 사울이 예수님의 광채를 보고 사흘 동안 눈이 멀었던 것도 육신의 눈을 닫고 영혼의 눈을 뜨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전삼용 신부님의 글을 일부 인용해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