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는 출근 때 괴로워하는 너를 보고 왔기에
외래를 일찍 끝내고,
아파트에 주차하고 있으니 엄마가 전화를 했더구나.
"여보 토토가 방금 갔어요."
그때가 오후 4시가 조금 넘었지.
내가 집으로 올라갔을 때는 온기가 식지도 않은 5분 뒤.
그런데 눈은 왜 뜨고 있었느냐?
오후 내내 나를 기다렸다고 처가 말한다.
정성스럽게 입과 항문 주위를 닦기고,
털도 다시 빗기고.
마침 우리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내가 너를 안고 너의 집, 네가 십 오년 동안 같이 지냈던
아들과 딸의 방을 들어갔다가 화장실과 식당의 네 자리,
거실의 소파 등을 한바퀴 돌고는
김포 애견 장례식장을 갔다.
애견 장례식장 안에는 개들이 좋아하는 여러 물건 들이 놓인 제단에
향을 피우고 합장으로 너를 보내고.
깨끗하게 닦고 빗겨진 너는 분홍빛 머리핀을 꽂고,
생전의 모습 그대로 꽃수레에 얹혀 실려가,
흰 옥양목 천에 쌓여 애들이 쓴 편지와 함께 화장되었다.
그 곳에 준비된 나무에
“사랑하는 토토야.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라”라고
처가 쓴 쪽지를 매달았다.
화장을 마치고 금속 쟁반에 담겨져 나온 하얀 뼈,
그 중 머리뼈는 돋보이더구나.
갈아 나온 잿빛 도는 한 줌의 뼈 가루,
유골 함에 담아 보자기에 싸서 집으로 오는 길.
누군가 “슬픔은 사랑이 치러야 하는 대가”란 이야기가 절실히 닫는 구나.
너의 전 평생, 우리 애들의 반평생,
그리고 우리부부의 1/4생을 같이 한 너.
너는 진정 우리의 한 식구이었다.
돌아오는 차중에서 나는 우리 식구들에게
“이제 한 시절은 지나갔다.”
“토토와 함께 한 15년은 너희들이 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쳤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 시절이다.“ 라고 말했지.
유골은 네가 평소에 가고 싶어 하고,
뛰어 놀았던 그 곳에 골고루 뿌리고 왔다.
그래 죽기 전 어린이 날 에도,
또 불과 일주일 전에도 그 곳을 갔었지.
늘 그 곳에서 즐겁게 뛰어 놀기를 바라며.
"우리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첫댓글 백선생이 올린 글을 보고 내가 쓴 글을 올립니다.
나는 아직도 유골이 뿌려진 그곳을 종종 들러 회상을 하지요.
토토를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하여 뚝뚝 떨어지는것 같군요. 오호! 애재라!!!
나도 개를 좋아했던 적이 있지만, 유교수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그냥 자유롭게 똥깨로 길렀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