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포 언저리
간밤 겨울비가 살짝 지나간 소한 새벽이었다. 예년에 비해 그리 춥지 않은 편이었다. 엊그제 용원에 들렸더니 해수가 따뜻해 대구가 덜 잡힌다고 했다. 24절기 가운데 소한 무렵이 가장 춥다. “대한이 소한 집에 와서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태양의 복사열에 의해 지표면은 서서히 데워지고 식어가는 법이다. 그러기에 북반구는 밤이 가장 긴 때가 동지지만 소한이 더 춥다.
동장군이 엄습하지 않아 어디 반나절 산책을 다녀오려고 길을 나섰다. 날이 밝아오는 즈음 아파트 뜰에 나서니 차량 지붕엔 빗방울이 맺혀 있었다. 운전자들에겐 눈이 아닌 비라서 아침 출근길에 별다른 지장은 없지 싶었다. 나는 집 앞에서 105번을 타고 도계동 만남의 광장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창원역을 출발해 주남저수지를 둘러 낙동강 강변 신전마을까지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 닿으니 1번 마을버스가 곧바로 왔다. 미니버스엔 창원역을 출발해 오면서 중년 아주머니들이 다수 타고 있었다. 그 아낙들은 대산 들녘 비닐하우스와 노인 요양원으로 일을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하는 처지라 기사 양반과 소소한 일상사까지 농담으로 주고받았다. 방학이라 출퇴근 시간대 학생들이 이용하지 않아 버스가 덜 혼잡해 좋다고 했다.
마을버스는 주남삼거리에서 각을 크게 꺾어 가월마을을 지났다. 왕버들이 숲을 이룬 동판저수지 가장자리엔 오리들이 오글거렸다. 올 겨울은 따뜻해 주남저수지가 꽁꽁 얼지 않아 철새들이 겨울을 나는데 어려움이 덜하지 싶었다. 주남저수지가 얼어붙으면 철새들은 동판저수지로 건너왔다. 산남과 주남과 동판으로 이어지는 세 개 저수지다. 그 가운데 남쪽의 동판저수지가 결빙이 늦었다.
대산 들녘엔 보리가 심겨진 논은 적었다. 일모작 지대엔 볏짚을 비닐로 감아 포장해 두었다. 축산 조사료로 쓰이는 엔실리지였다. 대산면소재지를 지나자 승객은 거의 내리고 수산다리를 앞둔 요양원에서 두 아주머니가 내렸다. 일동초등학교를 지나 종점인 신전마을까지 타고 간 승객은 나뿐이었다. 금방 솟은 아침 해는 구름을 헤집고 살짝 드러났다. 들길을 걸어 대산정수장으로 향했다.
둔치에서 강변여과수를 뽑아 올려 수돗물을 생산하는 대산정수장이었다. 곁으로는 북면에서 한림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뚫리고 있었다. 몇 해 연차 사업으로 공사가 지지부진하더니만 근래 진척이 많이 되었다. 나는 그간 봄날이면 토목공사 구간의 볕바를 토사더미에서 보드라운 쑥을 캤고 늦가을엔 야생 돈부를 따기도 했다. 이제는 내가 채집하던 쑥이나 돈부는 말끔하게 정리되어버렸다.
강둑 자전거길에 서니 건너편은 반월이었다. 창녕함안보를 거쳐 나온 검푸른 강물은 너울너울 흘렀다.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은 곡강에서 암벽에 부딪쳐 수산다리 밑을 지났다. 나는 강물을 거슬러 본포 수변생태공원으로 갔다. 드넓은 생태공원엔 인적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복원된 본포나루엔 내수면 어업용 거룻배가 몇 척 묶여 있었다. 강심에는 거룻배를 탄 어부가 어망을 건져 올렸다.
예전 본포나루는 강 건너 창녕 학포와 밀양 반월로 건너는 꽤 큰 강나루였지 싶다. 근래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다보니 뱃길 기능은 상실되었다. 내수면 어업 허가를 받은 어부만이 물고기를 잡아 민물횟집으로 보내는 정도다. 본포 암벽으로는 양수장이 있었다. 농업용수와 산업용수로 쓰이는 물일 것이다. 양수장을 둘러 보도 생태교가 놓여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본포에서 보도 생태교를 따라 걸어 북면 신천으로 건너갔다. 강바람이 불긴 해도 그렇게 추운 줄을 몰랐다. 4대강 사업으로 광활한 둔치는 수변생태공원으로 바뀌었다. 토종 찔레나무 곁에 메타스퀘어를 심어 해시계를 만들어 두기도 했다. 앙상한 나뭇가지 그림자가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장자리 수양버들은 수액이 올라 연두색으로 물드는 듯했다. 햇살이 포근하게 퍼진 한낮이었다. 15.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