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계엄군이 몰려올지 모르는 상황에 전남도청을 지켰던 1980년 5월 27일 새벽에 시민군들의 마음이 그랬을까? 마지막 항쟁지 사수의 간절함과 절박함이 '풍찬노숙(風餐露宿)'의 고단함 불편함까지 감수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걸까 보고 있자 니 그 애잔함과 비장함에 또 뜨거운 것이 왈칵 쏟아져 내린다.
306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1월 9일)
최근에 만난 사람들은 다들 혼동 속에서 아파하고 있다. 그래 오늘 아침은, 인문 운동가로서, '내란 사건'의 가르마를 타고 싶다. 묻는다. 당신이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는지 늘 궁금하였다. 역대 대통령에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었는데, 당신에게 선 그게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는 일’ 자체, 혹은 ‘아내 보호’가 아닐까 어렴풋이 추측해보곤 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 선명 해졌다. 당신은 왕을 꿈꿨다. 롤모델은 박정희나 전두환 이었으리라 짐작했다. 근거는 유신헌법과 제5공화국 헌법이었을 거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공소장을 보면, 지난해 3~4월부터 비상계엄 선포 직전까지 당신이 ‘비상조치권’ ‘비상 대권’을 수차례 언급한 걸로 나온다. 비상조치권이나 비상대권은 1987년 6·10 항쟁 이후 개정된 현행 헌법엔 등장하지 않는다. 내란의 밤, 당신은 잔인하고 무자비했다. 그래 오늘 아침은, 인문 운동가로서, '내란 사건'의 가르마를 타고 싶다.
1.
체포 영장 집행에 불응한 당신에게 남들은 다 지키는 법 질서를 헌신짝처럼 여기고 있다. 당신은 자리를 지키려는 탐욕에 눈이 멀어 양심도, 체면도, 상식도, 애국심도 모두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게다가 지지층을 결집 시키려는 검은 속셈으로 국민을 이간 시켜 망국의 길로 이끄는 당신을 보며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이런 녹취가 나오지 않았는가?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의원)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고 해” “총을 쏴서라도 들어가서 끌어내라”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들어가 다 끄집어내”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등을) 싹 다 잡아들여”. “두 번, 세 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
2.
당신은 늘 입버릇처럼 '법 질서'를 부르짖던 사람 아니었느냐? 자기 정적에게는 먼지 하나라도 털어내 추상같은 법의 철퇴를 내려치던 사람 아니었느냐" 묻는다. 그러니까 마치 법의 화신인 양 우쭐대던 사람인데 법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것 같으니 이젠 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식으로 무시해 버린다. 미치광이, 술 주정뱅이인 당신은 적법하게 발부된 체포영장을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일부 국회의원들도 동조한다, 기막힌 노릇이다. 일개 시정잡배가 그런 태도를 보이더라도 기가 막힐 지경인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런 안하무인으로 나오니 마치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법을 공부했길래 검사 생활을 오래 했다는 사람이 그런 무식한 발언을 감히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3.
당신이 무죄라고 생각하면 수사 기관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서 떳떳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 되는 일이 아닌가?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한 사람의 만행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이제 무법 천지의 시대로 들어가려는 것 같다. 법원이 정식으로 발부한 영장까지도 불법이라고 우기는데, 이제 무엇이 법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겠는가?
4.
당신의 체포영장 집행 불응으로 한국의 국격이 '바나나 공화국' 수준으로 전락했다. 바나나 공화국은 미국 소설가 오 헨리가 중남미 국가 온두라스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쓴 단편 '양배추와 양들'에서 나온 표현이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쉽게 썩는 바나나의 성질에 빗대 단일한 농산물 수출 등에만 의존하며 정치와 사회적 불안이 일상화한 나라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5.
당신과 수하들이 무능하고 허술했던 건 불행 중 다행이다. 그렇다고 당신의 죄과가 가벼워지진 않는다. 말은 바로 하자. 계엄을 선포하려 했으나 발각돼 실행하지 못한 것(미수·未遂)이 아니라, 계엄을 선포해 실행에 옮겼으나 실패한 것(기수·旣遂)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라고 명령한 것으로도 모자라, 국가 사법 체계까지 정면으로 모독하는 이가 대통령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 주권자에게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주권자를 존중해야 한다.
6.
당신은 스스로를 가두고 말았다. 이제 관저에서 나오면 구치소에 가야 하고, 안 나오면 한남동에 유폐되는 처지이다. 분명하게 자신의 처지를 알아야 한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출석해 직접 변론하겠다고요? 관저 밖으로 나가는 순간 긴급 체포돼 구치소부터 들러야 한다. 공권력이 방어권을 고려해 자비를 베푼다 해도, 심판 정에서 나오는 즉시 체포될 게 분명하다. 관저에서 헌재까지 무사히 왕복할 길은 없다. 한 번 나오면, 당신은 있었던 자리로 되돌아 오지 못한다. 시간 문제이다. 당분간 ‘법꾸라지’들의 법기술과 ‘사병’ 경호처장의 충성심에 기댈 수 있다. 그러나 주권자도 가만있지 않을 거다. 법 기술엔 법 기술로, 힘에는 힘으로 맞설 거다. 명약관화 아닌가? 안 봐도 비디오이다. 시간 문제일 뿐이다.
7.
국가는 “영토 내에서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막스 베버)이다. 당신의 ‘내란 어록’대로 압도적 인원을 동원해 “4명이 1명씩 들쳐업고 나오면” 된다. 또다시 망설이는 공권력이 있다면, 공수처든 국가수사본부든 문을 닫아야 할 거다. 그리고 시민이 있다. 폭설이 쏟아지는 거리에서 얇은 은박 담요 한 장 덮고 밤을 지새우는 청년여성이 있다. 광장의 시민은 당신 덕분에 전투력이 급상승 중이다. ‘윤이라는 악몽’을 물리치기 위해 담대하고 용감하게, 치열하고 끈질기게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싸우는 중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헌법은 힘이 세고, 국민은 더 힘이 셉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내란 책동은 따박따박 분쇄되고 있다. 비상계엄은 해제됐고, 탄핵 소추안은 가결됐으며, 헌법재판관 2인도 임명됐다. 8인 체제를 갖춘 헌재는 탄핵 심판의 쟁점을 압축하고, 5차례 변론기일을 확정했다. 당신은 이길 수 없다. 이미 지고 있다.
8.
반대로 우리는 희망을 본다. “국민들 키세스 됐다! 내란 수괴는 국민 그만 고생시키고 빨리 나와라!” 지난 5일 오전 ‘엑스(X·옛 트위터)’에는 은박 담요를 뒤집어쓴 채 윤석열 대통령 관저 앞 차선(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일부 구간) 바닥에 앉아 농성을 이어가는 시민들의 사진이 여럿 게재됐다. 이들은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측이 주최한 집회에 참여해 내란죄 피의자 윤 대통령을 신속하게 체포하고 구속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이른 새벽부터 눈발이 날렸지만 시민들은 은박 담요로 몸을 꽁꽁 싸맨 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이 모습은 마치 은박지로 포장된 초콜릿 브랜드 ‘키세스’를 연상케 했다. 누리꾼들은 “키세스 동지” “한남동 키세스 시위대” “웅장하고 아름다운 키세스들” 등등의 문구를 게재하며 서로를 응원했다. 다음이 그 사진이다.
9.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의 통쾌한 글을 공유한다. "추악(醜惡)의 뜻을 모르겠으면, 윤석열을 보면 됩니다. 간교(奸巧)의 뜻을 모르겠으면, 한덕수와 최상목을 보면 됩니다. 비루(鄙陋)의 뜻을 모르겠으면, 국무위원들을 보면 됩니다. 고시에 합격해서 최고위층에까지 오른 자들이 체득한 덕목이란 게, 고작 추악과 간교와 비루입니다. 조선 정조 대 김종수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건 선비들이 지조와 절개를 숭상했기 때문’이라고 했고, 정조는 "그 말이 진실로 옳다"고 화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에선 ‘지조와 절개’를 갖춘 공직자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공직자가 추악하면 나라가 추악해지고, 공직자가 간교하면 나라를 믿을 수 없게 되며, 공직자가 비루하면 나라 꼴이 처참해집니다. 이런 자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한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햇볕 드는 곳을 찾아 기민하게 움직이는 건 ‘짚신벌레’가 사람보다 더 잘합니다. 최고의 엘리트 집단을 '벌레' 같은 자들로 채워 놓은 나라에선, 교육은 '사람' 만드는 일이 아니라 '벌레' 만드는 일이 됩니다. 추악하고 간교하고 비루하게 살아야 성공하는 세상, 벌레처럼 살아야 출세하는 시대를 끝내야, ‘사람의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벌레’ 같은 자들에게 ‘벌레 같은 놈’이라고 욕하는 것도, 자기의 ‘인간성’을 지키는 한 방법입니다." 그래 오늘 <인문 일지>는 소리 없이 인간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추행(醜行), 추태(醜態) 등에 쓰이는 ‘추(醜)’는 더럽다, 못났다, 지저분하다는 뜻으로 술을 뜻하는 유(酉)와 잡귀를 뜻하는 귀(鬼)를 합친 글자입니다. 그러니 ‘술 취한 귀신’이나 ‘잡귀 들린 주정뱅이’, 또는 ‘주정뱅이와 동거하는 잡귀’를 의미한다고 보아도 됩니다. 추(醜)한 자들이 나라를 추행(醜行)하고 체포영장을 거부하는 추태(醜態)를 보이는데도, 저들을 비호, 추종하는 자가 많습니다. 참 더럽고 못나고 지저분한 자들입니다. 술 취한 것과 잡귀 들린 것들이 부끄러움을 알 리 없습니다. 불공평하지만, 나라 꼴이 추(醜)해진 데 따른 부끄러움은 '사람'의 몫입니다.
10.
오늘 공유하는 시를 읽어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들보다 더 끈질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이는 것만 보지 말자. 사자성어 낭중지추(囊中之錐)를 소환한다. '날카로운 송곳은 주머니 속에 있어도 날카롭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주머니에 넣어 둔 송곳은 언젠가 뚫고 나온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김승희 시인의 <솟구쳐 오르기>를 오늘 아침 공유한다. 상처로부터 솟구쳐 오르게 하는 '용수철'이 없다면 우리는 상처로 짓 뭉그러져 있을 것이다. 우리 몸에 내장된 '상처의 용수철'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삶은 상처의 화농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튕겨 오르는 힘, 솟구쳐 오르는 힘을 내자.
솟구쳐 오르기 2/김승희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파란 싹이 검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나
무섭도록 붉은 황토밭 속에서 파아란 보리가
씩씩하게 솟아올라 봄바람에 출렁출렁 흔들리는 것이나
힘없는 개구리가 바위 밑에서
자그만 폭약처럼 튀어나가는 것이나
빨간 넝쿨장미가 아파아파 가시를 딛고
불타는 듯이 담벼락을 기어 올라가는 것이나
민들레가 엉엉 울며 시멘트 조각을 밀어내는
것이나
검은 나뭇가지 어느새 봄이 와
그렁그렁 눈물 같은 녹색의 바다를 일으키는 것이나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삶은 무게에 짓뭉그러진 나비알
상처의 용수철이 없다면
존재는
무서운 사과 한 알의 원죄의 감금일 뿐
죄와 벌의 화농일 뿐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인문운동가 박한표 이야기인문운동가입니다.pakhanpyo.blogspot.com
우리마을대학 매거진: Ars Vitae(삶의 예술)오이관복 합니다. 매일 매일 삶을 예술로 펼쳐보이면서, 우리들의 삶을 풍성하게 한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문운동가의 인문산책 인문운동가의 시대정신 토요일에 만나는 와인 이야기pakhanpyo.tistory.com
목계의 삶 : 네이버 블로그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박사를 받고 국내에 들어와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문화원장을 하다가 와인을 공부하였습니다. 경희대 관광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며, 또한 와인 및 글로벌 매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전국 여러 기관에서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인문운동가를 꿈꿉니다. 그리고 NGO단체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다 그만두고, 지금은 인문운동에 매진한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마을 활동가로 변신중이다.blo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