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원점에 서서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 은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 세태의 욕망과 방황을 애잔하게 묘사한 걸작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진한 안개가 특징인 무진으로의 짪은 귀향은 1967년 '안개' 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는데, 영화의 전면을 흐르는 주제가는 5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우리들 가슴에 여운이 남아있는 명곡으로서, 특히 지난 해 개봉된 영화 '헤어질 결심'의 엔딩곡으로 리바이벌되어 공전의 히트를 친 바 있다.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시간을 되찾고 싶었다. 평소 살아오면서 놓친 부분을 돌아보고 반추해보는 버둥거림의 일환으로 중앙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속을 걷듯, 동해의 바닷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나와 세상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2. 장면 1
걷고 또 걷었다. 모자와 스틱, 그리고 무릎보호대 등 나름 준비했는데, 도보여행은 초보라 나아가는 속도는 한시간에 4km 정도로 느린 편이다. 해와 푸른 바다를 벗삼아 함께 걷는다는 해파랑길이 끊기는 지역은 군데군데 국도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오가는 자동차가 꽤나 신경쓰인다.
걷는 데 집중하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이런저런 잡념이 들 때가 더 많다. 이렇게 걷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혹시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않을까?'
영화 빠삐용의 죄목이 뭐였더라. 잠결에 나타난 심판관이 '당신의 죄는 인생을 낭비한 점' 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인 망양정(望洋亭)에 올랐다. 원래의 위치는 여기서 더 내려간 휴게소 자리이며, 이 곳은 지자체에서 새로 조성한 정자라고 한다. 탁 트인 짙푸른 바다의 단순함이 너무 아름답다. 그래, 거리낌없이 시원한 느낌이랄까?
옆에서 누가 소원을 빌어보라 유혹하지만, 아! 어쩌지? 소원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가 좋다.
3. 장면 2
해송이 우거진 솔밭으로 들어갔다. 솔 향기가 사방에 진동한다. 동해 맨 끄트머리에 있는 월송정 (月松亭)입구에서 '소를 타는 즐거움' 이라는 글이 적힌 푯말을 본다.
고려말 조선초 문신이자 학자였던 권근(權近 1352~1409 호는 陽村)의 기우설(騎牛說) 인데, 공감이 가서 옮겨 본다.
"나는 일찍이 산수를 유람하면서 오직 마음에 얽매임이 없어야 그 참된 낙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내 친구 기우자 이행(騎牛子 李行)은 평해에 집을 두고 살았다. 매양 달밤이면 술을 가지고 소를 타며 산수 간에서 놀았다. 평해는 명승지로 이름난 곳인데, 그 유람의 즐거움을 이공(李公)은 옛사람도 알지 못한 묘미까지 터득하고 있다.
무릇 주의를 기울여 만물을 볼 때, 바쁘게 서두르면 소홀함이 있고 찬찬히 살피면 그 오묘한 것까지 다 얻을 수 있다. 말은 빠르고 소는 더딘 것이다. 소를 타는 것은 곧 더디고자 함이다."
(이하 생략)
이 글의 주인공 이행(李行 1352~1432, 호는 騎牛子 또는 白巖)은 고려말에 지신사와 이조판서, 조선초엔 전라감사, 대제학, 형조판서 등을 지낸 문신으로 학문과 문장에 뛰어났다. 고려말 정신적 스승이었던 이색(李穡 1328 ~ 1396, 호는 牧隱)이 정치적 위기에 빠졌을 때 의리를 지켰고 정몽주(鄭夢周 1337 ~ 1392, 호는 圃隱) 를 살해한 조영규를 탄핵하였으며, 고려가 망하자 황해도 강음 예천동에 은둔하여 두문동 72현으로 불리었다.
조선초에는 정도전 등이 편찬한 고려사에 '태조가 우왕과 창왕을 죽였다' 는 사초를 여러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넣은 죄로 가산을 몰수당하고 울진으로 유배된 적이 있는 강직함을 보여 주기도 했다.
울진 평해는 이행의 외가로서 이곳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이후 기회있을 때마다 내려와 소를 타고 월송정을 노닐었다. 월송정 중앙 상단 현판에는 이행의 시가 당시 순찰사로 내왕했던 김종서(金宗瑞 1383 ~ 1453, 호는 節齋)의 백암거사찬(白巖居士贊)과 함께 적혀 있다.
동해의 밝은 달이 소나무에 걸려 있네
(滄溟白月半浮松)
소를 타고 돌아오니 흥이 더욱 깊구나
(叩角歸來興轉濃)
시 읊다가 취하여 정자에 누웠더니
(吟罷亭中仍醉倒)
선계의 신선들이 꿈속에서 반기네
(丹丘仙侶夢相逢).”
4. 장면 3
이번 여정의 말미에 울진군 매화면에서 서도(書道)를 닦고 있는 나의 오랜 지기를 찾았다. 그는 수년전,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이 곳으로 이주하여 만년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그의 환한 모습을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작업실로 쓰는 고향의 옛 집은 온통 먹 내린 한지 투성이였다.
일찍이 서예에 투신하여 젊은 시절 국전에 입선하고 수십 차례의 개인전을 열면서 한때 예술의 전당에도 봉직했던 그가 만년에 이 곳 고향으로 내려와 작품과 씨름하고 있는 것을 보니 새삼 그의 예술 인생을 회상하게 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비록 서예에는 문외한이지만, 대학 시절 이후 수십년간 곁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감히 평가하자면, 그의 작품 과정은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수년동안 한 일(一)자만 그어 보기도 했고, 글자를 해체하기도 뭉쳐보기도 했다. 이른바 파서(破書), 적서(積書)를 거쳐 붓이 지면에 닿지 않는 공서(空書)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추상서예(抽象書藝)의 장르를 무소의 뿔처럼 꿋꿋히 가고 있다. 나는 그를 보면 항상 후기 인상주의 화풍을 개척했던 빈센트 반 고흐가 연상된다. 언젠가 꼭 그같은 경지에 올라서리라.
느리지만, 오묘한 것까지 볼 수 있도록~
5. 느린 삶을 위하여
돌아오는 버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과연 나는 무엇을 찾아 다녔는가?
행복지수가 높다는 티벳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이루어질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고, 이루어지지 않을 일은 걱정을 해도 소용이 없다" 라고~
결국 과도한 탐욕도 문제지만 경직된 이분법의 환상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그런가 하면, 그동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바쁘게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제 나도 소를 타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다. 여유를 가지고 세상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싶다. 뭐, 집착할 무엇이 크게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가만히 눈을 감고, 끝없이 펼쳐진 평화로운 초원을 그리며 몽고의 전통 음률 'Hodoo' 를 음미해 본다.
"부드러운 안개가 피어 오르는
꽃향기가 사방에 가득하네
어린 양이 초원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내 아름다운 고비 벌판
아이~ 하이~
잠에서 깨어난 길잃은 어린 양을
어머니가 데려오네"
"어린 영혼은 한없이 자유로워
꿈같은 초원에서 아무 걱정없이 노래하네
흥겨운 잔치로 화기애애한
햇살이 두루 비추는 항가이여
아이~ 하이~
잠에서 깨어난 길잃은 어린 양을
어머니가 데려오네"
https://youtu.be/v7fnMHasH0E?si=NKWNsdmAd264swdz
(지난 2월 전국도보여행을 시작할 때의 글입니다)
첫댓글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