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청년수련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22명의 청년들이 모든 순서마다 열린 마음으로 집중하니 너무도 예쁩니다.
특히 정선교사님을 통해 말씀의 은혜 받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존재의 용기’를 내어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가는 청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아침 말씀묵상 교제의 시간도 주님 주관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10.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본문 주해)
1~2절 :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이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것은 바울의 가르침대로 사는 삶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어진 것이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렇게 받은 바대로 살고 있지만 더욱 힘쓰라고 권면한다.
3~6절 :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특히 권면하는 내용은 ‘거룩함’이다.
성도의 거룩함이란 세상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과 분리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특히 ‘성적인 거룩함’을 강조한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있는 곳은 지중해 연안으로서, 당시 로마제국과 특히 헬라의 생활로 특징지어지는 성적 방종(음란한 제의 방식 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의 일상적인 생활속에도 성적 방종이 심각한 범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성적인 문제를 바울 사도가 지적하면서 거룩을 요구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복음을 듣고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왔던 이방인의 삶은 그들을 유혹한다. 바울은 그들이 구원받은 백성임을 상기시키면서 거룩한 삶을 지속할 것을 권면한다.
그것은 성전 된 몸에 대해 책임지는 삶이며, 그로 인해 성 윤리와 부부 윤리를 지키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하듯 몸을 함부로 사용하여 탈선하면 형제를 해치게 된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징벌을 피할 수 없다. 성적 탈선이나 몸의 방탕은 그 자신도 징벌을 받지만, 공동체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다. 문란한 성생활은 다른 형제의 결혼생활에 해를 끼치며 동시에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7~8절 :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은, 더러움에 빠져 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경고를 저버리는 사람은,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새번역)
그러므로 세상의 가치관을 거부하는 것이 거룩이다.
거룩하여져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기에 거룩함을 입은 것이다. 우리를 그 아들의 피로 단번에 거룩하게 하셨기에 그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다.
9~12절 : 바울 사도는 성도로서 구체적인 두 가지 삶에 대해 권면한다.
첫째는 형제 사랑이다.(9~10절)
바울은 이에 대해 더 권면할 말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이미 하나님이 가르치신 대로 ‘서로 사랑’을 잘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변 마케도니아에 있는 모든 형제에게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 단지 바울은 이 일을 지속하라고 권면한다.
이 사랑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다. 이 사랑 안에 있어야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된다.
둘째는 조용히 자기 직무에 충실하라는 것이다.(11~12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주의 재림이 임박할 것으로 믿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현실 도피적인 삶을 가져왔다. 바울은 이를 두고 임박한 종말은 현실 도피적인 삶이 아니라 자기 직무에 충실한 삶이라고 교정한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조용하게 살기를 힘쓰고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일을 하라고 재차 권면한다. 그렇게 하여 세상 사람이 볼 때 단정해야 하고 아무에게도 신세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의 묵상)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을 때는 색욕을 좇아 가는 이방인들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자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이미 하고 있었다.
바울은 더욱 그 생활에 힘쓰라고 격려하면서 특히 성적인 거룩함에 대해 언급한다.
이는 당시 데살로니가의 지리적 환경과 그 시대적 사고방식이 거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런 성적 음란만이 음란이 아니라, 이 세상의 풍속을 좇아가는 것, 즉 세상에 대한 사랑이 주님 앞에서 음란이요 간음이라고 한다.
복음을 알기 전 나는 세상을 무지무지 사랑했으니 음란한 고멜과도 같은 존재였음을 알게 된다.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수두룩했다.
그런데도 입으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세상 것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런 나의 신앙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몰랐다.
거룩하라는 말씀을 그때도 틀림없이 들었겠지만, ‘거룩함’을 종교적인 경건함과 외형적인 단정함 이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매일 말씀 앞에 나아가니 그제야 하나님의 뜻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었다.
거룩함을 구별됨이고, 그 구별은 세상의 가치관과 사고방식과의 구별됨이었다.
몸은 교회를 다녔어도 마음은 세상 속에 푹 절은 채로 사는 자였기에 구별이란 것이 있을 수가 없었다.
나의 기쁨을 생각하기 바빴기에 주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실까에는 관심이 없었다. 혹 그 생각을 하더라도 철저히 내 중심을 생각이요, 판단이었다.
이것이 주님 앞에 간음인 것을 말씀 앞에 나아가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간음하는 존재이면서 뻔뻔하게 주님의 이름을 불러댔으니.......
마치 어떤 여자가 옆집 남자와 연애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자기 남편에게 조르는 격이다.
말씀 앞에 서니 이 간음의 현장에서 딱 걸린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8:11b)
내가 어떻게 이 죄를 다시는 범하지 않을까?
말씀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 말씀에서 보여주시는 주님의 십자가로 달려갈 뿐이다.
세상과 벗 되고자 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그 간음에서 벗어나고, 내게 허락하신 거룩함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4:4)
오늘 바울을 통해 거룩한 삶으로 이미 유턴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주마가편(走馬加鞭)의 마음으로 간절히 권면하는 바울의 목소리를 성령의 음성으로 나도 듣는다.
세상과 벗 되고자 하는 마음은 내가 육체의 생명이 있는 동안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도우시는 성령께서 그 유혹을 구별할 수 있게 하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게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다.
(묵상 기도)
주님,
저는 종교적이고 외형적인 거룩함만 알던 자였습니다.
빛 좋은 개살구인 주제에 맛있는 살구인 체 했습니다.
말씀 앞에 드러난 저를 봅니다.
그럼에도 내치지 않으시고 보혈로 덮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진정한 거룩함의 의미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십자가에 연합되게 하셔서
거룩한 삶으로 걸음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침에 이 말씀을 나눌 청년들의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고
그들의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