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로마 1,1-7
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2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우리는 바로 그분을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7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로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로마의 모든 신자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복음 루카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게으름을 피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일이 많이 밀렸습니다. 라디오 방송 원고도 써야 하고, 강의를 위한 PPT 자료도 만들어야 하고, 또한 강의 때에 쓸 강의록도 만들어야 합니다. 분명히 제 계산으로는 별 차질이 없어야 할 것 같은데, 어디선가 일이 꼬였는지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래서 어제는 하루 종일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글을 썼을까요?
막상 글을 쓰려고 폼을 잡고서 아침 일찍부터 책상에 앉았지만 생각보다 글이 써지지 않습니다. 책을 좀 읽다보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책을 들쳐보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글 쓸 생각은 잊어버리고 그 책에 푹 빠졌습니다. 한참을 봤을까요? 벌써 점심시간이네요. 배에서도 밥 좀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그래서 찌개 만들고 밥을 해서 식사를 했습니다. 설거지까지 마친 뒤에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창문으로 햇빛이 비춰지면서 슬슬 졸음이 쏟아집니다.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렸습니다. 방 안에 커피의 은은한 향이 퍼집니다. 하지만 커피를 마셔도 졸음이 달아나지를 않습니다. 결국 ‘딱 30분만 자자.’라는 결심을 하고 알람을 맞춰서 잠을 청합니다.
어느 순간, 너무 오래 자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알람소리도 듣지 못하고 한참을 더 잔 것입니다. 시간을 보니 이제 저녁 먹을 시간입니다. 주방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준비합니다. 무엇을 만들까 하다가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간단히 파스타를 만들어 먹습니다. 그리고 소화도 시킬 겸 텔레비전을 조금 보자는 생각으로 전원을 켰습니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는 것입니다. 이 텔레비전에 푹 빠져서 또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잊습니다.
방송을 본 뒤에 저녁 식사를 하고 미루었던 설거지를 합니다. 설거지 후, 다시 의자에 앉습니다. 그리고 들은 생각은 ‘오늘 뭐 했지?’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집 문 밖을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겠다는 결심은 그저 결심일 뿐, 이룬 성과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삶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요? 생각만으로는 못할 것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그러나 이 세상은 자신의 생각과는 분명 다르게 흘러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바로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다른 곳으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또한 주님의 뜻을 따름이 분명히 우리를 행복의 길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곳에 관심을 두고,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려는 욕심에 정작 주님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으며, 주님의 뜻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인 니네베 사람들이 오히려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었지만 요나를 믿고 그의 말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또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구원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시는 것이지요.
주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내 삶 안에서 제일순위에 올려야 하겠습니다.
가슴 깊은 신념에서 말하는 '아니오'는 그저 다른 이를 기쁘게 하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말하는 '예'보다 더 낫고 위대하다(마하트마 간디).
축하할 일을 생각하면 참 많습니다. 작은 것도 많이 축하해주세요.
어떤 선택?
물이 반 정도 찬 컵이 있습니다. 이 컵을 보면서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지요.
1) “물이 반밖에 없잖아. 마음에 안 들어.”(부정적 견해)
2) “반이 들어 있어서 기뻐.”(긍정적 견해)
3) “반이나 남아 있어 다행이다.”(감사하게 생각하는 견해)
어느 견해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정할 문제인 것이지요. 그런데 어떤 선택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를 기억하면 분명히 자신에게 가장 유익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물이 반 정도 찬 컵입니다.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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