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골여관에
80년 째 걸린 사진 한 장 》
일본 가고시마(鹿兒島)의
지란(知覽)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여관이 하나 있는데,
이 여관의 현관에는
가미카제 특공대
(神風特攻隊)와
반딧불이에 관한
액자와 문구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여관은
오래전, 어느 한국사람과
깊은 인연이 있는 집이었다.
안 주인
도리하마 하쓰요 씨는
다음과 같은 애절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곳 지란 마을에는
태평양 전쟁 당시,
가미카제 자살공격으로
악명 높은 특공대
기지(基地)가 있었다.
그 당시
그의 어머니가 이 집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
특공대원들이
외출을 나오면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그 중에는
탁경현이라는 한국 청년도
자주 드나들었다.
아들이 없던
그의 어머니는
아무도 면회를 오는
사람이 없었던 그와는
모자(母子)처럼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그는 가미카제 특공대
비행출격 전날,
작별 인사를
할 겸 찾아왔다.
그는 저녁을 먹으며
"오늘이 마지막이니
내 고향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눈물을 애써
감추려는 듯
모자를 앞으로 당겨
얼굴을 가린 채
그는
'아리랑'을 불렀다.
한(恨) 서린 목소리
그대로 였다.
그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된
모녀(母女)가
그를 위로 하자,
"만일 제가 죽어
영혼이 있다면
내일 밤에
다시 찾아 오겠습니다.
반딧불이 되어...."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했다.
이튿날
그는 출격(出擊)했고
태평양에
몸을 던진 그 날밤,
그가 앉아 있던 방에는
거짓말 처럼 반딧불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전설 같은 이 이야기는
이후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여러 해 전에 일본에서
호타루(반딧불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 까지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녀의 어머니는
식당 일을 계속하며,
그 젊은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벽에 걸어 놓고
혹시라도 그가 살아
돌아오지 않을까,
한국의 유족들이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다렸다고 한다.
이제는
어머니도 돌아 가시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그날의 일은
잊혀져가고 있는데,
사진만 저렇게
덩그러니
걸려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유족을 만나든지,
그의 고국으로 사진이라도
전해주고 싶으다며 .....
지금은 식당을
여관으로 개조하여
자신과 딸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하쓰요 씨는
우리의 식사 시중을 들어주며
가슴아린 얘기들을
끊임없이 채워주었다.
복도에 걸려있는
여러 사진들 사이에
빛바랜 낡은
그 사진 한 장이
애처로이 걸려 있었다.
그의 생애에
마지막이 되었을 그 사진이
이국(異國)땅
시골 한 구석,
가족은 고사하고
같은 피의
한국 사람들 조차
발길도 하지 않는
조그맣고 오래된
여관 벽에 70여년이나
걸려 있어야 하다니 ....,
꽃다운 청춘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남의 나라 전쟁에
희생이 된것도 서러운데
가슴이 미어졌다.
역사의 구렁텅이에서
'가미카제'라는
일제의 총알받이로
나갔던 그를
누구는 친일파라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울음을 삼키며
마지막 부른 노래는
아리랑이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노래였을까.
남의 나라 전쟁에
끌려가 꽃다운 청춘을 묻고,
그 영혼 조차 긴 세월을
이국의 구천(九泉)에서
떠돌아야 했으니
암울했던 그 시대에
어찌 억울한 영혼이
그 하나 뿐이랴!
울음을 삼키려
고개 숙이고 부른
그의 아리랑이
오늘도 나의 가슴을 울린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 終 -
<옮겨 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