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아이가...뛰노는지라 - 임선 6개월에 복중의 아이가 뛰노는 것은 흔히 있는자연적 현상이다. 자연적인 것 같은 현상을 특수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까닭은 이 순간의 태동이 다른 때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누가는 이것을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로 기록하였음에 분명하다.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요한이 복중에서부터 그리스도의 방문을 기뻐 뛰놀며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
아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브레포스'는 이 구절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에 해당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8:15에서는 예수로부터 영적 축복을 받는 '어린아이들'에 대해서도 이 단어가 사용된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 아이에게 역사하신 성령의 감동이 그의 모친 엘리사벳에게도 역사해 그녀의 마음에 놀라움과 감사, 사랑을 가득 채워주었다. 엘리사벳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는 예언을 통해 나타났으며, 이러한 예언의 영은 구약에서도 종종 나타난 바이다. 엘리사벳을 방문한 마리아, 그 인사를 들은 엘리사벳, 복중의 태아, 모두가 성령 안에 있었다
[눅 1: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네 문안하는 소리가...뛰놀았도다 - 이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 서두에는 '이유'를 설명하는 헬라어 '가르'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앞 구절의 이유를 설명한다. 메시아에 대한 계시가 엘리사벱 자신에게 임했다.
그리고 그 계시를 통해 마리아에 관한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한 복중의 태아도 기쁨으로 뛰어놀았다. 한편 자신에게 있었던 그 비밀한 일을 엘리사벱이 알고 반응하며 동시에 이를 통해 자신이 낳을 아이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또 엘리사벱의 복중의 아이도 기뻐하며 자신의 아이에게 경배하자 마리아는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