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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열아홉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52:13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52:14 사령관을 따르는 갈대아 사람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더라
52:15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가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갔고
52:16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52:17 갈대아 사람은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52:18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고
52:19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가져갔더라
52:20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에 있는 열두 놋 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더라
52: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높이가 십팔 규빗이요 그 둘레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네 손가락 두께이며
52:2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높이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망사와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더라
52: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아흔여섯 개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백 개이었더라
52:24 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52:25 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
52:26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
52:27 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에서 떠났더라
52:28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52:29 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52:30 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52: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52:32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52:33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52:34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 주해
1. 하나님은 바벨론의 멸망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신다.
1) 이스라엘은 먼 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품고 계속 걸어가야 한다.
2) 하나님은 맹인, 다리 저는 자, 임신한 여인까지 돌아오도록 도우신다(렘 31:8-10).
3) 예레미야의 마지막 장은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비참함과 여호야긴의 석방으로 마친다.
2. 시드기야는 선왕들이 심판을 받아 애굽과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고, 예레미야가 심판의 복음을 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야김의 모든 악한 행위를 본 받는다.”
1) 예레미야가 생명을 보전할 길을 계속 알려 주었지만 도리어 그를 시위대 뜰에 가두었다.
2) 결국 시드기야는 아들들과 고관들의 처형을 본 후에, 두 눈이 뽑힌 채로 바벨론에 끌려가 죽는 날까지 바벨론의 감옥에 갇힌다(11절).
3. 예루살렘이 반항할 때마다 파괴보다 진압했던 느부갓네살은 이번에 단번에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한다.
1) 바벨론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예루살렘이 함락된 지 한 달 후에 와서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한다.
2) 그는 여호와의 성전은 물론이고, 왕궁,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을 불 사른다.
- 그리고 최총적으로 예루살렘의 사면 성벽을 다 허물어버린다(14절).
4. 그는 그 땅에서 가장 가난한 백성 가운데 일부를 남겨 두어서 포도원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고 나머지는 포로로 바벨론으로 데려간다.
1)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 성전의 기구와 장식들을 바벨론으로 모두 가져간다.
2) 놋으로 만든 성전 기구들, 금과 은으로 만든 성전의 기구들이 다 바벨론으로 옮겨진다.
5.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했을 때, 하나님은 이 성전에 함께하겠다고 하셨다.
1)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이 언약을 깨뜨리면 이 성전을 던져버리겠다고 경고했었는데, 그 일이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왕상 9:6-7).
6. 느부사라단은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명, 성안에 있는 지휘관 1명, 왕의 내시 7명, 군지휘관의 서기관 1명, 평민 60명을 잡아 왕에게 데려간다.
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리블라에서 이들을 모두 쳐 죽인다.
2) 느부갓네살은 이미 시드기야의 눈을 뽑았고, 그 아들들과 모든 고관들을 죽였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권세를 행사한다고 여겨지는 자들, 바벨론에 반기를 드는 편에 참여한다고 여겨지는 자들을 모두 죽인다.
7. 그리고 세 차례에 걸쳐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끌고 간다.
1) 느부갓네살 7년에 3,200명, 느부갓네살 18년에 832명, 느부갓네살 23년에 745명으로 총 4,600명이다.
2) 바벨론으로 잡혀간 1차 포로는 B.C.597년 여호야긴과 그의 모친과 신하들이다(왕하 24:10-17).
3) 2차 포로는 B.C.586년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 사로잡혀간 백성들이다(왕하 25:11; 렘 39:9; 52:15).
4) 3차 포로는 B.C.582년 유다의 소요사태로 인한 추방령으로 사로잡혀간 이들이다(렘 40-41장 참고).
8. 이로써 유다의 역사는 끝나고 암흑의 시대로 돌입한다.
1) 그런데 예레미야는 이렇게 끝나지 않고, 여호야긴 왕의 회복으로 끝난다.
2)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간 지 37년 만에 감옥에서 풀려나고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아지고, 평생동안 왕 앞에서 먹는다.
- 이런 친절은 여호야긴 왕이 죽는 날까지 계속된다.
3) 느부갓네살의 아들인 에월므로닥이 왕이 되면서 나타난 변화다.
9. 여호야긴은 왕이 된 지 3달 만에 신하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삼촌 시드기야가 왕이 된다.
1) 하지만 유다 백성에게 있어 왕의 정통성을 지닌 것은 여호야긴이었다.
2) 예레미야 22:20-23:8절에 여호야긴(고니야)은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불린다.
10. 여호야긴의 회복은 70년 후에 반드시 회복시키신다는 신호탄과 같은 희망의 소식이다.
1) 여호야긴의 장자는 스알디엘이고,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은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2) 메시아의 족보를 보면 “여호야긴-스알디엘-스룹바벨”로 계보가 이어진다(마 1:11-12).
3) 즉 악함으로 심판 받아 감옥에 갇힌 여호야긴을 풀어 주어 회복시킨 하나님은 그의 손자 스룹바벨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회복하게 하며 성전을 짓게 하신다.
4) 최강대국 바벨론은 페르시아의 고레스에 의해 멸망하고, 고레스의 칙령으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고 하나의 민족으로 그들의 삶을 되찾게 된다.
11. 예레미야는 심판을 선포한 선지자이다.
1)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1:10).
2) 하나님의 심판은 악하고 교만한 자를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린다.
3) 그러나 심판을 통하여 다시 그들을 건설하고 심게 하신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사명이다.
12. 지금은 언약을 깨뜨림으로 파괴되고 넘어져야 할 때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다시 건설하고 심으실 것을 바라본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불의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2) 그들이 파기한 시내산 언약을 폐기하시되, 더 좋은 새 언약, 영원한 언약을 맺으시고, 이스라엘 백성과 연합하신다.
3) 여호와께서는 오만한 자들을 찢으시되, 약도 처방도 없는 그들을 인자와 긍휼로 다시 낫게 하신다. 그리하여 병든 부분을 도려내시고, 새롭게 하신다.
13. 그러므로 찢겨진 자들은, 여전히 인자하신 여호와께 돌아가야 한다.
호 6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1) 주님이 우리를 찢으심은, 우리 영혼을 죽이는 암 덩어리를 꺼내기 위함이다.
2) 약도 처방도 없는 암 덩어리를 제거하신 후에, 도로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신다.
막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4. 52장이나 되는 심판의 말씀, 시드기야와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는 비참한 결말 후에 여호야긴의 회복은 마치 엘리야가 보았던 작은 구름과 같다.
왕상 18: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18: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1) 엘리야는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고,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자,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신다는 것을 알았다.
2) 하나님의 심판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반드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손 만한 작은 구름”을 믿음으로 눈으로 보아야 한다.
◈ 나의 묵상
정말 끝났다고 여긴 그 때, 하나님이 손만한 작은 구름을 일으키시면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신 일은 성경에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온 땅에 죄악이 관영할 때, 작은 구름 노아를 불렀고, 바벨탑을 쌓을 때, 작은 구름 아브라함을 불렀다. 애굽의 노예가 운명과 같을 때, 작은 구름 모세를 불렀고, 구원의 소망이 사라져갈 때 사무엘을 세웠고, 사울이 무너질 때 다윗을 세웠다. 그렇게 모든 것이 절망으로, 심판으로, 죄악으로 끝났다고 여길 때마다, 하나님은 손만한 작은 구름을 보내신 후에 큰 비를 내려 주셨다.
나의 힘과 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약도 처방도 없어서 어찌해야 할지 알지 못할 대, 더 이상은 반항도 계획도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그 때, 여호야긴을 회복시켜 주신다. “날이 저물어 갈 때, 빈들에서 걸을 때, 그 때가 하나님의 때”라는 찬양의 가사와 같다.
나도 속히 더 이상 반항도 계획도 하지 않는 존재임을 속히 알기를 원한다. 힘이 없다고 하면서로 힘을 내려고 하고,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도 방안을 찾고, 알지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알려고 한다. 주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해도 조금은 할 수 있다고 우긴다. 예루살렘의 멸망, 더 이상 소망도 계획도 꿈도 꿀 수 없는 파괴가 두렵지만, 그 때가 참된 소망이 시작되는 때요,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요, 복음에 연합되는 때이다. 주님 안에서의 참된 절망은 참된 소망이 된다.
나의 마음이 전적인 포기, 새끼 손가락 하나도 내 힘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철저한 자기 포기에 속히 이르기를 원한다. 아직도 버티고 고집하는 완악함이 끝나는 그 날, 나에게는 절망이지만, 주님에게는 수술의 때요 치유의 때다. 넘어질 때 넘어질 줄 알고, 뽑혀야 할 때 뽑힐 줄 알고, 파괴되어야 할 때 파괴되는 용기와 믿음을 구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으면 넘어지고 뽑혀도 파괴될 수 있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만 만나를 공급하시는게 아니다. 패역하여서 광야 길을 헤매야 할 때에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만나를 공급하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키시며, 의복이 헤어지지 않게 하셨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다.
십자가에서 나타나고 증명이 된 그 사랑으로 나아간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영원한 사랑을 신뢰한다. 악인이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병든 자로서 의사이신 예수님께로 나아간다. 나의 마음과 몸을 맡긴다. 나의 영혼을 맡긴다. 주님의 처방과 치료의 손길에 내 영혼을 맡긴다. 십자가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아들 안에 거하게 하시는 은혜를 누린다.
◈ 묵상 기도
주님, 예레미야 묵상을 마칩니다. 심판, 심판, 심판...이어서 손바닥 구름 같은 희망의 소식으로 끝납니다. 철저히 파괴된 후에야 다시 회복의 길을 걷는 이스라엘이 저의 모습입니다. 웬만큼 병들고, 웬만큼 넘어지고, 웬만큼 파괴되어서는 겸손히 주님만을 의지하지 못하는 자아 고집입니다. 주님, 겸손한 마음을 주셔서 속히 전적인 포기와 전적인 항복으로 십자가를 붙들게 하옵소서. 새끼 손가락 까닭할 수 없는 전적인 자기 포기의 자리에서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그리고 저에게도 손바닥 구름같은 소망과 은총을 베푸시는 주님만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바울처럼 나의 약함이 강함이 되는 은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성령으로 봉사하는 생명을 부어 주십시오. 내가 아니요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전부임을 아는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십시오. 전적인 파괴와 절망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때임을 믿게 하옵소서. 파괴하고 뽑으신 후에 심으시고 세우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 주일입니다. 병든 자되어 의원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는 예배가 되게 하시고, 심판을 받아들이는 가난한 마음과 주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이 회복되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나를 향한 신실한 사랑과 믿지 않는 이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믿음이 부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찬양팀, 중식, 방송, 안내, 중보기도, 챠랑, 교사, 셀장 등 섬김이들에게 기쁨과 성령충만함을 부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