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배신과 가룟유다의 배신
https://youtu.be/aorBbnMPr8Q?si=xE_TKyjyqKy0YTnJ
예수님의 제자 중에 베드로나 가롯유다나 다 배신자들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넘겨주었습니다.
가룟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는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님을 넘겨주고 나서도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요13:21)”고
경고하셨습니다.
심지어 누가 나를 팔 것인지 가르쳐 주어도 사단이 가룟유다를 점령하니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하라 하시니(요한복음13:26~27)”
사랑하는 여러분, 가룟유다는 돈궤를 훔치는 놈입니다.
베드로의 맹세는 그 속에 “정말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육신의 약함에 넘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예수님 곁에 있다할지라도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복음26:41)”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시는데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으로는 “주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맹세이지만 졸고 있는 결과는
“나는 그 사람을 모르겠노라”라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한 시간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룟유다가 그 속에 품은 것은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이용할려고 위장된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이
속에 있지도 않고 생각나지 않은 것입니다.
“(눅8:12)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 빼앗는 것이요”
가룟유다 속에 들어가는 것은 마귀였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키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는 회개가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죄를 범하였으나 돌이킬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예수께서 이미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누가복음22:31~32)”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기도 안에 있어
회개의 영으로 돌이키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룟유다는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감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가고 말았습니다.
가룟유다는 영원한 배신자가 되어 예수님을 배신하였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자살하였습니다.
가룟유다의 자살이 얼마나 비참한지 자살할 때 창자가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이 사람이 불의 삯으로 밭을 사고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사도행전1:18)”
배신은 무서운 것입니다.
마지막 때 배도하는 교회가 되지 말고 지금이라도 돌이키어
예수님을 생각하고 오른편에 던지는 채움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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