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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예수님의 세번 질문, 베드로의 세번 대답
https://youtu.be/aorBbnMPr8Q?si=TXuAYgcE9ZGLEKoG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예수님의 세번 질문, 베드로의 세번 대답
요한복음 21:15~25
부 르 심:마태복음 22:37~40
교 독 문:80번, 고린도후서4장
찬 송:95(82),135(133),304(404),563(411)
기 도:1)깊은 데로 가는 채움이 되게 하옵소서
2)오른편에 던지는 채움이 되게 하옵소서
3)예수님의 사랑하심의 모든 것이 되게 하옵소서
4)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하옵소서
5)예수한국, 복음통일, 주사파척결, 자유우파 총선 200석
1. 베드로의 부르심과 돌이키어 심히 통곡
1>예수께서 베드로를 부르심
예수께서 제자 중에 가장 먼저 부르심을 받고
가장 먼저 가장 큰 체험을 한 제자는 베드로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가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어부들이 배에 나와서 그물을 씻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올라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니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이다하고 (눅5:5)”
그리하였더니 고기의 에운 것이 심히 그물이 찢어졌습니다.
다른 배의 야고보와 요한에게 손짓하여 도와 달라 하여 두 배에 가득채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님에게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였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누가복음5:8)”
한 배의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한 배의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2>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함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마26:31)”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마26:34)”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가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는
맹세와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 중 누가 맞습니까?
내가 맹세하는 것보다 더욱 신뢰하고 귀담아 듣고
들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맹세하는 것이 지금 당장 “나는 아니다”하여도
맹세는 두려운 상황이 되면은 그 맹세는 거짓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를 파는 자 가룟유다가 예수께 입맞추니 검과 몽치를 가지고
온 무리들이 예수님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붙잡히시는 것을 보자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마태복음26:56)”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선 줄로 생각하거든 넘어질까 조심”하여야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나는 결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으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들에게 “나는 예수를 알지 못하노라”고
맹세하여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맹세하던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맹세코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부인하였습니다.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마26:70)”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마26:72)”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마태복음26:74)”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는 자신의 맹세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여 크게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회개하는 심령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추원합니다.
2.베드로의 배신과 가룟유다의 배신의 차이
예수님의 제자 중에 베드로나 가롯유다나 다 배신자들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넘겨주었습니다.
가룟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는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님을 넘겨주고 나서도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요13:21)”고 경고하셨습니다.
심지어 누가 나를 팔 것인지 가르쳐 주어도 사단이 가룟유다를 점령하니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하라 하시니(요한복음13:26~27)”
사랑하는 여러분, 가룟유다는 돈궤를 훔치는 놈입니다.
베드로의 맹세는 그 속에 “정말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육신의 약함에 넘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예수님 곁에 있다할지라도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복음26:41)”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시는데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으로는 “주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맹세이지만 졸고 있는 결과는
“나는 그 사람을 모르겠노라”라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한 시간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룟유다가 그 속에 품은 것은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이용할려고 위장된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이 속에 있지도 않고 생각나지 않은 것입니다.
“(눅8:12)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 빼앗는 것이요”
가룟유다 속에 들어가는 것은 마귀였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키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는 회개가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죄를 범하였으나 돌이킬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예수께서 이미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누가복음22:31~32)”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기도 안에 있어
회개의 영으로 돌이키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룟유다는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감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가고 말았습니다.
가룟유다는 영원한 배신자가 되어 예수님을 배신하였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자살하였습니다.
가룟유다의 자살이 얼마나 비참한지 자살할 때 창자가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이 사람이 불의 삯으로 밭을 사고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사도행전1:18)”
배신은 무서운 것입니다.
마지막 때 배도하는 교회가 되지 말고 지금이라도 돌이키어
예수님을 생각하고 오른편에 던지는 채움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찢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사랑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요21:11)”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부인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맹세코 ”그런 일이 없을 거라“ 하였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나는 그 사람을 모르겠노라”고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언대로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내실 때에는 갈릴리 바다였습니다.
세 번째 나타내신 예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는
말씀하신대로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들 수 없었습니다.
가득찬 큰 고기가 일백쉰세 마리였습니다.
고기가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기독교 교회를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끓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견고한 믿음으로 채우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 (고린도전서15:58)”
4.예수님의 세 번 물으심과 베드로의 세 번 대답
베드로에게 3번 부일할 것을 말씀하시고 베드로는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예수께서 3일만에 부활하시어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내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심에 베드로가 세 번 대답하였습니다.
닭 울기 전에 세번 부인할 것을 예언 - 베드로가 세번 부인
- 3일 만에 부활하심 - 세번째 나타내심
- 예수님의 세번 질문 - 베드로의 세번의 대답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 베드로에 세번 물으심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물으실 적마다 자신의 세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던
그 때를 떠 올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왜 세번 물으셨을까요?
1> 예수님의 첫번째 물으심과 베드로의 대답
제자들이 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요한복음21:15)”
사랑하는 여러분, 요한복음 21장 15절의 말씀에 어떤 것을 느낍니까?
질문의 주체가 예수님이십니다.
대답의 핵심도 베드로가 아닌 예수님이십니다.
첫 번째도 예수님의 겸손,
두 번째도 예수님의 겸손,
세 번째도 예수님의 겸손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원리는 바울도 자신이 율법에 있을 때에는 첫번째도 사울,
두번째도 사울, 세번째도 사울 자신이었습니다.
자기 외에는 예수님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바울은 율법이 아닌 은혜가 되었을 때
고백은 자기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15:10)”
사랑하는 여러분,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은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 믿습니다.
은혜를 받은 바울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는 채움은 겸손이었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고전15:9)”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엡3:8)”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다(딤전1:15)”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는 자는
자신의 자아가 너무나 강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처럼 자아가 파쇄되고 바울처럼 자아파쇄가 일어나면
자랑도 예수 그리스도요 말하는 것도 내 속에 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질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에
닭 울기 전의 마음같았으면
“그럼요 내가 이 사람들보다 주를 더 사랑합니다”는 자
만감에 넘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히 통곡하였던 시몬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 나는 네 말하는 것을 알지 못하겠노라”는
말하였던 것을 상기하면서 겸손하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진심으로 겸손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나서야
비로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목양을 열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베드로전서5:5)”
2> 예수님의 두번째 물으심과 베드로의 대답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요한복음21:16)”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를 때 시몬이라 부르셨습니다.
베드로의 앞에 이름이 시몬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라 부르시지 않으시고 세 번 다 시몬이라 부르셨습니다.
왜 시몬이라 부르셨을까요?
시몬은 “흔들리는 갈대“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은 흔들리는 갈대에 교회를 세우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오르지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때에 반석이라 이름하여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16:17)”
예수님은 “시몬”이라 부름으로 베드로가 얼마나 나약하였던
존재였음을 상기시켜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신의 나약한 이름을 부를 때마다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을
기억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마태복음26:72)”
베드로는 자신의 연약하였던 그 때를 생각하며
지금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가 진심으로 대답하는 것을 듣자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목양의 양은 누구의 양입니까?
예수님의 양임을 항상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목장을 맡길 때에 항상“내 양”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 갑니다.
목자는 자기 양에게 소리를 내십니다. 양은 눈은 나쁘고 귀가 밝습니다.
양이 병들면 목자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양이 되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니라(요10:27)”
3>예수님의 세 번째 물으심과 베드로의 세번째 대답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요한복음21:21)”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찾아오셔서
함께 조반을 먹은 후에 물어보시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세 번째 물으심에 자신의 맹세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주여”를 세 번 외쳤습니다.
첫 번째 대답도 “주여”, 두 번째 대답도 “주여”, 세 번째 대답도 “주여”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이름으로 부르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는
깊은 데로 가는 사랑하심을 채움과 오른편으로 던지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하심의 채움이 되어야겠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 자라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벧후3:18)”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