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아침 싸리비로 눈 쌓인 마당에 길을 내어요 싸리비에 엉킨 눈이 서로에게 모여들구요 골목까지 나가 돌아보면 길은 지워져 있어요 돌아올 땐 비행기 지나간 하늘에 구름길이라도, 당신이 생각날 땐 허벅지를 찔러요 기억은 왜 피부에는 새겨지지 않았는지 찌르고 문질러도 당신이 지워지지 않아요
아침밥상을 앞에 두고 두 다리 사이에 상다리를 끼워요 아무리 몸을 문질러도 불꽃은 튀지 않아요 밥상에 오른 동치미는 겨우내 얼어 실성한 채 시큼시큼 웃고 있어요 나는 무인도처럼 허허거려요 가려운 사타구니며 목덜미를 북북 긁어내려요 떨어져 내리는 하얀 살비듬은 더 이상 체온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나는 다시 습관처럼 빈곤해져요 질질 끌려오는 비린내는 지나온 자리마다 잇자국처럼 박혀있어요 나는 이제 가랑이 밖으로도 안으로도 돌아가지 않아요
마지막 당신을 생각할 때 나는 피부 위로 떨어진 촛농처럼 하얗게 굳어져요 눈 녹아 굳은 처마 밑 고드름처럼 차가워져요 창밖의 눈송이들은 젖은 담배 연기처럼 극적인 환각을 불러일으키고 이제 추억은 제대로 숙성되었는지 단맛이 나요 나는 더 이상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아도 무한으로 엔돌핀이에요 엔돌핀엔돌핀엔돌핀…… 엔돌핀은 뇌하수체에서부터 피부까지 소복소복 쌓여가요 허벅지에서도 머리카락에서도 손끝에서도 똑딱이 누른 손난로처럼 하얗게 피어나요
|
첫댓글 좋군요
소각님과 샴블즈님 댓글 고맙습니다. 저는 제 글에 객관화가 잘 안되요. 그래서 시어나 문장이나 소재들이 이시에 꼭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구분이 어려워요. 아쉬운부분은 말줄임표가 아니라 말씀해주면 고맙겠습니다
늘어놓은 감상에 비해 그렇게 된 배경이 너무 약합니다, 감각은 있으신 듯합니다, 코드의 진행이 적절하군요, 그러나 선율과 선율 사이의 대화가 부족해요, 배경을 배제하실 의도라면 코앞에 바라보고 있는 대상에 대한 시선의 집중도를 높일 필요가 있을 듯싶군요
지우려는 대상의 집중을 말씀한시는 거죠? 사실 배경도 대상도 이 시에서는 드러나지 않아요, 그냥 지우개를 화자로 설정하여서 지우개특성과 함께 매치시켰는데 그 상태로는 독자가 시로 몰입하기에는 정보가 분명치 않아 혼란스럽다는 말씀인가요? 감상이 너절너절늘어놓는 게 있죠 그래서 정제미도 부족하고. 샴블즈님이 배경과 대상을 언급하니 시를 좀 거리있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근데 선율과 선율사이의 대화는 정확히 무슨 말씀인지? 문장과 문장사이 의미상의 자연스럽지 않은 비약이 있다는 건가요, 아니면 문장호흡자체를 말씀하신 건가욤?
님이 가진 감각으로 인해 문장들이 물흐르듯 자연스레 흘러가긴 하지만 그들이 합리적으로 혹은 합리성이 아니더라도 그 이외의 무엇을 통해 절묘하게 연결되어 서로 상관관계를 갖거나 하지는 않는단 뜻입니다, 따라서 제겐 인과 없이 단순한 감상의 나열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말씀이지요, 구체적인 조언을 구하시는 듯하여 모자르게나마 한 말씀드렸습니다, 사족을 구분하는 것은 제게도 다소 어려운 문제입니다, 자꾸 읽고 쓰다 보면 안목이 생기지 않을까 싶군요
전 두번째 문단이 제일 좋아요 그리운 옛 시인의 시집이 떠오르는 감성이랄까요 살비듬 단어도 오랜만에 보구...
당신과 함께한 추억은, 눈 내린 마당에 싸리비로 낸 길처럼 쉽게 지워지지는 않는군요.
당신이 떠난 사이, 화자는 몸과 마음이 쇠약해집니다.
당신이 떠나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면, 화자는 살 위로 떨어진 촛농이 되고 찬 고드름이 되네요. 그러다 환각이 일어나고 추억은 갑자기 단맛을 내며 엔돌핀을 품어냅니다.
쓰린 추억일텐데 느닷없이 엔돌핀을 내는 까닭을 잘 모르겠어요.(미친 건가요?) 저는 1연만 '시답다'고 느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참 좋습니다.