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십시오. 그러려면 기도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10/29/일
마태오 복음 22장 34-40절
34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첫째와 둘째
주님께서 첫째가는 계명과 둘째가는 계명을 구분하신 것은 첫째가는 계명이 더 크고 중요하며 따라서 먼저 실천해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실천해야 하는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둘째 계명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기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마음을 닫고, 심지어는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에게도 잠시 마음을 거두고 하느님만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 마음을 모으는 시간이 기도 시간입니다. 하느님을 많이 사랑하려면 하느님만을 생각하는 기도 시간이 늘어야 하고, 하느님을 더 깊이 사랑하려면 기도 중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께 집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흔히 사랑의 실천에 대해 생각할 때 사람에 대한 사랑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먼저 사랑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첫째 계명을 먼저 실천하지 않으면 사람에 대한 사랑이 나오지 않습니다. 나오는 듯하다가도 그 사람이 마음에 거슬리면 더 이상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은 마음에 드는 사람,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만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나 하는 사랑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기도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동진 신부(의정부교구 송내동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