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
정월 열 나흘 대보름 전야죠
올해도 어김없이
천변 둔치에선
보름을 기억하고
보름달에 報恩 望月(보은 망월) 행사를 가졌지요.
작년과 다른점이 있다면
川(천)을 가로 지르는
새냇가 다리가 놓여있지 않았다는 것 빼고는
다섯 마을의 기접 봉과
깃발
다섯팀의 풍물패와
달집과 鳶(연)
밤 하늘에 올린 油燈(유등)
삼사방 마을에서 몰려든 갤러리들
올해도 성대하게 망월을 기원했지요.
천 둔치에서 이들 모두는
나라의 안녕과 발전을 소원하면서
각자 본인들의 소망도 함께 빌었겠지요.
나만 빼구요.
ㅎㅎㅎㅎ
난 말이죠
내가 생각해 봐두요
좀 이상한 인간이지요.
날 위하여
식구들을 위하여
기도한 적은 별루 없었거든요
맘 속으로도요.
열심히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어젯 밤 황당한 願(원)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것은 움베르토 에코의 죽음이었는데요
9 개 국어에 능통하고
기호학과
언어학
미학
심지어 자연과학과 수학까지 통달한 그가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보고
아~ 그분의 천재적인 뇌는
이제 하잘것 없는 물질로 변하여
땅 속에 묻히는 것에
내가 그분에 뇌를 이식 받았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해 보았답니다.
우습죠?
어떤이들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후
인문학 최고의 천재라고 했지만
난 이 부분엔 반대하는 입장이지요.
인문학 발전에 공헌한 부분은 일정부분 인정을하지만
그에 대한 과도한 평가는
고인이된 그분에 대한 禮(예)가 아닐것같아요.
자타가 인정하는
포터블 그레이트 콘사이즈인 그는
슈퍼컴 그 자체였지요.
우리들 정신 세계에
소설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려
비옥한 자양분을 제공한 그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진정 다 빈치 이후
아니 이 지구상에
1000년에 한명 쯤 태어난다는 천재
칼 마르크스를 떠 올리게하네요.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저서
자본론이 몇십년간 금서가되었고
그 책을 읽다 발각이되면
여지없이 체포되어
호된 고초를 겪던 시절이있었죠
지금도 그의 이름 그의 저서는
금단의 열매처럼 아무나 쉬 따 먹을수없죠.
우리는 학교에서
마르크스와 헤겔의 저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든지
자본론 있는데
흑사병처럼 몹쓸 병균에 만연되어있어
읽어서는 않될 책 이렇게만 알았지요
그런데요
우리들은 직 간접적으로
날마다 그의 사상과 이론으로 무장한 경제 이론서
자본론과 접하고 사는데요
경제는 자본과 떨어져서는 안되는
샴 쌍둥이같은 존재지요
경제는 자본없이는 단 1미리도 굴러 갈수없으니까요.
칼 마르크스는 근 현대의 경제사와
현대 사회학의 아버지라 불리운데요.
독일 프로이센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났는데요
그의 아버지는 유태인임을 감추려고
기독교인으로 개종했데요.
그 시절 유럽에 두 천재가 태어났는데요
꿈에 해석으로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드와
칼 마르크스는 동 시대인이었지요.
프로이드는
아주 빈한한
유태인 가정의
後妻(후처)
아들로
태어났고
칼 마르크스는 고급 관료의 아들로 태어나
관료 집단에 일원으로
그의 아버지는
라이프니찌 볼테르 레싱 칸트등을 섭렵한 지식인이었답니다.
어려서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그의 일생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심어준 이가 등장하는데요
베스트팔렌 남작을 필연적으로 만난답니다.
후에 그의 딸 예니는 그의 부인이되었는데요
허물수없는 신분의 벽이 높은 사회에서
남작 딸과의 결혼은
칼 마르크스의 천재성을 일찌기 알아 본 남작은
흔쾌히 사위로 맞이했데요.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문학에 흠뻑 빠져
본 대학을 다니던 칼 마르크스는
베를린 대학으로 옮기는데요
그곳에서 헤겔을 만난답니다
마르크스는
지금까지의 철학은
세계의 모든 학문을 해석했지만
이제 철학은
세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마르크스는 깨닫게되죠.
독일에서 그의 사상과 이론을 접목시키는 과정에서
현실은 그에게 너무나 많은 시련을 안겨주었고
끝내 독일을 떠나게되었죠
프랑스 파리로 옮긴 그에게
평생의 후원자 엥겔스를 만난답니다.
마르크스는
인류는
이 땅에 생산을 위하여 태어났다며
생산활동이 인류 역사 발전의 핵심이라 보았답니다.
다양한 양식의 생산단계
고대사회 노예와 지주의 관계
중세 봉건 시대의 농민과 영주와의 관계
중세 시대엔 농민은
자신의 생산 수단을 갖고
생산과정을 얼마만큼 지배할수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은 자본가 소유이고
노동자는 겉으로 일한 만큼의 댓가를 받는 것으로
자유스러운 모습을 가진듯 싶지만
마르크스는
일하지 않을수 없는 부자유를 지적하죠
노동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고는 생존할수 없고
노동계약은 겉으로는 평등하고 자유스러운 것 같지만
노동자는 생존의 어려움 때문에
마음데로 일을 그만 둘수 없다는 것이죠.
마르크스는 자본이라는 괴물이
농민의 등을 도시로 떠 밀어
도시의 노동자로 만드는 과정에는
토지로부터 강제적 퇴출이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규명했지요
노동자들은 더 이상
농촌으로 돌아갈수 없는 현실이되었지요.
지금의 종북 빨갱이 닮은 사회주의 이론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국으로 돌아 가지 못한 마르크스는
역사를 계급 투쟁으로 보고
사회는 언제나 계급으로 갈라져있는데
지배자와 피 지배자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이 두 계급은 늘 대립과 갈등으로 마주서왔고
부르주아와 프로레타리아 두 계급은
영원히 함께 할수없는 존재
마르크스는
이러한 두 계급의 첨예한 대립은
생산의 분배가 원인이라고 생각했지요
한자루의 낫이 철광석으로 있으면 아무런 가치가없지요
철광석을 캐내 제련을하여 낫을 만들어야
상품의 가치로 변하는 것이죠
가치는 노동에 의하여 생겨나는것이죠
현대사회의 노동자는
노력 일부분 만 급료로 받는것이죠
가격과 급료에서 생겨난 나머지 이익은
자본가가 차지하죠
마르크스는 이것을 잉여가치라 불렀죠
문제는 가치를 만든 노동자가 받는 급료는 적은 반면
자본가의 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에
빈부의 격차가 커진다는 것이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활동에
불완전한 점을 일찌기 지적했지요.
기계가 발전하고
자본이 많아지면
상품은 마구 만들어지고
재고가 쌓이면
자본가는 상품 생산을 줄이고
노동자를 내 쫓는데
이렇게되면 노동자는 갈곳이 없죠
노동자 농민의 불만은 증폭되고....
절대 왕조의 폭정과 맞물려
모든 조건이 충족된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지요
공산주의 이론이 실제로 싹을티워
수 십년 간 구 소련의 정치 이념으로 등장하여
정치 실험을 거쳤으나
철저하게 실패로 돌아갔지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은 그 보다 더 좋은것은 없으나
그 이념을 시행하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을수없다는 것이죠
만약 神이 와 이념을 실험한다면
완벽한 인간의 통치 이념이라하데요.
그는 프랑스 파리를 떠나
영국 런던으로 다시 망명을 해
죽을 때까지 저술 활동에 힘을 쏟고
생을 마감했는데
그가 꿈꾸던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그리며
안락 의자에 앉아 영면했데요
그의 저서 자본론은
읽지 말라는 금서임에도 불구하고
성경 다음으로 읽혀진 책이라고도 하네요
그의 사상과 철학
우리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옳고 그름을 떠나 지대한 영향을 주었지요.
천년의 천재
마르크스
그분의 사상과 예언은
지금 우리나라
부르조아와
프로레타리아들의 갈등을
점쟁이 빤스를 입은것처럼
맞추고 있나요?
칼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과 철학은
그보다
이 천 육 백 년 전에 태어난
공자의 일생을 보는듯 했답니다.
공자는
당신의 정치 철학을 뿌리 내리려다
실패해
노 나라에서 쫓겨나
중국 천하를 주유했지만
그의 급진적 사상에
어떤 왕도 그를 신하로 받아들여
도덕적 인 의 예 지를 갖춘
백성이 우선하는 나라를 만들려는 왕은 없었지요.
공자는 급진적 사고를 가진 개혁주의자였답니다.
결국 수 백년이 흐른 후
漢나라의 정치 이념으로 채택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상과 이념과 철학은
동북아 삼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화두가되었지요.
이 천 년 전에 태어 난 공자
천 년의 시간에 격차를 두고 태어 난
칼 마르크스
진정
이 두 사람
천년의 천재라 할수있지요.
죽음에 이르도록
저술활동에 힘쓴것까지도.......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