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전대통령의 취임식은 내년 1월 20일이다. 70일쯤 남았다. 트럼프 집권 2기의 정책을 놓고 온갖 전망이나 억측이 쏟아지는 시기다. 소셜 미디어(SNS, 과거에는 X, 현재는 트루스소셜)를 즐기는 트럼프 당선자의 취향도 끊임없이 거기에 불씨를 집어넣을 수도 있다. 그의 아들 트럼프 주니어도 10일 가세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트럼프 주니어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달러가 쏟아지는 흑백 '밈'을 올리고 "혜택을 잃기까지 38일이 남았디"고 썼다. 38일이란 오는 12월 17일로 예정된 선거인단의 선거날까지 남은 기간이다. 비록 형식적이지만, 선거인의 표결을 거쳐 트럼프는 차기 대통령으로 공식 선출된다. 그리고 내년 1월 20일 취임식을 갖는다.
트럼프 주니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젤렌스키 대통령 '밈'/캡처
이 기간에 가장 관심이 쏠리는 대목은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 방안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 기간 내내 '24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큰소리쳤고, 당선 확정 직후 연설에서도 '전쟁을 시작하지 않고, 전쟁(우크라이나 전쟁과 팔레스타인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확인했다. 푸틴 대통령도 7일 국제 러시아 전문가 모임인 발다이 클럽의 연례 포럼에서 트럼프의 전쟁 종식 장담을 높이 평가했다.
추악하고 끔찍한 전쟁을 끝내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터인데, 트럼프 진영에서 빠른 전쟁 종식 발언이 계속 나오는 것은 그만큼 희망적인 신호이기도 하다.
◇머스크발 우크라 협상 압박 경보
그 선두에는 트럼프 당선의 1등 공신으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 태슬라 CEO가 있다. 그는 8일 SNS의 엑스(X)에 '영국과 유럽군이 800마일(약 1만2,900㎞)에 이르는 현 전선을 따라 비무장지대를 만드는 게 트럼프의 평화안 중 하나'라고 쓴 주간지 뉴스위크의 보도를 공유하면서 "무분별한 살인은 곧 끝날 것", "이제 전쟁광과 폭리를 추구하는 인간들의 시간이 다 끝나간다"고 댓글을 달았다.
어 9일에도 그는 '워싱턴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이야기는 부정한 우크라이나의 검은 돈이 (그동안 얼마나) 영향력을 사려고 했는지에 관한 것. (바이든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전쟁광들에게 돈이 지불됐다"고 쓴 미국의 억만장자 데이비드 삭스의 엑스(X) 게시물에 "예스"라고 동의를 표시했다.
우크라이나 매체가 머스크 CEO의 SNS 댓글까지 주목하는 것은, 트럼프 새 정부에서 발휘될 그의 영향력 때문이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자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 전화 통화시, 자리를 함께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도 머스크 CEO를 새로 설치될 '정부 효율성 위원회'(DOGE·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의 수장에 앉히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머스크 CEO의 댓글은 시간적으로 젤렌스키 대통령, 트럼프 당선자와의 '3자 통화' 이후에 나왔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 등 언론에 따르면 전화통화는 약 25분간 지속됐는데, 트럼프 당선자가 수화기를 머스크 CEO에게 넘겨줬다고 한다. 해석은 두가지다. 머스크 CEO에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또는 젤렌스키 대통령과는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중에 '우크라이나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지만, 악시오스는 그보다는 '(트럼프 당선자가) 외교(평화협상)에서 기회를 찾고 싶다'고 한 것으로 썼다. 양측 모두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함구했다. 우크라이나 평화 정착을 위한 트럼프 당선자의 계획이나 키예프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같은 현안은 첫 통화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머스크 CEO는 위성통신망 '스타링크'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데 대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감사 인사를 받고 "계속 제공'을 약속했다고 한다.
지난 9월 워싱턴에서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과 트럼프 대선 후보/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동조자는 계속 나오고..
트럼프 당선자의 수석 고문이자 공화당 전략가인 브라이언 란자도 9일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크림반도는 이제 (러시아로) 날아갔다"며 "트럼프 당선자는 '영토'(반환)보다는 '평화'(전쟁 종식)에 관심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 진영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현실적인 비전'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라며 "'승리(에 대한) 비전'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비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크림반도를 되찾야만 평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스스로가 진지하지 않다는 것을 내보이는 것"이라고 예를 들면서, "크림반도 수복을 위해 싸우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일로 치부될 것이며,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반환은 비현실적이며 미국의 목표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의 주장에 드미트리 리트빈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더 많은 전쟁, 더 많은 죽음, 더 많은 땅을 원하는 건 푸틴 (대통령)"이라며 "우크라이나는 2022년부터 '평화 방안'을 제안해 왔고, 러시아에게도 '평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려주어야 하며, 그 평화는 또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이같은 항변은 '역부족'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 주변의 흐름이 우선 그렇다.
트럼프는 자신의 전매특허 격인 'SNS 인사 발령'을 통해 집권 1기의 참모들 중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과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를 데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9일 밝혔다. 두 사람은 트럼프 집권 1기를 대표하는 대외정책 전문가다.
◇공화당내 전쟁 지지 세력과 선 긋는 트럼프 당선자
중앙정보국(CIA) 국장, 국무장관 등을 지낸 폼페이오 전 장관은 지난해 트럼프의 대항마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당선자의 눈 밖에 났을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사진출처:위키피디아
그러나 스트라나.ua는 폼페이오와 헤일리가 모두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늘리고, 최전선에서 전쟁을 중단시키는 방안에 반대하는 공화당내 매파(대러 강경파, 전쟁 지지세력, 러-우크라 언론에서는 '정쟁 정당', '전쟁 파벌'로 표현된다/편집자) 노선을 옹호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폼페이오 전 장관은 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을 자주 방문했고, '키예프 스타'의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7월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제한을 풀고, 대러 제재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트럼프를 위한 행동 계획'을 제시하기도 했다.
스트라나.ua는 트럼프 당선자의 빠른 전쟁 종식 장담을 무력화할 저항 세력, 즉 '전쟁 정당'이 미 공화당 내에도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폼페이오 전 장관의 기용 배제는 그 세력이 처음부터 백악관에 자리를 잡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트럼프의 승리 후 폼페이오 전장관을 차기 국방장관의 유력 후보로 올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트럼프의 'SNS 인사 발령'은 그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바이든 미 행정부가 트럼프 당선자의 취임 전까지 우크라이나에 최대한 많은 무기 공급을 모색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야 한다.
영국과 함께 대(對)우크라 군사 지원에 앞장선 폴란드 등 인접국에서 나오는 반응도 마찬가지다.
rbc 등 러시아 언론과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10일 현지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바르샤바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 깊이 관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의 평화유지군이 우크라이나 전선의 비무장지대에 투입될 것이라는 소위 '트럼프 계획'은 아직 추측에 불과하고, 공식적인 제안이 나온 것은 없다"면서도 "트럼프의 계획은 준비 중일 것이고. 휴전 날짜나 국경선, 키예프에 대한 안보 보장책은 곧 알려질 것이지만, 분명히 미국의 개입을 줄이는 결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 방안에 대한 결정은 키예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참여 하에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 직전에 못지 않는 지난한 미-러 협상?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의 계획을 푸틴 (대통령)이 거부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스트라나.ua는 8일 내다봤다. 이 매체는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의 제안을 거부해주기를 (우크라이나 측이) 원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매우 논리적"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또 "푸틴 대통령이 평화협상의 조건으로 4가지 사항을 제시했다"고도 했다.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자포로제(자포리자)주, 헤르손주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철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거부 △크림반도 등 점령지의 러시아 연방 편입 인정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 해제 등이다.
KBS와 인터뷰하는 젤렌스키 대통령/현지 매체 영상 캡처
누가 보더라도 푸틴 대통령이 이 조건을 고집하면, 협상을 결렬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협상 과정에서 지난한 '밀당'이 예상되는데, 전쟁 흐름이 최대 변수다. 거의 모든 전선에서 계속 밀리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이 언제까지 어느 정도 전선을 안정시킬 수 있느냐에 협상 시한이 정해질 터이고, 자칫하면 평화협상이 끝나기도 전에 우크라이나가 항복할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자도 이를 막기 위해 러시아를 강하게 압박할 게 분명하다.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의 개시 직전, 미국과의 최종 안보 협상에서 수석 대표를 맡았던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도 9일 "트럼프 당선자가 제시할 수 있는 해법은 간단하지 않을 것"이라며 낙관적 전망을 경계했다. 결국 러시아가 양보할 선이 협상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푸틴 대통령 간의 대화 분위기는 조금씩 무르익어가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지난 7일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했고, 푸틴 대통령도 '내가 먼저 전화하는 것도 수치스럽지 않다'고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은 바로 그날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워싱턴 포스트(WP)는 트럼프 당선자가 지난 7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확대하지 말 것을 조언(경고?)했다고 10일 보도했다. 그는 유럽에 주둔중인 상당한 미군의 존재를 상기시키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소식통이 전했다. 또 조만간 사태 해결을 위한 후속 대화에도 관심을 표명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후(9일) 세르게이 랴브코프 외무차관이 우크라이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미 공화당(트럼프)의 제안을 러시아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평화협상에 대한 우크라이나측의 입장은 아직 요지부동인 듯하다. 오르반 헝가리 대통령은 9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시간이 우크라이나 편'이라고 믿기 때문에 전쟁을 멈추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키예프 방문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과 나눈 대화 일부를 소개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시간은 당신 편이 아니다. 휴전을 앞당기고 수용 가능한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준비가 되어 있디"고 했더니, "빅토르 (헝가리 대통령 이름),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반박이 돌아왔다며 "그걸로 나의 우크라이나 방문 임무는 끝났다"고 허탈해 했다.
◇시간은 우크라편이 아니다?
시간이 우크라이나편이 아닌 것은 갈수록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전쟁을 지휘하는 우크라이나 총사령관인 알렉산드르 시르스키 총참모장은 9일 크리스토퍼 카볼리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에게 "도네츠크 전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며 "적(러시아군)은 병력의 수적 우위를 이용해 포크로프스크와 쿠라호보 전선을 집중 공략하고 있는데, 북한군이 이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수없이 많다"고 토로했다. 북한군의 참전을 이유로 미군의 추가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전날(8일) 미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사장비를 현지에서 직접 수리할 수 있도록 미국 민간 계약업체의 우크라이나 입국을 허용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한 바 있다. 미국은 그동안 고장난 군사장비를 폴란드 등 인접국가로 빼낸 뒤 수리하도록 했다.
미국의 이같은 조치가 우크라이나군의 방어 능력 향상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러시아군은 (시르스키 총사령관이 인정한 대로) 쿠라호보의 남동쪽을 차단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을 '가마솥'(포위망)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