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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유혹
# 17.
수경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분을 삭히지 못했다.
그 여자가 지껄여대던 말들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 사람, 절대 안 놔줘. 아니, 못 놔.'
'감히 네가 내 앞에서 그딴 말을 해?'
'왜, 자존심 상해? 니들 말대로 싸구려에도 급이 있다고, 이젠 내가 그 바닥을 치는 것 같아? 그래, 맞아. 나 지금 바닥 치는 거야. 발악하는 거야. 그 발악의 끝은 그 사람이야.'
화연의 오만 방자한 말에 수경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그렇게 놔둘 것 같아? 그 사람은 내 남편이고 내 아이의 아버지야. 절대 네까짓 것한테 안 보내! 보낼 수 없어!'
'네까짓 것? 네 눈엔 내가 그 정도로 밖에 안보여?'
'뭐?'
화연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말했잖아. 나 지금 바닥 치는 거라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려. 고슴도치도 자신한테 해를 끼칠 것 같다고 판단되면 뾰족한 가시를 세우고 방어해. 하물며 난 사람이야. 지렁이나 고슴도치처럼 욱하는 걸로 안 끝내. 쥐도 코너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어. 내가 죽든 상대방이 죽든 끝을 본다는 얘기야.'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내가 쉽게 물러나 줄거라 생각하고 찾아왔다면, 사람 잘못 봤어. 오차가 너무 컸어. 나한테 남은 건 악밖에 없어. 더 잃을 것도 없어. 한마디로 사람 잘못 건드렸단 소리야.'
'너...!'
화연은 서슬 퍼런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날카롭게 외쳤다.
'이젠 당신들이 물릴 차례야.'
화연의 표독스런 얼굴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어쩜 그리도 섬뜩한 말을 눈 한번 깜짝 안하고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건지. 정말 독한 여자였다.
정숙은 걱정할 것 없다며 수경을 다독였다. 제 까짓게 날 세워봤자, 라며.
그러나 수경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에게 퍼부어 대던 악담들이 진심처럼 느껴졌다. 정말 피를 흘려서라도 끝을 보려는 사람처럼, 여자의 모습은 사뭇 비장하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수경은 더욱 불안해졌다.
*
난장판이 된 집안의 중앙에 서 있던 화연은 방으로 들어갔다.
몸을 가릴 만한 외투를 꺼내 입고, 지갑을 찾아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던 핸드폰은 침대 위로 던졌다. 그리고 그대로 집을 나왔다. 문도 잠그지 않았다.
몇 분 후면 그가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고 놀라 자신을 찾을 것이다. 전화 연락도 안 될 것이고, 안절부절하며 애를 태울 것이다. 자신을 찾던 여자가 그로 인해 사라졌으니 그만한 대가는 치르고도 남음이었다.
화연은 택시를 잡아탔다.
운전기사가 물었다.
"어디까지 가세요?"
그 물음에 화연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운전기사가 룸미러로 화연을 흘깃 쳐다봤다.
어디로 가야 하지? 내가 갈 곳이 있었던가?
잠시 말이 없던 화연은 창 밖으로 보이는 야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힐튼호텔로 가주세요."
호텔 앞에 내려진 화연은 왜 이곳으로 가자고 했는지 그녀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그녀의 발은 호텔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너무도 따가웠다. 하긴, 여기저기 터지고 헝클어진 머리를 보고 그들이 기분 좋게 바라볼 리는 만무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동물원의 원숭이라는 표현을 하는 거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딱 한번 가봤던 방을 찾았다.
맨 끝에 위치한 방, 그 안에 아직도 그 남자가 있을 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일부러 그에게 전화를 하지도, 데스크에 문의하지도 않았다. 그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렇게 위안을 삼을 작정이었다.
벨을 눌렀다.
한번, 두 번. 기척이 느껴졌다.
문이 열리고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도 정훈이었다.
정훈은 문 뒤로 나타난 화연을 보고 놀라움을 드러냈다. 그녀의 갑작스런 방문도 그러했지만, 그녀의 몰골을 보고 너무도 놀랐다. 여기저기 긁히고 터져 피가 맺혀있었다.
너무 놀란 정훈은 아무런 말없이 화연을 바라봤다.
화연이 말했다.
"미안해요. 늦은 시각에 갑자기 찾아와서. 그런데 마땅히 갈 데가 없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갈 곳이 없어서, 그래서 왔어요."
정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난 괜찮아요. 그런데......"
"나 좀 들어가도 돼요?"
화연의 힘없는 목소리에 정훈이 몸을 옆으로 비켜섰다.
화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에 바로 몸이 녹아 내릴 것만 같았다.
화연을 소파로 데리고 가 앉힌 정훈은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왔다. 화연의 손에 우유가 담긴 컵을 쥐어줬다.
"이거라도 마셔요. 몸이 조금은 녹을 거예요."
"고마워요."
화연은 따뜻한 우유를 조금씩 목으로 넘겼다.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그런 그녀 앞으로 정훈이 구급상자를 내왔다.
"어디 봐요."
정훈이 화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볼은 붉게 상기된 채 부어있었고, 입술과 눈꼬리는 찢어져 핏방울이 맺혀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얼굴이 왜 이래요?"
"그냥. 그냥......"
정훈은 그런 화연의 모습이 답답했다.
"이런 모습으로 날 찾아왔으면 그만한 이유를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날 걱정만 시킬 셈이 아니라면 더더욱."
화연은 고개를 수그렸다.
"미안해요. 정말 갈 데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이곳으로 왔어요. 이러는 거 실례라는 거 알아요. 정말 미안해요. 그만 가볼 게요."
화연은 황급히 우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훈이 그녀를 붙잡아 다시 소파 위에 앉혔다.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에요. 그냥 답답해서 그랬어요. 이렇게 다칠 정도면 꽤 아팠을 텐데,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니까 답답하고 화가 나서."
"......"
"고개 들어봐요. 먼저 소독부터 해야겠어요."
정훈은 약솜에 소독약을 묻혀 조심스레 상처부위를 닦아냈다. 이따금씩 화연의 얼굴이 찡그려졌지만, 결코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정훈이 면봉 끝에 약을 묻혀 바르기 시작했다. 눈가에 약을 바르던 정훈은 어느 순간 손길을 멈췄다. 화연의 눈에서 투명한 물이 새어나왔다. 화연은 재빨리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정훈은 손을 내리고 화연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 말해봐요. 화연씨 집은 방음이 엉망이지만, 여기는 꽤 믿을 만하거든요."
정훈의 말에 화연이 희미하게 웃었다.
깊은 한숨을 몇 차례 내쉰 화연은 닫았던 입술을 열었다.
"그 사람 어머니와 아내가 찾아왔어요."
정훈은 그 한마디에 모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불쌍한 여자. 아무런 지원군도 없이 홀로 전쟁터에 나가 외로이 총알 세례를 받은 것이다. 어쩜 이리도 가혹한 운명을 타고났을까.
"너무 진부한 스토리를 그대로 따르더군요. 돈봉투를 주면서 헤어지래요. 난 이미 헤어졌는데,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봉투를 쓰레기통에 버렸죠. 그랬더니 그 사람 어머니께서 내게 행패를 부리셨어요. 나도 나지만, 우리 집은 더 엉망이에요. 상상이 가요?"
"그 아주머니 힘이 장사신가보네요. 아니면 화연씨가 약골이던가. 억울하면 덤비지 그랬어요? 왜 참아요, 바보처럼."
정훈의 농담에 화연이 웃었다.
"안 그래도 그 사람 아내한테 호언했어요."
"뭐라고 했는데요?"
"그 사람, 절대로 못 놔준다고. 내가 당신들 절대 가만 안 둔다고, 그렇게요."
"......"
"쥐뿔도 없으면서 큰소리나 치고. 한심하게."
정훈이 밝은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잘했어요."
"네?"
화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정훈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 못 놔준다고 한 부분은 좀 걸리지만, 그래도 잘 했어요. 일방적으로 당한 것도 억울한데 거기서 아무 말도 못하면 더 억울할 뻔했잖아요. 그런 면에서 화연씨 아주 잘했어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
혁은 화연의 집 앞에 도착해 벨을 눌렀다.
아무리 눌러도 응답이 없었다.
금방 도착한다고 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잠이 들었나?
혁은 그냥 돌아가려다 무심코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예상외로 문이 열렸다. 혁은 화연이 그를 위해 일부러 문단속을 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가 들어가자 어둠 속에서 현관 실내등이 켜졌다.
벽을 더듬어 거실 스위치를 올렸다. 불빛이 반짝이며 환하게 안을 비췄다. 그가 앞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그의 눈은 어지럽게 난장판이 된 집안을 목격했다. 사방이 부서지고 깨진 물건들의 흔적으로 난잡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혁은 앞뒤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 당혹스러웠다. 급히 화연을 찾았다.
"송화연! 송화연! 어디 있는 거야?"
아무리 불러도 화연은 대답이 없었다. 방문마다 열어 젖혔지만, 화연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화연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고, 벨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울려퍼졌다. 혁은 급히 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화연이 없는 빈 방안이었다.
혁은 불길한 기운이 들었다.
집에 강도가 들었다면 화연이 위험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납치라도 됐다면......!
"미친놈! 쓸데없는 생각하지마!"
혁은 자신의 망상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절대로.
우선은 화연을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어디든 뒤져보고 그래도 찾지 못한다면 그 다음은 미친 생각에 도달해야했다. 그런 일은 없길 바랐다.
집을 뛰쳐나간 혁은 아파트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은 모두 찾아보았지만, 끝내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어디로 갔을까? 그녀가 갈만한 곳은 아무 데도 없는데, 대체 어디로...... 혹시!
퍼뜩 떠오른 생각이 혁을 굳게 만들었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만약 그곳이 맞다면......
혁은 있는 힘껏 엑셀을 밟았다.
그가 탄 차가 빠르게 도로로 빠져나갔다. 신호에 걸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달렸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한가지 생각만으로 꽉 차있었다.
남자와 화연, 두 사람이 함께 있다!
*
정훈은 소파에 기대 불편하게 잠이 든 화연을 바라보았다. 이불을 꺼내와 화연의 몸 위로 덮어주었다. 너무도 여린 여자가 어쩌다 이리 험한 인생 길을 걷게 됐을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조심스레 뒤로 쓸어 넘겼다. 이따금씩 상처부위에 통증이 느껴지는지 화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새어나오는 신음소리가 정훈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문이 쿵쾅거리며 소란스레 울렸다.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정훈은 화연이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히 걸음을 움직였다.
"누구세요?"
정훈이 물었다.
그러나 그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문은 계속 큰 소리를 내며 울렸다.
정훈이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혁이 서있었다.
딱 한번 마주친 기억뿐이었지만, 정훈은 혁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입니까?"
정훈이 정중히 물었다.
혁이 그를 쳐다봤다.
"여기 있지?"
혁은 정훈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정훈이 급히 그를 막아섰다.
"있지만, 당신을 들여보낼 의향은 없습니다."
"뭐?"
"지금 자고 있으니까 나중에 오시죠. 아니, 나중에 내가 보낼 겁니다."
"자고 있다고?"
혁은 화연이 남자의 호텔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말에 얼굴이 굳어졌다. 어떤 이유로든 그녀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잠을 자다니!
정훈의 손을 뿌리치고 막무가내로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 있어, 송화연!"
혁은 큰소리로 연신 화연을 불렀다.
자고 있던 화연은 그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흐린 초점이 맞춰졌다.
혁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는 그녀를 발견했다. 성큼성큼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물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어떻게 여기 올 생각을 다 했어? 오면서 무슨 상상했니? 물어보면 입 아픈가?"
화연은 일부러 그의 심리를 비꼬았다.
혁은 이를 악물었다.
"일어나."
"싫어."
"당장 나와."
화연이 혁을 쏘아봤다.
"명령하지마. 이젠 그 약발도 안 받는다는 걸 잊었어?"
화연이 냉소를 머금었다. 그녀의 냉소에 혁은 그녀의 손목을 거머쥐듯 낚아채 끌었다. 소파에서 벗어난 화연의 몸이 휘청하며 그의 손에 이끌려갔다.
그녀가 몸부림쳤다.
"이거 놔!"
"입다물어."
"놓으라고!"
화연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혁은 강압적으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실랑이가 한쪽으로 기울려던 순간, 정훈이 혁의 손에서 화연의 손목을 떼어냈다.
혁의 싸늘히 굳어진 얼굴이 정훈을 향했다.
"뭐야, 넌."
"그건 내가 물을 말입니다. 뭡니까, 당신?"
"뭐?"
"내가 묵는 방에 함부로 들어온 것도 달갑지 않은 일인데, 이젠 싫다는 여자까지 억지로 잡아끌고. 뭐 하자는 겁니까?"
"네 놈이 신경 쓸 일 아냐."
"아니요. 이 여자가 불쌍해서라도 이젠 신경 써야겠습니다."
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가 정훈을 노려봤다.
화연의 시선 또한 정훈을 향했다.
정훈이 말했다.
"혼자 가세요."
"뭐라고?"
"화연씨가 싫다고 하는 소리 못 들었습니까?"
"상관없는 넌 빠져."
정훈이 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미 말했다시피, 싫습니다. 빠지기에는 너무 깊이 관여됐거든요."
"무슨 개소리야?"
"이 여자는 날 찾아온 내 손님입니다. 당신이 함부로 다룰 권리 없단 소립니다."
"그딴 거 관심 없어. 내 거 내가 찾아가겠다는데 무슨 말이 많아."
"그런 사람이 자신의 여자가 어떤 몰골로 있는지는 안중에도 없는 겁니까? 아파하는 거 안보이냔 말입니다! 당신 눈은 장식입니까?"
정훈이 소리쳤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인간! 자기 여자가 아파하는 걸 왜 모르느냔 말이야!
혁이 화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서야 그녀의 얼굴 여기 저기에 난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이게 대체......"
혁이 화연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찰나, 정훈이 화연을 자신의 뒤로 숨겼다. 자신 앞에서 그의 손길이 닿도록 화연을 놔두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은 그러기가 싫었다.
그가 말했다.
"이미 끝난 사이라 들었습니다. 정리가 필요하면 혼자 하세요. 괜히 불쌍한 여자 중간에 끼워 넣고 힘들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한테 화연씨를 보낼 수 없습니다. 그만 나가주세요."
"누가 끝났대! 누구 맘대로!"
"......"
"함부로 지껄이지마. 뚫린 입으로 내뱉었다고 그게 말이 되고 씨가 되는 줄 알아? 주제넘게 굴지마."
"......"
"비켜."
혁이 화난 음성으로 정훈에게 윽박질렀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화연은 여전히 그의 뒤에 있었다.
그 자식 뒤에 있지마. 나 미치는 꼴 보기 전에 내 옆으로 와!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 내 옆으로 와, 송화연. 당장!"
화연은 혁의 말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까만 두 눈동자로 혁을 바라만 볼뿐이었다.
다시 혁이 말했다.
"이리 와."
"......"
"네가 안 오면 내가 가지."
혁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강한 힘으로 정훈의 어깨를 밀치고 화연의 팔을 붙잡아 자신 옆으로 끌어당겼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옆으로 밀려난 정훈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혁을 바라봤다.
혁이 한발자국 앞서 나왔다.
그가 정훈에게 말했다.
"누가 함부로 손대래?"
"......"
"누가 함부로 관여하래?"
"......"
"누구 맘대로 함부로 길을 막아!"
정훈이 조금 굳어진 얼굴로 혁을 불렀다.
"이봐요!"
혁이 그의 말을 막았다.
"입다물고 잘 들어."
"......"
"이 여자와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없게 해. 두 번 다시 내가 네 놈 면상 볼일 없게 해. 두 번 다시라는 말, 다신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해. 그땐 내가 널......"
"그만! 그만해!"
화연이 혁을 향해 소리쳤다.
"어디 와서 큰소리야? 당신이 뭐라고 소리쳐!"
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럼 내가 뭐라고 하길 바래? 집은 난장판이고, 오라던 사람은 없어져서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데, 그 꼴을 본 내가 어떻게 해야하냐고! 잘했다고 말하고 박수라도 쳐줘?"
"그래! 잘했다고 말하고 박수라도 쳐!"
"뭐?"
"그게 어려워? 그렇게 해달라고! 답을 알려줘도 왜 못하는데!"
"......"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마. 아무 말도 하지마. 그게 더 나아."
혁은 밀려오는 화를 누그러뜨리려 가쁜 숨을 토해냈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집은 왜 그리 난장판이고 네 얼굴은 또 왜 이래? 누가 이랬어? 내가 가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그게 이제 와서 궁금하니? 있는 욕 없는 욕 속으로 다 뱉어 놓고 난 후에?"
화연이 한심하다는 투로 비꼬았다.
"정말 우습다, 당신이란 사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참지 못한 혁의 외침에 정훈이 답했다.
"당신 여자라면서 그 여자 하나 못 지킵니까? 그래놓고 자기 여자라고 말할 자격이 생기던가요? 오늘 이 여자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모진 봉변을 당했는지, 당신이 어떤 일을 벌렸는지......"
"정훈씨!"
화연이 급히 그의 말을 막았다. 그녀의 고개가 작게 흔들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말하고 있었다. 그 일만은 절대 말하지 말아 달라고.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다고.
정훈은 쏟아내려던 이야기를 차마 꺼내지 못한 채 입을 닫았다. 자신의 상처를 또 다시 드러내 다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신의 상처로 인해 저 남자가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길 바라는 모양이었다. 후 폭풍이 두려운 것이다. 참으로 바보 같은 여자였다. 그런 바보 같은 여자가 정훈은 못내 안쓰럽고 가여웠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
"오늘 미안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난 괜찮아요."
"갈게요."
"그래요. 몸조심하고 나중에 연락해요. 약 꼭 바르고요."
"그럴 게요."
화연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혁을 스쳐지나 문밖으로 나갔다.
정훈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봐 주는 것으로 배웅을 마쳤다.
혁은 그런 정훈의 시선이 결코 달갑지 않았다. 아니, 너무 싫었다.
그를 향해 경고했다.
"다신 나와 저 여자 앞에 나타나지마. 그땐 가만두지 않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잘난 체 하지마. 너같이 착한 척 구는 샌님은 정말 밥맛이야."
"그대로 돌려드리죠. 나 역시 오만 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는 당신 같은 타입은 싫습니다."
"재수 없는 자식."
"그 역시도 돌려드리죠."
갑자기 혁이 정훈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그의 눈앞에 대고 낮게 읊조렸다.
"저 여자한테 관심 갖지마."
"왜 그래야 됩니까? 내 마음을 움직이는데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니, 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여자는 달라."
"왜죠?"
혁은 단호한 눈빛으로 정훈의 눈과 마주했다.
"내 여자니까."
"......"
"내 여자야. 그러니 눈독들일 생각일랑은 추호도 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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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이제 이틀 후면, 새로운 해가 떠오르네요.
정말 시간의 빠름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12월 마지막 주에 올린 글은 어떠셨나요?
내용이 좀 길지 않습니까?
쓰다보니까 8페이지가 됐다는 거~~
그래서 혼자 기분이 좋다는 거~~
ㅋㅋㅋ
올 한해 힘들고 어려웠고, 슬프고 괴로웠던 일들은
모두 남겨두시고,
행복하고 기쁘고 아름다웠던 일들만 모두 가지고
새로운 해를 출발하세요.
여러분들의 새해 출발이 밝은 태양이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너무 재밌어요! ㅋㅋㅋㅋ 어쩌다보게됬는데, 다음편이 기다려져요~ 빨리올려주세요^^
ㅎㅎㅎ이런 기분 좋은 일이! 오늘, 바로 지금 담편 올라갑니다!
순진한여우님 제발 화연이랑 혁이가 잘되게해주세요 . 뭐어떻게되든간에 유산되게해주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신파가 될까 염려스러워스리~~ 생각은 해볼게요^^
지금새벽1:32 ............남은거까지볼꺼임!
와우~~! 브라보~~!!!ㅋ 대단하십니다. 전 그 시각에 자고 있었는데...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