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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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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소통광장 스크랩 한류(韓流)의 청사진
무한의주인공 추천 0 조회 96 14.01.24 08: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미 다른 글에서 내가 누누이 짚었지만, 우리나라 걸그룹들의 지나친 노출 경쟁은 제 무덤만 팔 뿐이다. 노래와 춤사위가 두드러진 그들끼리 쉽게 튀려고 맨살을 드러내는 볼거리 자체가 서로 발목을 잡는다. 노출도 비슷해져서 결국 19금 안무를 짜기 마련이다. 이제 다리를 쩍 벌리다 못해 아예 무대에 자리를 잡고 누워버리니, 기껏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나이에 인기를 위해 자기 정체성조차 잃어버리는 꼬락서니이다. 몸짓이 제아무리 달라도 불거리란 그 분위기가 닮을수록 쉬이 물린다. 에로 전문배우로 굳어져 다른 이미지를 추스르지 못했던 연기자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수두룩하다. 가수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나라 걸그룹들은 하나같이 가수생명을 갉아먹고 있다.

결국 소속사의 근시안적인 장삿속이고, 이는 다시 앨범마다 바로바로 수익성을 낳아야 하는 돈놀이 투자가 뒤를 받치는 탓이다. 되짚어 자기들만의 색깔과 이미지를 만드는 음악 이전에 유행만 쫓는 급급함이기도 하다. 1964년 동경올림픽을 디뎌 약삭빠르게 전범국가에서 문화선진국으로 간판을 바꿔 달려던 일본이 오늘날 대중상업소비문화의 천국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진창길을 우리가 쫓고 있다. 기초학문과 순수예술이 뚜렷하게 앞서 있어도 그 모양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줄기는 문화의 원류인 역사를 왜곡해 한반도의 뿌리를 지워대는 전체주의의 사상누각(沙上樓閣)을 상업주의로 열기설기 기워댄 데 지나지 않다. 물론 성()의 상품화를 아예 뿌리치진 못한다. 다양성이 있어야 그 안에서 19금이든, 볼거리든 저마다 상품성이 우람한 법이다.

판박이 대중가요로는 초창기 한류부터 지금껏 입에 오르는 겨울연가대장금에서 그 드라마들만큼 큰 인기를 누렸던 주제곡이 나오기 어렵다. 나는 텔레비전을 워낙 드물게 보지만, 그만한 인기작품도, 삽입곡도 아직 없다. 문화는 서로 이를 맞물려 전해질 때 그 힘이 더 크게 자리매김을 하는데, 쉽게 말해서 세계를 휩쓸었던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영화 삽입곡이라면 설령 상품성이 흐릿해도 그 작품에 대한 관심이 웃자라는 법이다. 노래 때문에라도 영화를 찾아볼 동기부여가 들어선다. 지금 한류는 가요와 드라마며 영화가 벗기 경쟁에 나선 걸그룹들만큼이나 엇비슷하게 따로따로 놀아난다.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미국과 프랑스 등 외화 중심으로 돌아간 197,80년대는 그 주제곡 역시 빠지지 않았던 또 다른 장르다.

 

 

좋은 삽입곡은 세월 속에 내용을 잊었다 한들 음악이 전해주는 환기성(喚起性)이 그 정서를 통해 흐릿한 기억이나마 돌려준다. 영화를 즐겨보는 내겐 도통 마음에 차는 우리나라 주제곡이 없다. 기껏해야 2000년에 나왔던 동감에서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두고두고 꼽을 따름이다. 언체인드 멜로디(Unchained Melody)1955년 동명의 영화 주제가로 이미 밀리언셀러였지만, 1990년 영화 사랑과 영혼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드라마든, 영화든 종합예술이 지닌 힘이다. 문화상품 중 선입견과 몸에 밴 입맛으로 전통성이 짙은 음식과 달리 대중음악은 가장 손쉽게 온라인을 통해 뻗어나가는 장르다. 즉 한류의 얼굴마담 노릇을 한다. 전체 성장세가 뜸해진 사이 노출로 달아오른 가요는 자칫 싸구려 대중문화라는 지저분한 거미줄만 끈끈하게 달라붙는다. 알맹이를 키워야지 몸으로 설치는 겉멋은 제 풀에 무너진다.

한류는 이제 새로운 갈림길이다. 드라마와 가요가 앞장섰던 시장을 내수에서 힘을 키운 영화가 해외에서도 치고 나가야 주춤한 흐름이 자연스레 갈린다. 번갈아 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물고 물려야 개발과 표현이 한껏 웃자라고, 종합예술의 복합성을 더더욱 지피기 마련이다. 돌고 도는 흐름으로 가속도를 붙이지 못하면 내리막길이 멀지 않다. 노출도 표현의 방법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마지막 한 수(). 초창기 작품들이 드리웠던 감동을 넘어서지 못한 채 뒷심으로 써먹을 끝수만 짓조르면 일본처럼 사춘기 소녀들을 내세워 무덤만 팔 따름이다. 만만한 대중문화와 낮은 물가에 기댄 싸구려 관광지가 우리의 자화상이다. 외국인들에겐 한때나마 머물기 좋은 놀이터일지 몰라도 어떻게 먹고 사는 가하는 경제생활개념이 생활을 통해 살찌우는 문화예술은 그 울에 갇혀버린다. 개발해 표현할 갖가지 생각들이 먹고 사는 데 메어버릴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국정교과서 운운하며 후진국이나 팔아대는 국가주의로 몰아가며, 세계와 나누는 생활문화를 전체주의로 짓누르는 바보들의 천국이다. 방송언론은 그 밑만 닦아주느라 제 목소리를 잃은 지 오래다. 이웃사촌이긴 해도 공중파에 묶인 가요며 드라마와 영화는 다른 시장이다. 대중문화를 이끄는 20대 중 그 중반 밑에서 10대 중반이 교육을 통해 우리나라 소비생활에 맞물려 있고, 1990년대에 태어나 이른바 디지털영상세대로 자란 만큼 한류의 흐름이 겉돌아도 문화시장을 꾸준히 끌어 주리라 나는 믿는다. 열린 인터넷 세상을 거쳐 우리나라를 상대성으로 들춰보며 다양성을 피워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지난 18대 대선부터 2,30대보다 많아진 5,60대 유권자에 맞춰 청년고용을 줄인 채 빚잔치로 그칠 허깨비 정책만 나대는 나라꼴이 걸그룹의 노출 경쟁과 다를 바가 없다. 툭하면 들먹이는 미래는 살피지 않고, 자기보신주의 장삿속만 치댄다. 4대악법으로 전체 한류의 85퍼센트를 차지한 게임시장을 죽이듯 간접고용으로 국민을 머슴살이에 내모는 나라살림이 한류를 좀먹고 있다. 새로움을 찾는 젊은 세대에게 문화예술이 다가갈 이야기와 그림이 미래를 내다볼 청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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