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12월 이맘때면...
영국과 미국 사전출판사들이 발표하는 ‘올해의 단어’와 각 나라 매체가 보도하는 ‘올해의 유행어’가 잇따른다.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사회 현상, 대중의 관심 등을 알 수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발간하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는 ‘뇌 썩음’(brain rot)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에 정신적, 지적 상태를 퇴보시키는 사소한 정보들이 넘쳐나는 세태가 반영된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출판사 메리엄웹스터 올해의 단어는 ‘양극화’(Polarization)다. 한 사회나 집단의 의견이나 신념, 이해관계가 연속해 걸치지 않고 양극단에만 집중된 상태란 뜻이다. 올해 미국은 대선을 거치면서 이런 현상이 심화했다.
○ 대한민국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4자 성어는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뜻의 ‘도량발호(跳梁跋扈)’를 선정했다. 단일 사자성어가 아닌 ‘도량(거리낌 없이 함부로 날뛰어 다님)’과 ‘발호’를 합친 것이다.
'발호'는 물고기가 대나무로 엮은 통발을 뛰어넘는다는 의미다. 도약력이 큰 물고기만 통발을 넘을 수 있다. 그래서 대단치도 않은 힘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 중국
잡지 야오원자오쯔(咬文嚼字)가 올해 가장 널리 쓰인 ‘10대 유행어’를 선정해 2일 발표했다. 취업난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중국 젊은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할 때 주로 빗대어 쓰는 표현이 여럿 포함됐다.
'반웨이'는 출근이란 뜻의 단어 ‘상반(上班)’의 두 번째 글자와 맛 또는 냄새를 의미하는 ‘웨이(味)’가 합쳐진 신조어로 평소 멀쩡하던 직장인들이 출근만 하면 피곤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바뀌는 모습을 일컫는다. 중국 젊은이들은 “반웨이가 지워지지 않는다”, “반웨이를 씻어내야 한다” 식으로 표현한다.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경기 침체로 낮은 임금과 높은 업무 강도에 힘들어하는 중국 청년층의 인식이 반영된 신조어란 평가가 많다. 중국에선 올해 초 직장 생활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잠옷과 트레이닝복 등 이른바 ‘역겨운’ 출근 복장이 유행하기도 했다. 중국 매체 항저우(杭州)일보는 “회사 업무로 쌓인 피로를 뜻하면서도, 일과 삶의 균형을 바라는 욕구가 담긴 표현”이라고 전했다.
‘쑹츠간(松弛感)’은 반대로 당황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 이완 상태를 뜻한다. 올해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중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치열한 경쟁에도 평정심과 여유를 보여준 게 '쑹츠간'의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팍팍한 일상에 치이는 일반인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자 결코 닿을 수 없는 감정이란 자조 섞인 반응도 적지 않다.
올해 또 다른 유행어로 꼽힌 ‘수이링링더(水靈靈地 싱싱하게)’도 비슷한 맥락으로 사용된다. 한국 걸그룹 르세라핌의 멤버인 홍은채가 한 인터뷰에서 “똘망똘망하게”라 말한 것이 이렇게 번역되며 화제가 됐다. 처음엔 주로 ‘생기 있고 활기차다’라는 뜻으로 많이 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싱싱하게 해고됐다’와 같이 비꼬거나 비관하는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이번에 발표된 10대 유행어엔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는 분야의 단어들도 여럿 포함됐다. 고품질의 생산력과 직결되는 ‘수즈화(數智化 디지털 인텔리전스)’, 인공지능(AI) 거버넌스와 관련된 ‘즈넝샹산(智能向善 선의를 가진 인공지능)’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밖에 실버 산업의 발전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인파리량(銀髮力量 은발의 힘)’, 과학 스포츠 분야에서 성인을 능가하는 재능을 가진 어린이를 가리키는 ‘샤오하이거(小孩哥 어른스러운 동생)’도 유행어로 꼽혔다.
○ 일본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2024년을 상징하는 한자로 ‘金’(금)을 선정했다. 협회는 올해 파리 올림픽 패럴림픽에서 일본 선수단이 따낸 금메달과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사상 처음으로 ‘50홈런 50도루’의 금자탑을 쌓은 오타니 쇼헤이의 활약과 과거 금을 채굴했던 사도(佐渡)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실도 이유로 들었다.
아울러 집권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과 소셜미디어로 모집한 지원자에게 금품을 주고 범죄를 청부하는 ‘야미바이토’(어둠의 아르바이트) 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