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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8: 16-19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 곧 행하시려는 일과 그분의 계획을 알게 하십니다. 그분께서 지상에 드러내실 그분의 교회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천상에까지 잇대어져 있는 그분의 교회의 복된 상황을 알게 하십니다. 그 복과 관련하여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을 택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 모두에게 여호와의 도를 주시며 그것을 지켜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시려고 그들을 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하셔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일을 이루시리라고 하십니다.
1, 본문 16절은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입니다.
모세는 다시 그들을 ‘사람들’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에 그는 이들을 공개적으로 ‘천사들’ 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입고 있는 형상에 근거하여 그 이름을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우리 육신과 일치되며 우리 성품과 똑같이 자신에 입히셨듯이 그들도 그런 인간의 몸으로 싸여 있다고는 우리가 추측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일시적인 몸을 입히셨던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보이게 하셨으며 그에게 친근하게 말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처음에 영접할 때처럼 인간성의 임무를 수행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천사들에게 마땅한 경의를 표하려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들이 천사들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길을 가는 그들을 따라가고 있으며 감히 그들을 붙들지는 못하였습니다.
2. 본문 17절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을 감안해 보면 마치 의심스런 일을 인간들을 인하여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그분이 이미 하실 일을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그러나 그분은 그런 방법으로 소돔의 멸망의 원인들을 참작하는 면에서 아브라함에게 보다 더 분명한 취지를 표현하려고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계획을 수행하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그것을 알리시려는 데에 두 가지 이유를 추가하고 계십니다.
첫째는 그분이 아브라함에게 특출한 명예로운 특권을 이미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그것이 자손들을 가르치는 데에 유용하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에서 계시의 범위와 용도는 간략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3. 본문 18절은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될 것이 아니냐” 입니다.
1) 히브리어는 ‘그가 ......될 것이므로’ 등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계사(繫辭)는 원인을 나타내는 원인 접속사로 간주해야 합니다. 그것에 대하여 이미 암시했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소돔 사람들에게 내리실 무서운 보복에 대하여 그분의 종에게 알려주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누구보다도 특이한 은사들로 장식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은 그 신실한 자에게 그분의 은총을 계속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총을 점점 증가시키기까지 하시는 것입니다. 동시에 전에 허락하셨던 것들 위에다 새로운 은총들을 점점 쌓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를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관계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부성애로 우리를 일단 포용해 들이신 그분이 절대로 부인할 수 없다면 그렇게 지속적으로 수없이 많은 혜택들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 어떤 면에서는 그분은 그분 자신과 우리 안에 있는 그분의 은사를 존중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은혜스런 은사들을 제외하면 여기서 그분이 무엇을 기념하고 계시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기서 그분 자신에게 그 동정심을 귀속시키고 계신 것이지 그것을 아브라함의 장점들에 근거시키지 않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오직 하나님의 원천에서 흘러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말씀에서 배우고 또한 우리 경험으로 교훈 받는 것을 상기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을 의미하며 그 심판들의 경향들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교회의 특이한 특권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악한 자들에게 형벌을 가하실 때 하나님 자신이 세상의 심판자이시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입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말씀으로 자녀들에게 조명해 주심으로 그들이 불신자들과 함께 소경이 되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그처럼 공식적으로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지역에 그분의 손을 뻗치실 때도 그분의 말씀은 오직 유대에만 국한시키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들을 살육과 대적으로 소멸시키실 때도 그분의 선택된 백성들에게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으로 그분이 이 형벌들의 주창자이시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형벌들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언해 주셨습니다. 그 사실은 아모스서에서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니라”(암3:7)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친절을 베푸시는 때부터는 절대로 그분은 지치지 않으시며 더욱 더 많은 호의를 추가하심으로 마침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일단 양자로 삼으신 후에는 그리고 또한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 빛을 비추신 후에는 우리의 눈앞에 언제나 활활타는 동일한 말씀의 횃불을 들고 계시면서 믿음으로 우리가 사악한 자들이 거들떠보지 않고 무시해버린 죄들에 대한 심판들과 형벌들을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여 신실한 성도들이 모든 시대의 역사들에 대하여 회고해 보면서 개인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불신자들에게 내리는 여러 가지의 멸망들에 대하여 성경에 근거하여 그들의 판단을 언제나 내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되고 있는 점은 소돔의 멸망이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꼭 아브라함에게 설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는 일에 너무도 둔하므로 이 계시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비록 여호와께서 그분의 분노의 지팡이가 대적자들이라고 크게 선포하고 계시지만 거의 어느 누구도 그 말을 귀담아 들은 자가 없었습니다. 우리 육신의 타락한 상상으로 그 고통을 우리는 다른 원인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건 전에 제시되는 충고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태만하지 않게 하여 우리가 공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운이나 기타 다른 것이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자리잡고 그것이 작용해서 그렇게 된 것으로 상상하지도 못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전 시대에는 다음 사실들이 필연적이었습니다. 즉 만약 백성들이 그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충고를 받았다면 비록 그들이 강퍅한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형벌을 받은 후에 더 많은 감명을 이 예언으로 받았다는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예언들로부터 우리는 일반 법칙을 취해 내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그렇게 하여 우리가 날마다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심판들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종 아브라함에게 소돔성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있으며 모든 쾌락을 만끽하며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그곳이 곧 멸망될 것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여기서는 그곳이 우연히 멸망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대로 형벌을 받아 파멸된 사실을 의심 없이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 사실에서 형벌의 원인이 미리 그렇게 선포될 때 사람들의 마음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찔리게 하며 자극시킨다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후에도 다른 일에 관해서도 동일한 결론에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장차 하실 일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지 않으셨지만 우리가 그분이 하시는 일들에 대하여 직접 목격자가 되기를 원하고 계시며 신중하게 그것들의 원인들을 헤아려 보기를 우리에게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그 일들의 참된 의도를 외곡하는 불신자같이 하나님 일들에 대하여 혼동된 주시로 인하여 현혹되지 말기를 동시에 원하십니다.
4. 본문 19절은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입니다.
1) 19절 앞부분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상담 상대자로 택하신 이유 가운데 두 번째 것은 그것이 헛되지 않고 또한 유익이 있을 것을 그분께서 미리 예측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의 간단한 의미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상담에 응하도록 허락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자기 권속들을 가르치는 면에서 훌륭한 집주인의 임무를 신실하게 잘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소돔의 멸망에 대하여 통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통고를 받은 것은 그 자신 뿐 만 아니고 그 종족의 유익을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은 신중하게 관찰해 볼 문제입니다. 그것은 이 문장이 마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인격 안에서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똑같은 효과를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은 우리가 그 뜻을 앎으로써 멸망하게 하시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후손들에게 그분의 증인이 되며 그들 후손들이 우리를 통하여 직접 손과 손에서 받아들여진 그 지식을 그들의 자손들에게 전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여호와께로부터 배운 것을 그들의 후손들에게 열심히 전달해 주는 것이 부모들의 의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를 인하여 전해지고 그 결과로 아무도 그 진리에 대한 지식을 받아들여 자기 개인의 이용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그들이 각각 부름 받은 소명을 따라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며 각자 신앙 분량에 따라서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현재 평배해 있는 엄청난 무지(無知)는 인간들의 나태에 대한 형벌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너무나도 엄청난 사람들이 주어진 하늘 나라 교리의 빛에 대하여 자기들의 눈을 감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하나님께서 주신 교리를 그들의 자손들에게 전하는 것을 전혀 관심에 두지 않음으로 그 말씀을 질식시키는 자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이 세상의 나태를 인하여 형벌을 내리시려고 말씀의 귀한 보화들을 정당하게 제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로’ 라는 표현이 또한 우리의 주목을 요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으로 우리는 사는 날 동안에 우리 가족들을 적당하게 다스리기 위하여 돌봐야 될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가 죽은 이후에도 계속 살아서 넘치게 하도록 부지런히 그것을 후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죽었을 때에도 그렇게 하여 생의 거룩한 과정이 계속 생존하여 남아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사실에서 우리가 추론해 내는 것은 무서운 공포를 일으키는 데에 기여하고 있는 그 해설이 알려져야 될 필요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육신적인 안전은 예민한 자극을 요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된다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말씀이 단지 나그네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추측하지 못하게 하려고 여호와께서는 특별히 그것을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적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모든 권속들을 위하여 지적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교리는 은혜의 교훈과 잘 일치되고 있으며 그것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복종하게 하고 또 그들이 고통을 당하거나 굶주릴 때 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가게 합니다.
2) 19절 중간에 “여호와의 도를 지켜”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세가 이 말씀을 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은 단지 무관심으로 그들의 악을 행하는 데에만 탐닉되어 있는 자들이 두려워할 줄을 알도록 교훈을 받게 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강제로 압박을 당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갈망하게 하려고 된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 신실한 성도들도 더욱 더 경건을 추구하는 데에 앞으로 매진하게 하려는 데에 하나님의 심판이 제기된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그는 동시에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소돔의 멸망이 증거로써 제시되었으므로 사악한 자들은 그와 같은 똑같은 보복을 두려워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이미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자들은 진정한 순종을 더 잘하게 하려는 두 가지 목적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율법은 이제 곧 회개한 자들만이 아니라 우리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데에도 효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가 ‘의와 공로로 행하게 하며’ 라는 말을 첨가할 때 그는 간략하게 여호와의 도의 성질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적으로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제2의 율법판에 새겨진 의무들에서 ‘제유법’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로 요구하고 계신 것을 간략하게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2의 율법판에서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의 설명을 찾는다고 해서 성경 말씀에서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박애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자기들의 이웃과 정직하고 허물없이 지내는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삶의 증거를 그 생활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와 공로라는 명칭으로 그는 평등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평등성으로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것을 부여받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여기서 구별을 한다면 ‘의(義)’는 우리가 형제들에게 대하여 발휘하는 방정함과 인간성에게 부여되는 명칭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하려고 노력할 때에 그리고 모든 잘못과 기만과 폭행에서 손을 떼며 그것을 멀리할 때에 실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도(公道)’라는 말은 그 위력이 가련한 자들과 압박 당하는 자들에게 뻗쳐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올바른 주장을 변호해 주며 약한 자들을 부당하게 피해를 받지 않게 지켜주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합법적인 행사이며 이 행사에 여호와께서도 그분의 백성들로 참여하도록 명령하고 계십니다.
3) 19절끝은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입니다.
모세는 여기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그의 자녀들에게 교훈하며 그의 권속들을 잘 다루게 된다면 그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은혜를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해서 한 사람의 인격하에서 모든 경건한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이 구사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의무들 가운데 이 부분을 무시하고 있는 자들이 그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내팽개쳐 버리거나 그것을 짓밟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사를 영구적(永久的)으로 소유하는 것이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계속 지속되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우리 자신의 태만으로 인하여 그들의 은사들이 상실되지 않게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사실에서 누구든지 믿는 자들은 그들의 부지런함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들을 이루어 주실 수 있으며 또한 당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고 추론하는 자들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말씀도 원인보다는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해지고 있는 익숙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고 그것을 완성시킨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순종함으로 우리가 주어진 과정을 마치기 때문에 동시에 이 방법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도 얻게 된다는 교훈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